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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기 침체에 전쟁 직격탄, 지역 건설 현장 올스톱 위기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상승과 원자잿값 폭등이 지역 건설업계를 고사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미 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미분양 누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체력에 외부 충격이 직격탄이 된 것이다. 국토부가 전국 274곳의 공사 현장을 점검한 결과, 전쟁으로 인한 자재 부족과 가격 급등 탓에 5월부터 공사가 중단되는 현장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탄한 수주 실적과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지역의 중견 건설사들은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부산처럼 건설업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지역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다. 연쇄 도산과 금융권 부실로 확산하기 전 선제 대응이 절실하다. ‘건설 빙하기’의 심각성은 각종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올 1분기 전국 건설업 폐업 신고는 1088건으로 12년 만에 처음으로 1000건을 넘겼다. 부산에서도 종합 건설사 20곳, 전문 건설사 59곳이 문을 닫았다. 신고조차 못 한 채 사라지는 영세 업체도 적지 않다. 부산의 건설업 취업자 수는 2023년 16만 7000명에서 올해 10만 5000명으로 줄었다. 3년 새 6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증발한 것이다. 이처럼 침체한 건설 경기에 ‘오일 쇼크’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나프타 등 원재료 수급 불안정의 여파가 수개월 지연을 거쳐 본격화한 것이다. 공급망과 현장 모두가 흔들리면서 공사 중단이 속출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미콘 사례를 보면 현장의 고난을 알 수 있다. 공사장이 줄면서 수요가 감소하니 레미콘 출하량은 4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가격은 10~20%씩 올라 건설사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여기에 나프타가 원재료인 레미콘 혼화제도 30% 오르면서 추가 인상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또 단열재, 실란트, 창호 등 마감재도 30% 이상 올랐다. 도로포장의 핵심 원료인 아스콘도 생산은 70% 줄었는데 가격은 20∼30% 급등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공사비가 40% 오른 탓에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흔들리면서 조합과 시공사 갈등, 협력업체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발 빠르게 수급 관리에 나서는 한편, 행정적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 원자재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품귀 현상 탓에 시장 불안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시급한 공사에 자재를 우선 납품하거나 급하지 않으면 발주 시기를 늦추는 수요 관리에 나서야 한다. 공사비 급등의 부담을 건설사에 전가하지 말고, 물가 변동 조정 체계를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또 PF 시장 안정과 중소 건설사 유동성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지방의 건설업은 지역 경제의 뼈대이자 고용의 버팀목이다. 공사가 멈추면 지역 경제가 흔들린다. 현장이 중단되고 나면 백약이 무효다. 지역 경제의 붕괴를 막는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사설] '13억 뇌물' 불기소, 앞으로도 이런 일 비일비재 할 것
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므로 누가 보더라도 명쾌해야 한다. 법 조문도 해석상의 오류가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그 적용에 있어서도 혼란이나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강자 독식 사회를 막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 끝에 확립된 원칙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는 법의 사각과 적용 단계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억 원대의 거액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공무원에 대한 기소가 불발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수사권과 보완수사권 관련 법 규정의 사각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이제 시작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공수처는 2021년 10월 감사원 고위 간부가 차명 법인 설립 후 감사 대상 건설사로부터 15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해당 간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고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에 송부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공수처에 사건을 재이송했으나 공수처는 보완수사를 위한 이송은 법률 근거가 없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뒤늦게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하기에 이르렀으나 법원이 검찰 수사권 근거 없음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수수 금액 중 13억 원에 대한 기소가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처음 수사를 맡은 공수처의 수사 역량에 일차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해당 사건은 부실한 수사에 대해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한 공수처법에도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내란죄 관련 사건 수사 이후였으므로 당시엔 직접 수사가 가능했다는 반론을 펼친다. 하지만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 주체와 시기별 검찰 수사 가능 여부를 일일이 따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법 적용의 불확실성을 보여 준다 하겠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심지어 수사 주체가 검찰 수사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공소를 기각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사건들은 수사를 하는 검찰이나 판결을 하는 법관들까지 갈팡질팡할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 아니다. 수사권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밀어붙여 온 소위 ‘검찰개혁’의 결과가 본격화하면서 벌어진 대표적 혼란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 같은 문제가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바뀌고 공소청 소속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완전히 폐지된 이후 더욱 빈발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뇌물을 받는 수준이 아닌 진짜 사회적 거악이 이 같은 혼란 속에 불기소의 이익을 누린다면 그 책임은 대체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정치권은 당장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고 있는지 기소 전에 파악해 사건을 뭉갤 수 없도록 할 역할 재설계라도 나서야 마땅하다.
