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기가 기회로, 건축과 디자인 성지가 된 비트라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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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게리의 디자인 뮤지엄. 이상훈 제공 프랑크 게리의 디자인 뮤지엄. 이상훈 제공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은 라인강 동쪽 기슭에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남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3국 국경에 맞닿아 있으며, 스위스 바젤이랑 붙어 있다. 이곳에 위치한 비트라 하우스는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가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이다. 가구회사 비트라(Vitra)는 1950년 스위스인 빌리 펠바움에 의해 시작됐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기능적인 디자인 가구를 제작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프랑크 게리의 '비트라 팩토리'. 이상훈 제공 프랑크 게리의 '비트라 팩토리'. 이상훈 제공
안도 다다오의 파빌리온. 이상훈 제공 안도 다다오의 파빌리온. 이상훈 제공

그러나 1981년 바일 암 라인에 있는 비트라 공장이 화재로 전소하면서 생산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설립자인 펠바움은 위기를 기회 삼아 회사를 재건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 등의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생산시설뿐 아니라 디자인 가구 쇼케이스 역할을 할 새로운 공장 단지를 계획하게 된다.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 이상훈 제공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 이상훈 제공
알바로 시자의 팩토리 건축 투어. 이상훈 제공 알바로 시자의 팩토리 건축 투어. 이상훈 제공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로 알려진 공장 단지는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완공되는 데 1989년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제조 공장, 1993년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와 안도의 콘퍼런스 파빌리온 그리고 알바로 시자의 두 번째 공장과 주차장, 2010년 헤어초크&드 뮈롱의 비트라 하우스, 2011년 사나(SANNA)에 의해 세 번째 공장이 완공된다. 공교롭게도 언급된 건축가 모두 프리츠커 수상자이다.

비트라 캠퍼스는 단순히 가구 공장이 아니라 디자인과 건축 애호가들에게는 중요한 베뉴가 되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캠퍼스 내 최초의 공공건물이자 게리가 유럽에서 지은 최초의 건물이며, 안도의 파빌리온 역시 그가 일본 밖에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다. 심지어 하디드가 디자인 한 비트라 소방서는 그의 첫 작품이다. 어쩌면 이들을 세상에 알리는 견인차 구실은 비트라가 한 셈이다.

헤어초크&드 뮈롱의 '비트라 하우스'와 피트 아우돌프의 생태 정원. 이상훈 제공 헤어초크&드 뮈롱의 '비트라 하우스'와 피트 아우돌프의 생태 정원. 이상훈 제공
피트 아우돌프의 사계절 생태 정원. 이상훈 제공 피트 아우돌프의 사계절 생태 정원. 이상훈 제공

우리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 협업을 통해서 키워온 안목이 건축에서도 발현했다. 비트라 캠퍼스 내 시설은 각기 목적과 기능을 넘어 상징적인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티브가 되었고, 비트라 가구 역시 높은 품질과 시대를 뛰어넘는 창의성으로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가구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제조와 물류 공장을 제외한 비트라 캠퍼스 내 시설은 특정 시간대 예약을 통해 건축 투어가 가능하다. 비트라 하우스는 언제든지 무료 방문이 가능하며, 디자인 뮤지엄은 특별전 형태로 시즌마다 열리고 있다. 2022년부터는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가 비트라 캠퍼스 내 사계절 생태 정원을 만들면서 화제가 됐다. 디자인을 넘어 건축 그리고 조경까지 이만큼 잘 만들어진 종합 선물 세트를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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