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삼한사온의 재구성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한반도의 오랜 겨울 기후 특징
지구온난화로 상황 크게 변해
불규칙한 한파 등 추위 길어져

겨울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같은 중위도 지역에서는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오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겨울은 북극해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 내내 하늘 높이 떠 있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북극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긴 어둠 속에 잠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바다는 빠르게 식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얼음이 그 표면을 덮는다.

해빙이 형성되면 바다가 공급하던 열이 차단되어 북극해 지표면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해빙은 태양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빠르게 성장해 1주일 남짓이면 미국 대륙보다 넓은 바다가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다. 해빙과 접한 공기는 급히 냉각되며 북극해를 둘러싼 거대한 차가운 공기 덩어리를 형성하고,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고위도 지역도 빠르게 냉각되어 차가운 공기가 쌓이면 대륙성 고기압이 만들어진다. 여름철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대륙에 자리 잡았던 저기압은 겨울이 되면서 고기압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기온 차이가 커지고 중위도 제트기류는 더욱 강해진다.

제트기류는 북쪽의 차가운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 제트기류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며 남북 간 온도차가 커질수록 불안정해져 남북 방향으로 요동친다. 이런 요동은 중위도에서 저기압을 형성하며, 저기압은 한파와 폭설을 동반하는 동시에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북쪽으로 이동시켜 온도차를 완화한다. 대륙의 차가운 표면 위에 자리 잡은 시베리아 고기압은 이러한 제트기류의 영향을 받아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이는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겨울의 대표적 특징인 ‘삼한사온’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확장과 수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 약 3일간 강한 추위가 찾아오고 이후 고기압이 수축하면 약 4일간 상대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록 이 패턴이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잘 설명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삼한사온은 겨울철 규칙적인 날씨 변화를 반영한 현상으로, 오랜 세월 한반도의 겨울 기후 특징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쳐왔다. 삼한사온이 뚜렷했던 시기에는 북극해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이 이어지며 계절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고, 며칠간의 강추위를 견디고 나면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찾아와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여름철 북극 해빙이 급격히 줄어들고, 해빙이 사라진 바다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해빙이 형성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면서 가을의 시작도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축적된 열이 소진된 후에는 해빙이 빠르게 성장하며 북극해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북극해를 포함한 고위도 지역의 기온 하강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져 겨울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처럼 급격한 기온 하강과 여전히 높은 북극 지역의 기온은 중위도 제트기류를 불안정하게 만들게 된다. 불안정한 제트기류는 크게 요동치며 중위도의 날씨를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제트기류가 남하하면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내려와 심각한 한파를 불러오고, 반대로 북상하면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유입돼 겨울답지 않은 초가을 날씨를 만들기도 한다.

제트기류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대륙의 차가운 공기가 예전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오고 다시 평년 기온을 회복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추운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려면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굽이치는 제트기류는 이전보다 훨씬 느려졌으며 때로는 정체된 상태로 한 곳에 머물기도 한다. 과거 3일 정도 머물던 한파가 이제는 1주일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겨울에는 오히려 더 추운 날씨를 경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21세기 들어 12월은 기온 상승이 관찰되지 않은 유일한 달로 나타났다. 올해 겨울 역시 불규칙하고 강해진 제트기류의 흔들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한창이다.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기후만큼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갑작스럽고 빠른 기후 변화 속에서 이번 겨울도 평탄치 않을 듯한 예감이 스친다. 앞으로의 겨울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철저한 준비로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자연이 주는 변화에 대비하며 차분히 준비한다면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는 마음속에 찾아들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