[사설] 정부 대책에도 현장서는 주사기 품절, 의료 대란 막아야
중동 전쟁 장기화 여파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확보에 문제가 생기면서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정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4일부터 주사기와 주사침 매점매석 행위를 금지하고 집중 단속을 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주사기 구입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일 ‘주사기 생산 등 일일 수급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1일 17시 기준으로 주사기 생산량은 435만 개, 출고량은 555만 개, 총재고량은 4646만 개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주사기, 주사침, 약포지, 시럽병 등 주요 의료 제품 생산량이 전년과 비교해 차이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작 의료 현장 체감도는 확연히 다른 셈이다. 실제로 부산 지역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은 심각하다. 의료 소모품 전문 쇼핑몰에선 주사기, 주사침 등이 품절 상태라고 한다. 의료기 재료상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들은 주사기, 주삿바늘, 거즈, 알코올 솜 등 의료 소모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 치과 원장이 생리식염수 팩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을 전전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대학병원도 주사기류 수급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입찰을 통해 도매상에서 납품받고 있지만, 1주일 단위로 버티는 형편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달 “나프타를 의료 제품 생산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병원들은 재고 부족에 더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 대학병원 한 곳은 납품업체로부터 주사기 가격 25% 인상을 비롯해 약 포장지와 투약 병 가격 15~16% 인상을 이미 통보받았다. 의료폐기물 플라스틱 박스값은 벌써 올랐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골판지 박스도 기름값 상승에 따른 운송비 급등으로 16.7% 인상을 요구받은 상태라고 한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갈수록 악화한다면 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 나아가 지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까지 영향받는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의료 소모품 수급난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의료 소모품 유통망 안정화를 위해 특별 단속을 시행 중이다. 부산시도 23~24일 6개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선다고 한다. 사재기 금지, 현장 단속 등을 통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고, 의료 대란까지 번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수록 주사기, 의료용 장갑 등을 만드는 나프타 확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공급망 위기가 고착된다면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 해소는 쉽지 않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나프타 등 원료 배분과 비축, 대체 조달 체계 구축 등 국가 차원의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땜질 처방만으론 혼란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 지운 문명
2001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125㎞ 떨어진 사암 절벽에 새겨진 석불은 불교 전성기였던 6세기 전후 만들어졌다. 당시 아프간을 통치하던 탈레반 군사정권은 불상이 우상 숭배 등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바미안 석불을 포함해 수많은 석불을 파괴했다. 국제사회 만류와 호소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2003년 이라크전 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재들이 폭격으로 파괴됐다. 또 치안 공백으로 약탈이 자행된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에서는 함무라비 법전이 도난당했다. 이 과정에서 수메르 토기, 아시리아 대리석 조각, 정교한 설형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석판 등 인류 전체의 보물이 망가졌다. 2015년 시리아 내전 중 IS(이슬람국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팔미라의 고대 유적을 폭파했다. IS는 우상 타파와 체제 홍보를 명분으로 메소포타미아·로마·페르시아·비잔틴 등 문명 교류의 중심지였던 팔미라의 문화유산을 망가뜨렸다. 대표적 건축물로 1세기 말 축조된 벨 신전은 출입구 기둥만 남은 상태다.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문화유산 피해가 늘고 있다. 이란 문화유산 당국에 따르면 공습으로 전국 130여 곳의 유적이 직접 타격을 받거나 충격파로 손상됐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열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회의에서 이란의 문화재 피해 조사 상황이 공유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이란의 베르사유’ 골레스탄 궁전의 경우, 군사 타격이 반경 100m 이내에서 벌어지면서 특히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 반경 100~250m 거리에선 장식 요소에 중대한 손상이 생기거나, 창문과 문 등 접합 구조가 파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청록색 타일과 모자이크 양식이 떨어진 ‘샤 모스크’의 사례처럼, 폭격에서 350m 떨어져도 충격파, 지반 진동 등 누적 충격에 따른 위험이 상존한다고 한다. 직접 폭격이 아닌 공습 여파로도 문화유산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대규모 문화재 파괴를 계기로 1954년 체결된 헤이그 협약은 무력 충돌 시에도 박물관, 유적, 역사적 건축물 등에 대한 공격이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한다. 미국, 이란, 이스라엘 모두 협약 당사국이지만, 이를 얼마나 지킬지는 미지수다. 전쟁은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가 축적해 온 기억과 문명의 흔적까지 지워버린다. 문화재 복원이 급한 데 25일(현지시간) 열릴 예정이었던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 협상이 또 무산됐다. 안타까운 일이다.김상훈 논설위원 neato@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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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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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분기 영업이익 57조 원의 무게
