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다시 원점이라니… 국민들이 견딘 1년은 무엇인가
윤여진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응급실행은 남의 일이라고 치부했는데, 그건 자만이었다. 기어이 일은 터졌다.
긴 연휴 마지막날 아이의 상태가 평소와 좀 달랐다. 학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리나 했다. 퇴근길에 30분 이상 떨어진 한 아동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의사는 “100% 충수염 증세”라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의사는 의료 대란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평소 같으면 큰 일도 아닌데…. 우선 응급실 전화부터 돌려보세요. 헛걸음하면 큰일이니까요.”
살면서 가장 많은 식은땀을 흘린 시간이었다. 흔한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아이 수술을 맡을 의사가 없었다. 심지어 어린이 전문 병원인데도 수술은 불가능했다.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리던 와중에 한 병원 응급실로부터 “일단 데려와보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모처럼 만난 지인들에게 이를 무용담처럼 말하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각자 경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곁에서 죽음을 겪어냈다는 지인 앞에서 난 그저 행운아였다. 오고 가는 위로 속에 마무리는 한결 같았다. “견뎌내야지 별 수 있나. 아프지 말자.”
그렇다. 지난 1년여 간 국민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불편함과 치료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국민이 치른 희생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인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2~7월 의료공백 기간 ‘초과 사망자’ 수는 3136명이다. 고령 환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의료 대란이 없었다면 잃지 않았을 목숨들이다. 예산은 또 어떤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만 3조 3000억 원에 달한다.
국민들이 이처럼 고통과 희생을 감내한 것은 의사 추가 양성의 중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대 증원은 꼭 필요하다고 지지 의사를 밝힌 시민단체들도 상당수다. 필수·지역의료가 위기를 맞은 지역에선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도입과 관련한 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해 말 전국 의과대학에서 수시 합격자가 배출됐다.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이 의대 신입생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에 증원이 실현되면서 의료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의 길도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등의 건의안을 수용해 의대생 학업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하면서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의대생들은 증원이 ‘완전 백지화’가 아니라는 점을 들며 여전히 학교 밖에 머물러 있다.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회는 물론 향후 의대 정원 축소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반발은 당연지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 환자를 기만하는 정부의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2026년 의대 정원이 동결된다면 앞으로 어떤 의료 개혁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1509명 의대 증원은 국민들이 견딘 지난 1년에 대한 보상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전부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민을 최우선에 둬야 했다. 국민은 여전히 빠져 있는 정부 대응, 국민만 고통을 짊어지게 됐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