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위로와 공감에 인색한 시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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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사건 사고 여전히 진행
새해지만 국민 불안은 이어져
참사 아픔 공감 못하는 이들
인터넷 공간엔 혐오 목소리
비인간화, 무통 사회 가속화
슬픔 존중하고 공감 중요해

2025년 새해가 시작된 지 40여 일이 지났지만, 올해는 유난히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아니다. 국민 일상을 뒤흔든 12월 초 계엄령과 이어진 대통령 탄핵 심판은 진행 중이고 12월 말 무안에서 발생한 제주항공참사도 명확히 해결되지 못한 채 유족은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비극적인 상황은 끝나지 않았지만, 한편에선 벌써 대한민국 특유의 조급증이 등장했다. 큰 사건이고 비극인 건 맞지만, 이제 비슷한 이야기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이다. 실제로 언론사로 전화해 계엄령, 탄핵, 제주항공참사 같은 기사 대신 밝고 희망적인 기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올해만 이런 건 아니다. 앞서 겪었던 국가적 참사 때도 모진 말을 쏟아내는 혐오의 목소리가 있었다. 수백 명의 아이를 잃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고 2022년 이태원 참사 역시 그랬다. “인제 그만 하자” “보상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냐” “유족 뒤 특정 정치세력이 의심된다” “죽은 가족 팔아 이득을 보자는 거냐” 같은 주장이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예사로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유족의 행사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유족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던 국가,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기관에 대한 원망으로 무너졌지만, “쓸데없이 그런 곳에 왜 놀러갔냐”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더 아팠다고 토로했다.

이번 제주항공참사 역시 유가족 대표는 자신을 향한 악플에 대해 눈물로 호소했다. 실제 유가족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부터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억측이 그랬다. 사망자와 유족을 비하하는 글을 작성한 이들을 찾아내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여전히 오늘도 인터넷 세상에서 혐오의 목소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공감과 위로가 인색하게 된 걸까.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는 무엇에 공감하나’라는 글에서 인간이 그동안 추구해 오던 편안하고 고통 없는 문명은 비인간화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비인간화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는 일명 ‘무통 사회’라는 병리 현상을 낳았다.

서 교수는 마치 지금의 인간은 아픔이나 슬픔이 전이되지 못하는 절연체가 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형광등의 불빛이 우리를 안도케 하는 것은 불이 켜지기까지 순간의 긴장감에 있다. 스위치를 눌렀을 때 짧은 시간의 깜박거림, 그 감응의 시간이 우리를 초조하게 하지만 마침내 불이 켜지며 경이롭게 한다. 감응하지 않은 센서는 늘 우리를 어둠 속에 서 있게 한다.

인간적인 문명사회를 찾아가다가 비인간화가 나타났지만, 우리는 그 현상과 싸우며 다시 인간화를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감응 연습이 필요하다. 미세한 울림과 떨림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삶이다. 위로와 공감이 인색한 현재, 우리는 다시 감응하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보고 그들의 슬픔을 존중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애도와 슬픔을 끝내는 시간을 타인이 정해줄 수 없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는 식의 대응은 혐오의 사회를 심각하게 할 뿐이다.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윤석열 정부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고 제대로 사과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소통을 통해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과의 소통이란, 국민의 삶에 대한 ‘공감’ ‘이해’ ‘책임’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과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 책임감의 발로이자 정부가 피해자에 대해 그런 자세를 가지겠노라고 공식적으로 알리는 결의의 표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사과는 말 한마디로 끝내는 일회성 행위가 아니라 후속 실천까지 아우르는 일련의 행위 목록이다. 윤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산업재해 희생자 등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는 이들과 소통하지 못했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조건이 다르므로 공동체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개인화가 심해지며 갈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커질 수밖에 없다. 소통과 공감, 위로야말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김효정 젠더데스크 teresa@busan.com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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