‘57조 2000억 원’. 지난 7일 삼성전자가 잠정실적으로 발표한 1분기 영업이익 수치다. 그동안 한국 기업 실적에서 처음보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글로벌 기업들 중에서도 이 같은 숫자를 적어내는 곳은 손에 꼽는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최근 분기 기준 약 63조 원으로 삼성을 넘어서는 정도이고, 세계 최대 정유사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는 지난해 4분기 약 41조 원을 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의 올 1분기 영업이익도 약 30조 원대로 삼성전자 아래다. 재계에선 반도체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어서 연말까지 가면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면에서 엔비디아와 비슷하거나 앞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요즘 삼성전자 경영진은 이 같은 숫자나 전망치를 보고도 웃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5월 총파업 예고 때문이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지난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 대로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현장에는 약 4만 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고 있다. 올해 예상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대략 300조 원. 이 영업이익의 15%면 45조 원을 나눠달라는 얘기다. 근로자 1인당으로 치면 6억 원이 넘는다. 삼성은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의 상징으로 불렸다. 이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에서 나왔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아들인 고 이건희 회장도 이를 따랐다. 하지만 2018년 검찰이 삼성그룹이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내부 문건을 다수 확보했고, 이에 이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당시 임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 폐기’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7년후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시점에 총파업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게 됐다. 노조의 파업예고에 대한 여론은 가히 좋지 않다. 이익이 나면 근로자는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회사와 나눠가져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요구조건이 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영업이익 10% 이상을 장기보유 주식으로 지급한다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거부했다. 만약 노조의 예고대로 파업이 강행되고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반도체 라인이 멈출 경우, 재가동에만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며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수십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국내 총수출의 약 38%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파업이 1764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로 구성된 산업 생태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대만 언론은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어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소속 일부 회원들이 노조 집회 장소 인근에서 “반도체 호황 사이클에서 공장을 멈추면 주주들의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노조를 맹비난했다. 삼성전자 사측도 지난 16일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삼성전자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은 성과 인센티브여서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파업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위 행태에 대한 비난론도 거세다. 23일 시위 현장에는 이재용 회장,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 노태문 사장의 대형 얼굴 사진이 깔렸는데, ‘째째용’(이재용), ‘전시황’(전영현), ‘노때문’(노태문)이라는 조롱성 별칭이 적혀 있었다. 일부 조합원은 사진을 밟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300조 버는데 45조 정도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할 수 있지만 삼성은 현재 국내외에서 반도체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백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8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5, HBF(고대역폭낸드플래시)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발목잡기가 계속된다면 삼성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라는 장밋빛 대신 바위를 정상까지 올리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수시로 이재용 회장을 행사장으로 불러대던 청와대도 이번 사태에는 침묵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가 미래 투자를 해치지 않으면서 적정한 성과보상을 하는 합의안을 빨리 찾기를 기대해 본다. 배동진 지사장 겸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김준용의 타임 아웃] 선발투수의 QS
야구에서 안타를 많이 쳐 타율이 높은 타자가 득점 찬스에서는 침묵한다면 좋은 타자일까. 삼진을 잘 잡는 투수가 위기 상황에서 삼진을 잘 잡지 못한다면 좋은 투수라 할 수 있을까. 무를 자르듯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를 구분할 절대적인 숫자는 없다. 조금 더 선수의 실력을 나타내기 위해 야구의 숫자들은 발전해왔다. 단순히 몇 개의 홈런, 몇 개의 안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야구. 자연스레 다양한 기록, 통계의 지표들이 생겨났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기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야구 용어 퀄리티스타트(Quality Start). 선발투수들이 좋은 투구를 하면서 QS라는 단어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QS는 선발투수가 6회 이상 던지고, 3자책점 이하로 막을 경우를 의미한다. 실점이 아닌 자책점을 기준으로 한 것은 수비 실책 등에 의한 실점은 투수 책임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 뒷받침됐다. 승리, 평균 자책점보다 더 엄격하게 투수의 실력을 반영한다. QS는 1986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리차드 저스티스 기자가 고안해냈다. 1980년대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투수, 중간투수, 마무리투수 분업이 시작됐다. 지금은 어쩌면 당연하게 보이는 역할 분담이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선발, 중간, 마무리의 개념은 없었다. 선발투수는 경기에 나오는 첫 번째 투수일 뿐이었고 그 투수는 며칠 뒤에 중간이나 마지막에 나오기도 했다. 6이닝 3자책점의 기준은 무엇일까. 198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당 평균 득점은 4.63점이었다. 즉 선발투수가 6이닝을 3실점으로 막는다면 자신의 팀이 낼 수 있는 평균 득점(4.63)보다 적게 실점(9회 환산 4.50점)해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5이닝 1실점, 5이닝 무실점은 점수를 적게 줬을지라도 QS로 인정받지 못한다. QS에는 책임감이 담겨 있다. 선발투수는 한 회라도 더 던져 불펜투수들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 선발투수가 빨리 물러나면 불펜투수들이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어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1점을 더 주더라도 1회를 더 던지는 것이 선발투수의 책임감이자 능력이라는 의미가 QS에 담겨 있다. 선발투수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는 팀에서 5~6 경기만에 출전하는 유일한 포지션이라는 점도 있다. 매 경기 출전하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선발투수는 휴식과 관리 끝에 경기에 나선다. 선발투수는 팀에서 애지중지 최고 대우를 받는다. 우리 사회의 선발투수를 떠올려 본다. 책임감의 무게를 느껴야 하고 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의전과 대우를 받는 사람. 곧 지방선거다. 그들이 선발투수로서 무게감을 크게 느꼈으면 한다. 4년 동안 QS 하길 바란다.
