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통영-여수 '최초 통제영' 논쟁 이참에 마침표 찍자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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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경남 남해안의 항구 도시 통영은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지역 수군을 통치한 삼도수군통제영(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해군본부다. 통영이란 지명도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 한산대첩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이듬해 해로 방어 최대 요충지인 통영 한산도로 군영을 옮겼다. 남해안 서쪽에 치우쳐 방어에 취약한 전라좌수영의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후 초대 통제사로 제수돼 3년 8개월간 한산도에 주둔하며 조선 수군을 이끌었다. 학계는 이를 근거로 한산 진영을 최초 통제영으로 인정해 왔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역시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라고 기술해 놨다.

그런데 1983년 여수대학교 문영구 전 교수의 ‘임진왜란 중 여수 전라좌수영은 통제영’ 논문 발표 이후 전남에서 ‘최초 통제영은 여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초 통제영=통영 한산도’가 이미 정설로 굳어진 탓에 기대만큼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2021년 여수를 중심으로 역사바로잡기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이듬해 범시민연대까지 출범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역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각종 세미나와 지방의회 공론화 시도가 잇따랐고, 작년 10월과 11월 전남도의회와 여수시의회가 ‘빼앗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여수 역사바로잡기 촉구 결의안’을 연거푸 채택하면서 제대로 불을 댕겼다.

이들은 △임진왜란 무렵에는 통제영이란 용어가 없어 ‘본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 △제1대 이순신부터 제4대 이시언 통제사까지 전라좌수사로 하여금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도록 했다는 사실 △한산도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임시 전초 전진기지로 병참, 군수물을 거의 모두 본도인 전라도에서 충당했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은 전라좌수영 본영인 여수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여수종고회, (사)여수여해재단, (사)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 등 시민단체가 가세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결국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외면하던 경남 지역도 맞대응에 나섰다. 통영시의회는 지난 14일 ‘전남과 여수시의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침탈행위 및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역사적 기록과 고증이 명백함에도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전남도와 여수시는 통영시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국가유산청과 경남도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남도 발끈했다. 여수종고회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적반하장식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고 맞받았다. 여수시의회도 재반박 결의안 채택을 예고했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지금처럼 여론전을 앞세우면 이성적 사고보다 감성적 욕망에 매몰될 공산이 크다. 이대로는 해묵은 지역감정까지 자극해 영호남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다고 어영부영 넘어가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학술대회든 끝장토론이든 양측이 수긍할 수단과 방법을 통해 더는 재론의 여지가 없도록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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