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개와 사람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 사람을 믿는 마음의 크기만큼 기다림의 시간도 길 것이다.
박이룬 작가 <기다려>(느림보)에는 반려견 럭키와 베스가 등장한다. “기다려”라는 말만 남기고 아빠가 사라졌다. 럭키는 뒷다리가 저리도록 멈춰 서서 아빠를 기다렸다. 엄마는 베스를 아가라고 불렀다. 껌딱지처럼 엄마에게 붙어서 사랑받는 베스는 럭키와 달라 보였다. 여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초췌해진 럭키가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어가던 날, 베스는 엄마와 놀러 간 공원에서 “기다려”라는 말을 들었다. 럭키 아빠와 베스 엄마는 같았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개를 무책임하게 버리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럭키는 새 가족에 입양돼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럭키가 서 있던 자리에서 이제는 베스가 엄마를 기다린다.
기다리라는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그 말을 믿고 기다리는 반려견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원희의 <들개>(롭)는 반려견이 들개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구성됐지만 내용의 울림은 더없이 크다. 사람이 펫숍에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귀엽다고 예뻐하던 강아지가 성견이 되니 귀찮다고 유기한다. 거리를 방황하던 개는 사람에게 내몰려 산으로 가고, 다른 유기견과 만나 무리를 이룬다. 야생화된 개들이 가축을 습격하자 사람들은 포획에 나선다. 도망치던 개의 목줄이 끊어지는 장면에서 인간과의 영원한 단절이 느껴진다. 들개의 시작점이 사람에게 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개를 버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개를 구하는 것도 사람이다. 민주인권그림책 <호두와 사람>(사계절출판사)도 조원희 작가 작품이다. 뒷다리를 다친 개가 보호소에 들어왔다. 사람1은 개를 데려와 호두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호두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다리 수술을 받았다. 사람2는 호두의 회복을 돕는 다음 보호자를 자처했다. 뒤이어 사람3, 사람4, 사람5가 호두에게 더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하는 데 동참했다. 작가는 호두가 자신에게 오기까지 1년 4개월의 이야기를 통해 개를 구하는 데 함께한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지금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베스에게 따뜻한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