[오션 뷰] 바다 '역동적인 경험'의 장으로
4월의 바다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린다.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길어지면, 부산의 해변은 다시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해양 레저 시즌을 앞둔 지금, 바다는 시민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바다는 가까이 있는 풍경일 뿐, 기꺼이 들어가 일상을 나누는 ‘삶의 공간’으로는 낯설고 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물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바다는 경외의 대상인 동시에 사고가 잦은 위험한 곳,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교육받았다. 이러한 ‘물에 대한 공포’는 무의식 속에 바다와의 거리감을 만들었고, 이는 고스란히 부산 해양 문화의 수동성으로 이어졌다. 바다를 ‘도전과 놀이의 대상’이 아닌 ‘조심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부산이 진정한 해양 도시로 도약하기는 어렵다. 물에 대한 공포 거리감·수동성 만들어 부산 해양 도시 표방하지만 규제 중심 바다 활용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 부족 풍경 아닌 삶의 공간돼야 경쟁력 있어 부산은 스스로를 해양 레저 도시라 부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소 다르다. 우리는 바다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해양 도시라고 착각해 왔다. 천혜의 자원이라는 이름 아래, 파라솔 개수나 세는 수준의 관리에 머물며 바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이러한 자원 의존적 관성은 행정 편의주의와 결합해, 바다 곳곳에 ‘제약’이라는 빗장을 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해양 레저 공간을 둘러싼 반복적인 갈등이다. 파도가 좋은 성수기가 되면, 바다를 적극 활용하려는 이들과 안전과 질서를 우려하는 지역 구성원 사이의 긴장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창의적으로 재배치하거나 시기별·구역별 상생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구역 나누기’라는 소극적 관리에 머물러 온 행정의 한계가 더 크다. 이 사례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부산 전반의 해양 공간 관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정책의 부재는 지역 사회의 피로감을 키웠고, 정작 부산의 청년 해양 레저 인구는 더 자유롭게 바다를 누릴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바다를 보러 오라”고 외치면서도, 바다와 가장 깊이 교감하려는 이들에게는 각종 제약을 가하고, 지역민들에게는 갈등의 부담을 떠안기는 모순된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비단 해양 레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부산의 수많은 아름다운 해안선은 여전히 ‘입수 금지’ 표지판에 가로막혀 있으며, 개인이 카약이나 소형 보트를 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 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해외 해양 도시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업무로 자주 찾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안 도시들은 바다가 어떻게 도시의 ‘생활권’이 될 수 있는지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도시는 항만과 해변, 마리나와 해양 레저 산업이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일상적 흐름으로 연결돼 있다. 바다는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가 아니라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관리된다. 핵심은 바다를 막는 규제가 아니라 이용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와 인프라다. 이제 부산에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 조심하라”며 아이들의 손을 붙잡던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바다를 어떻게 안전하고 즐겁게 누릴 것인가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다는 더 이상 전망권(Ocean View)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 누구나 일상적으로 바다와 접촉할 수 있는 경험권(Ocean Life)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바다라는 공공재를 더 안전하고 품격 있게 누리기 위해, 행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제안이다. 흔히 부산을 두고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인구의 고령화 때문이 아니라, 바다를 정지된 풍경으로만 묶어두려는 우리의 낡은 인식과 규제가 만든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두려워하고 가두는 도시는 미래를 갖기 어렵다. 해양 도시의 경쟁력은 바다를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라, 시민이 바다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월의 파도는 이미 우리를 부르고 있다. 금기를 넘어 모든 시민이 바다의 역동적인 주인이 될 때, 부산의 진짜 성장은 해변 밖이 아니라 바로 그 파도 위에서 시작될 것이다.
