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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金!

김? 金!

1640년대 경남 하동장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해산물이 등장했다. 시커먼 종이 같은 모습으로 말린 그 해산물은 인간이 그동안 먹어온 것들과 다른 색깔로 인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어진 장사꾼의 말이 장보러 온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이게 이렇게 보여도 태인도의 명문가인 김가(金家)가 직접 기른 것이오. 맛도 좋지만 양분도 아주 좋다오.”그렇게 판매가 시작된 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김이다. 태인도의 김가가 기른 것이라 하여 김이라 불렀다는 얘기의 시작이다. 그 김가는 바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활약했던 의병장 김여익이다. 김여익은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한 뒤 오랑캐의 치세 아래 고향에서 살 수 없다며 유민처럼 살다 전남의 태인도까지 흘러 들어갔다.섬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김여익은 1642년 겨울 어느 날 섬진강 하구 배알도 해안에서 표류하는 밤나무 가지에 붙은 해조류를 발견했다. 먹을 것이 귀한 섬 지역이라 혹시나 먹을 수 있을까 하여 먹어본 결과 생각보다 맛이 좋았기에 이듬해부터 밤나무와 대나무 등을 이용해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광양현감 허심이 쓴 김여익의 묘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김 양식의 유래다.이처럼 국산 김 양식의 기원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과는 달리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은 김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 일본은 김의 일본말인 ‘노리(のり·海苔)’의 국제어화를 시도하면서 김의 기원이 겐로쿠 시대인 1700년 전후라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처럼 명확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 주장에 따르더라도 국산 김 양식 기원보다 수십 년 이상 늦다. 중국도 김 양식이 자국에서 시작된 문화라 주장하느라 분주하다. 지린성 등 동북 3성에서 조선족 문화의 일환으로 해조류 가공 등을 자국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기록으로 증명하진 못한다. 기록 면에서 국산 김의 역사가 당당히 앞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처럼 역사에 빛나는 국산 김이 최근엔 가격으로 새 역사를 썼다. 김 한 장 가격이 150원을 넘어 역대 최고가가 된 것이다. 2년 전 100원 수준과 비교하면 50%나 급등했다. 김을 김이 아니라 金(금)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김 가격 급등이 해외 수출 급증 때문이라고 하니 기뻐해야 할 소식이지만 ‘국민 반찬’이라 불리던 김까지 물가 상승을 부추기니 서민의 지갑은 더 빠듯해지는 느낌이다.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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