[오션 뷰] 우리가 새 배를 짓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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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한일 의원연맹 자문위원

최신예 여객선 ‘선플라워 쿠로시오호’가 운항 4년여 만인 2001년, 한국의 한 선사에 매각된다는 소식은 당시 일본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이 배는 일본 국기와 태양을 상징하는 ‘해바라기’(선플라워)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일본 선사의 자부심과 같았다. 일본의 전통 목욕 가운인 유카타만 입고도 선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편의성과 고급 취향이 잘 접목된 여객선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 배는 한일 양국이 함께 개최하는 2002년 FIFA월드컵을 앞두고 ‘팬스타 드림호’라는 선명으로 대한민국 깃발을 달고 일본 세토내해를 가로질렀고 지금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그 배를 인수한 한국 기업은 당연히 팬스타다.

드림호는 지난 23년 동안 부산과 오사카를 무려 6600여 차례 운항하면서 155만여 명을 실어 날랐다. 주말에는 부산항 인근을 돌면서 불꽃놀이와 뷔페, 선상 포장마차를 즐길 수 있는 ‘부산항 원나잇 크루즈’로 변신하며 인기몰이했다.

4월 13일 새 여객선 ‘미라클호’ 운항

부산∼오사카 편도 2시간가량 단축

한일 수교 60년, 협력의 새로운 물결

선상 여행·크루즈 투어 확산 기대

그 배가 오는 4월 13일 새로운 크루즈 여객선 ‘팬스타 미라클호’로 대체된다. 길이 171m, 폭 25.4m의 새 선박은 객실 102개에 승객 355명, 승무원 46명이 탈 수 있다. 야외 수영장을 포함해 5성급 호텔 수준의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웬만한 파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특수장치가 설치된다. 한일 항로의 선박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바뀔 것 같다. 새 선박의 교체 투입으로 부산∼오사카의 운항 시간도 편도 2시간가량이 단축된다.

미라클호는 부산 선사와 부산 조선소, 국내 선박 의장 기업, 그리고 국내 자본의 합작품이다. 특히 팬스타그룹과 대선조선, 두 향토 기업의 협력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상생 모델로 주목받아 왔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미라클호의 취항에 진즉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라고 해도 크루즈선 건조에서는 후발 주자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산∼오사카 항로는 팬스타그룹이 처음 개설한 ‘개척 항로’다.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항로가 가장 가까운 대마도의 히타카츠항부터 같은 섬의 이즈하라항, 후쿠오카의 하카타항, 시모노세키항, 그리고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오사카항까지 모두 다섯 갈래에 이르지만 대마도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이 개척한 항로는 부산∼오사카가 유일하다.

미라클호가 취항하는 날, 오사카에서는 ‘오사카 엑스포’가 개막한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인공 섬 ‘유메시마’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미라클호로선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덧붙여 올해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수교 60년’을 맞는다. 1965년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수교를 맺은 지 벌써 한 갑자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환갑, 일본에서는 ‘칸레키(還曆)’라고 한다. 이른바 제2의 삶이 시작되는 만큼 새로운 기운이 필요할 테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남산서울타워와 도쿄타워에서 서로의 믿음을 보여주는 수교 60년 기념 조명 쇼는 의미가 컸다. 유럽의 솅겐조약처럼 여권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이 최근 정부 차원에서 모색된 것도 새로운 이해와 협력, 소통이 시원스레 시작될 것 같아서 훈훈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 양국은 함께 넘어야 할 험난한 파도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원수라도 한배에 타면 공동운명체가 될 수 있다는 ‘오월동주’의 지혜를 두 나라 정치인이 함께 깨달으면 좋겠다.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성찰해야겠지만 참회와 용서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팬스타 미라클호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부산∼오사카 항로에 훈풍이 불어서 두 나라의 많은 시민이 대한해협과 세토 내해의 아름다움을 더 자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산∼오사카 항로가 시작되는 부산항국제여객부두는 부산역과 공중 보행로로 이어져 있다. 철도와 여객선이 이렇게 탯줄처럼 가깝게 연결된 교통 인프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원한 바다 풍광까지 곁들이면서 부산 최고의 명소로도 부족하지 않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는 물론이고 부산시, 코레일도 한일 여객 항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보며,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이동 수단을 넘어서는 여행, 선상 활동이 목적이 되는 여행, 진정한 크루즈 투어의 확산을 기대해 본다.

두 나라 바닷물이 함께 흐르는 대한해협에서 새로운 미래를 논의하는 선상 포럼도 좋은 축제가 될 수 있다. 한일 수교 60년은 그런 축제를 기획하기에 너무 좋은 소재다. ‘새 배를 짓는 마음으로’ 앞날만 생각하면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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