[공감] 소금밭이 있던 자리
소금밭의 자리다. 한때 조선의 소금을 구워냈던 모래펄, 부산의 가장 큰 염전이 수백 년 이상 버티고 있었던 곳, 바닷물을 담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 갯벌이니 분개라 불렸던 땅이다. 분개의 ‘분(盆)’이 화분을 가리키니 소금을 굽는 가마라는 뜻이겠고 ‘개’는 갯가, 개펄, 갯바위, 갯낚시에서 알 수 있듯이 포구의 순우리말이므로 염전이 있는 갯벌이라는 의미를 담았겠다. 분개소금이 맛있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소금밭을 상상하려고 포구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소금 마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짭조름한 염전 바람 풍경까지 그려지는 곳이다. 염전마을 아낙들은 소금 광주리를 이고 동래장과 구포장으로 소금을 팔러 다녔고, 장정들은 하루 삯이 쌀 한 되 반 정도인 일급제 염전 일을 하였으며 판매가 부진할 때는 소금을 품삯 대신 받아 각자 팔아 생활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그러나 옛 염부들의 터전 너머 광안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반대편 아파트 군락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 부산 가장 큰 염전, 분개소금 마을 맛으로 유명, 동래·구포장서 판매 매립 후 아파트, 상가 등 번화가로 부산 소금밭 아는 이 드문 요즘 내가 수필집을 내었을 때, 신안이 고향인 문우가 친정에서 농사지었다던 천일염 한 포대를 선물로 부쳐왔다. 난생처음 소금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이 특별했고, 문우의 늙은 어머니 손길이 닿은 것이라 과분하였으며, 내가 평생 먹어도 남을 양에 깜짝 놀랐다. 간수를 뺀 소금은 달콤 짭조름하여 입에 착착 감겼다. 내 솜씨 없는 나물 맛도 이 소금만 넣으면 딱딱 간이 맞고, 생선을 구울 때도 뱃살에 칼집을 내어 툭툭 왕소금 몇 가닥 뿌리면 탱글하고 고소한 구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소금 맛을 좀 아는 자들이 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치와 젓갈과 장아찌류 등의 염장 식품은 제외하고라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한 카페에 가 보시라. 소금커피와 소금빵이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아직도 감히 커피에 소금을 넣어? 라고 한다면 당신은 꼰대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한입 소금커피 맛을 본 사람은 커피와 소금이 찰떡궁합이라는 사실을 재빠르게 수긍하게 될 터이다. 소금빵 역시 빵의 표면에 소금을 발라 버터의 고소한 풍미를 간간짭짤하게 돋우었다. 아마 동남아 여행 중 수박이나 멜론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경험했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하지만 음식도 유행을 타듯 영원한 것은 없다. 깨금깨금 염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금이 온다”고 외치던 염부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인부 구하기도 어렵게 되고 여름 태풍까지 남녘의 소금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후 갯골은 매축이 되면서 넘실대던 바닷물과 반짝이던 소금밭을 밀어내고 말았다. 소금땅 위에 콘크리트가 뒤덮이고 매립 주택이 지어지고 학교와 아파트가 생겼으며 먼지 나던 황톳길 대신 반듯한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포구 끝 쪽 염전 자리에는 소금꽃 대신 밤마다 상가 불빛이 반짝인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 민가도 없는 바닷가 갯벌에 소금 굽는 동이만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옛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스라엘의 사해 소금호수와 미국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와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여행지로서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신안 소금밭과 곰소염전 등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분개소금 마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하기야 어찌 처음부터 염전이었을까. 갯벌이었고 바다였고 섬이었고 또 아득한 옛날에는 무성한 원시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간이 만들고 또 인간이 무너뜨려 소멸되는 것을. 그때의 소금밭이 지금의 번화가가 되었듯이 먼 훗날 이곳 포구에 다시 소금 마을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법. 그러니 우뚝한 빌딩 숲을 올려다보다가도 인간이 허물어버린 소금밭도 종종 기억할 일이다.
[기고] 낙동강 녹조 주범 가축분뇨, 처리에서 차단으로
낙동강의 녹조는 더 이상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폭염이 오면 반복되고, 갈수가 길어지면 심화되며, 장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수돗물 불안, 어류 폐사 등 지역 갈등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낙동강 수계 녹조 발생의 중요한 원인으로 수계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여름철 고수온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고, 하천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며, 갈수기 유속이 저하되는 환경은 오염이 녹조로 전환되는 과정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기후와 수문 조건은 가속하는 요인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오염원 관리에 있다. 오염원을 차단하지 못 하면 녹조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낙동강 오염원 관리는 ‘처리’가 중심이었다. 이는 사후 관리에 가깝다. 이제는 사전 대응, 즉 ‘차단’ 중심으로 유역환경관리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낙동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는 대규모 축산단지가 밀집해 있다. 특히 막대한 양의 돈분뇨가 가장 큰 문제였다. 2023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가축분뇨 중 돼지분뇨가 약 3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식 통계상 가축분뇨 처리율은 90% 이상으로 집계되나, 이 통계는 ‘질소·인이 실제 환경계로 유입되는 것을 얼마나 차단했는지’와 같은 질문에는 답하지 못 한다. 낙동강 본류의 수질 자료를 보면, 여름철 녹조 발생 시기 총질소(T-N) 농도는 평상시 대비 약 2~4배까지 높아지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 시기는 퇴비·액비 살포가 집중되는 시기와도 상당 부분 겹친다. 즉, 행정적으로는 ‘처리 완료’로 분류된 분뇨가 실제 환경적으로는 시간차를 두고 하천으로 재유입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녹조와 수질 악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991년 ‘질산염 지침’(Nitrates Directive)을 통해 가축분뇨 유래 질소 살포 상한을 170kg N/ha/년으로 설정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관리 성과를 처리량이 아니라 ‘질소 수지’(N balance)로 평가한다. 투입 질소에서 작물 흡수를 제외한 잔존 질소가 기준을 넘을 경우, 농가·시설 단위에서 즉각적인 조정과 제재가 이뤄진다.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보다 ‘환경계로 얼마나 배출해도 되는가’를 먼저 정했다는 것이다. 낙동강 수계 상·중류 축산밀집 권역에 질소·인 살포 절대 상한을 설정하고, 권역·유역 단위 중앙집중관리와 질소 수지 기반 집행·검증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경우 실질적인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하천 총질소(T-N)·총인(T-P) 농도는 약 15~30% 감소하고, 여름철 녹조 경보 발생 빈도는 약 30% 내외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녹조의 최초 발생 시점은 1~3주 늦춰지고, 지속 기간도 평균 2~4주 단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낙동강 녹조 대응 예산은 주로 응급 조류 제거, 차단막·약품 투입, 정수장 고도처리 강화 등 사후 처리 중심으로 투입돼 왔다. 이 같은 방식은 단기적 완화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녹조 발생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 결과 유사한 대응 예산이 매년 반복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반대로 오염원 차단을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할 경우, 녹조 대응과 정수 처리 관련 비용을 중장기적으로 20~40%가량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반복되는 민원 대응과 사회적 갈등에 소요되는 비용도 함께 줄일 수 있으며, 수질 개선 효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낙동강 녹조는 기후 탓도 특정 시설의 처리 공정의 문제만도 아니다. 차단 없는 처리 중심 관리 구조가 유역 단위로 누적된 결과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녹조를 줄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선과 관리 체계였다. 지금처럼 처리에 예산을 쓰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녹조 대응 비용은 해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차단을 우선하는 관리 구조로 전환한다면 낙동강 수질과 재정 부담은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 지금 바꾸면 덜 아프다. 미루면 미래 세대 부담은 더욱 커진다.
[기고] 부산 앞바다서 빛난 이순신 정신은 국가 발전의 원천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부산 앞바다는 조선의 운명을 가른 결전의 장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100여 척은 가덕도, 다대포, 서평포, 영도를 거쳐 500척이 넘는 왜선이 주둔하고 있는 왜군의 본거지인 부산포(현재 북항)까지 거침없이 진격하여 왜선 100여 척을 격파하였다. 이 부산대첩은 단순한 승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장군 스스로 왕에게 올린 장계에 “전후 네 차례, 열 번의 접전에서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 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적의 머리를 베지는 못 했을지라도 힘써 싸운 공로는 지난 번보다 훨씬 컸습니다”라고 했을 만큼 가장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했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은 저지되었다. 필자는 여해재단이 설립한 이순신학교에서 장군의 정신을 배운 후 현재 여해재단과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감사로 활동하면서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동료와 백성을 향한 무한한 사랑의 정신 △미리 준비하고 최고의 노력을 다하는 정성의 정신 △불의에 결코 굴하지 않는 정의의 정신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자력(自力)의 정신, 이것이 이순신 정신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정신은 430여 년 전의 역사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첨단 기술 산업의 현장에서도 그 맥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쓴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반도체 신화’이다. 황 사장은 저서 <THE BIG CONVERSATION>(빅 컨버세이션)을 통해,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신판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서 밝힌 ‘이순신 정신’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정신적 뿌리였음을 고백했다. 황 사장이 인텔의 ‘무어의 법칙’에 도전하며 ‘황의 법칙’을 선포하는 데 이순신 정신이 그 원천이 되어, 기술의 세계라는 혹독한 경쟁의 전장 한복판을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세계를 바꾸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오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 불확실성과 거대한 기술적 변곡점 앞에 서 있다. 1592년의 부산포에서, 그리고 21세기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증명된 이순신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여해재단은 김종대 재판관의 저술처럼 이순신 정신을 알리는 활동을 통해, 각계각층에서 제2, 제3의 황창규와 같은 ‘작은 이순신’을 배출하려고 꿈꾸고 노력하고 있다. 독자들께서도 이순신 정신을 공부하여 나만의 ‘부산대첩’을 준비할 용기를 얻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이순신의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의 정신을 실천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신화를 써 내려갈 것이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누군가 나에게 몰래 마약을 투여한다면…
마약류는 통상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로 크게 분류된다. 마약은 천연 마약(양귀비와 코카엽)과 천연 마약에서 추출물(모르핀, 헤로인, 코데인), 합성마약(펜타닐, 메타돈, 옥시코돈)으로 분류된다. 합성마약 중에서도 펜타닐 남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펜타닐 효력은 모르핀보다 최대 100배, 헤로인보다 50배가량 강력하다. 1959년 벨기에 과학자 폴 얀센이 발명했다. 암 환자 등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는 용도로 인기를 모았다. 양귀비 등 비싼 천연 재료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1981년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서 펜타닐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들이 급증했다. 문제는 수요가 늘면서 불법 제조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당초 목적인 진통 용도가 아니라 환각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등 현재 지구촌은 펜타닐 등 합성마약류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펜타닐의 분자 구조를 조금씩 변경한 펜타닐 유사체, 저가 합성마약 플래카(Flakka), 합성대마(K2, 스파이스), 사탕과 초콜릿처럼 포장한 이색 마약 식품 등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철저한 대응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강력한 합성 마약 등에 노출될 우려가 매우 높은 만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 급증하는 마약범죄… 청소년·청년이 위험하다 펜타닐은 뇌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직접 결합해 통증을 없앤다. 도파민을 분출시켜 몽롱하면서도 편안한 상태로 진정시킨다. 하지만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의존 상태를 유발한다. 펜타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한 번만 접해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1% 분량인 2mg 정도만 복용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는 ‘좀비 도시’로 불린다. 켄팅턴 거리 등 도시 곳곳에서 펜타닐 투여 후유증 때문에 근육이 경직되면서 좀비를 닮은 기이한 모습으로 멈춰 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10만 명 이상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그중 70% 이상이 펜타닐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마약사범도 폭증했다. 대검찰청이 마약사범 통계를 처음 시작한 1985년에는 1190명이 단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1999년 1만 589명으로 처음 1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23년에는 2만 7611명으로 2만 명을 처음으로 상회했다. 2024년에도 2만 3022명에 달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마약류 유통이 늘어나면서 20~30대 마약류 사범이 크게 늘고 있다. 전체 마약사범 가운데 20~30대 비중은 2022년 1만 507명(57.2%), 2023년 1만 5051명(54.5%), 2024년 1만 3996명(60.8%)에 달했다. 10대 마약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2005년 30명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역대 최대인 1477명을 기록했다. 이런 통계들은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청소년과 청년층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방증한다. ■ 비자발적 마약 투여 범죄 확산 우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와 부산시약사회 마약류 및 약물중독예방센터 등의 전문가들은 마약류가 단속, 검거 통계 수치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펜타닐 성분을 함유한 젤리와 사탕, 에너지 드링크에 혼합한 마약 음료, 대마 성분을 주입한 마약 초콜릿, 합성대마 오일을 넣은 마약 전자담배 등 일상용품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마약류들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마약 유통업자들은 중독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남긴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마약류를 구입할 때 최초 1회는 무료로 제공한다는 등의 마케팅 전략으로 구매자를 확보하기도 한다. 마약류를 집중력을 높이는 보조제라고 속여 중독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SNS로 접촉해 텔레그램으로 거래한 뒤 암호화폐로 대금을 주고받고 퀵 서비스나 택배, 우편물로 배송하는 비대면 거래가 지난해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특히 갈수록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2023년 4월 서울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시 4인조 일당들은 시음 행사로 위장해 학생들에게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라며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을 섞은 음료를 마시도록 유인했고, 6명의 학생이 피해를 입었다. 범인들은 학생들을 마약사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학부모들을 협박, 돈을 뜯어내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방영 중인 넷플릭스의 ‘사냥개2’에서는 몰래 투여된 약물이 섞인 술 한 잔을 마신 극중 인물이 쓰러지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2022년 방영된 ‘약한영웅 클래스1’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다른 학생의 시험을 망치기 위해 펜타닐 패치를 몰래 붙이는 장면이 나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마약류 대응 습관’이 필요한 시대 전문가들은 유사 범죄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카페 등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누군가가 몰래 마약류를 음료 컵에 혼합하는 범죄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강남구 학원가 사건처럼 차후에 협박을 받는다면 금품을 뜯기는 것은 물론 본의 아니게 중독의 길로 빠질 수 있다. 더욱이 펜타닐 등 강력한 합성마약을 자신도 모르게 투입 당했을 경우 중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마약 유통 조직의 고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젤리와 초콜릿 등을 누군가가 선심성으로 포장해 권할 경우에도 무심코 섭취했다가는 원인도 모른 채 중독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펜타닐 등의 강력한 마약류를 범죄 도구로 악용, 누군가의 삶을 망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마약 관련 기관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마약류 범죄에 대응하려면 몇 가지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모르거나 의심스러운 타인이 제공하는 음료와 음식물 등을 절대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공중장소인 카페 등에서 자리를 비울 경우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행 모두가 같이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또 비자발적으로 마약류를 접했거나 협박을 받았을 경우에는 즉시 관련 기관에 연락해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주변 지인이나 가족 등이 평소와 다른 이상 행동을 할 때도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강력한 합성마약이 판치면서 한 번만 접해도 중독을 피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번은 괜찮겠지, 극히 소량인데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 등 안일한 생각과 마약에 대한 상식 부족 때문에 소중한 삶을 파괴 당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 마약류에 대한 상시적 대응 습관을 숙지하길 당부한다.
[정달식의 일필일침] '피란수도 유산' 등재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들
2016년 12월 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여정은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이에 앞서 그해 11월,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부산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지방기상청 등 모두 14곳을 피란수도 유산 목록으로 확정하고 이를 문화재청에 등재 신청하기로 의결한다. 그해 12월 20일 문화재청에 공식 신청서가 제출된다. 피란의 역사가 부산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는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부산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올해 유네스코 예비평가에 신청할 예정이다. 예비평가는 국제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는 사전 단계로, 등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올해 7월 부산에서 열리면서 그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피란수도 유산 등재 추진은 도시의 아픈 과거를 지우지 않고 인류가 함께 이해할 가치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은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도시의 기쁨이나 명예로만 오롯이 다가오진 않는다. 오히려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체계다. 그런 점에서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성과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그렇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선 유산 구성의 설득력이다. 당초 14곳에서 11곳으로 줄어들었지만 현재의 목록이 통합된 서사를 이루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기능, 피란민의 삶, 국제 협력의 흔적 등 각 요소의 의미는 분명하다. 핵심은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결되는가다. 특정 지역 경험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물 공급 시설이나 배수지 같은 기반 시설은 전쟁기 도시 유지에 필수적이었음에도 그 중요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일부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문제도 남아 있다. 부산시민공원(옛 하야리아 부대)처럼 원형이 훼손되거나 재구성된 공간은 피란수도라는 핵심 주제와의 연결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유산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명확할수록 좋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이유다. 보존과 관리 역시 중요한 과제다. 등재는 강한 규제와 책임을 수반한다. 보호구역 설정과 건축 제한은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사유재산이 포함될 경우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재산권 제약과 생활 불편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공감 없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개발과의 충돌 가능성도 현실적이다. 부산항 1부두처럼 북항 재개발과 맞물린 지역은 세계유산 등재가 도시 발전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 우리는 근래 일어난 ‘서울 종묘 인근 경관 사태’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근대 건축자산 진흥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세계유산 등재가 ‘답정너’가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유산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등재만으로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관리 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규제는 생활과 개발을 제약한다. 심지어 지역 갈등이 커지는 사례도 있다. 실제 영국 리버풀 등 몇몇 도시는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간극으로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계유산은 만능 해법이 아니란 얘기다. 유산은 특정 기관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시민의 삶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며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방향 역시 공동체의 참여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시민 공청회가 한두 번밖에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의 공감과 참여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대로 할 거라면 전담 조직도 꼭 필요하다. 지난 9일 부산연구원이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개최한 '유네스코 예비평가 대응'을 주제로 한 피란수도 부산 제1차 학술포럼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충분한 준비와 숙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답정너’가 돼선 곤란하다. 피란수도 유산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 가치는 외부의 인정 이전에 내부의 이해와 공감 속에서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왜 그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질 때, 세계유산 등재는 비로소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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