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서울 자가 김 부장'을 보며
논설위원
요즘 화제작인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중년판 미생’으로 불린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며 승승장구했던 50대 직장인 김낙수(류승룡 분)가 승진에서 미끄러지고, 한직으로 좌천되는 등 위기를 겪은 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직장 생활의 희로애락을 코믹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해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드라마 속 승진 경쟁과 좌천, 사내 정치, 회식 문화, 희망퇴직 종용, 부동산 투자 실패 등을 보면 남의 얘기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제목이다.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미지로 통한다. 극 중의 김낙수 역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이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자존감을 채운다.
‘서울 자가’를 소유한 드라마 속 김 부장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그가 첫 집을 장만하던 시절의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을 것이다. 김 부장처럼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이제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가량을 꼬박 모아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자가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수’(PIR·Price to Income Ratio)는 중간값 기준 13.9배였다. 서울 주택 가격 중간값인 8억 원과 평균 연 소득 5760만 원을 대입하면 나오는 수치다. PIR은 월급을 고스란히 모았을 때 집을 장만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서울의 자가 가구 PIR은 2022년 15.2배에서 2023년 13.0배로 하락했지만, 지난해 증가로 돌아섰다. 권역별 PIR은 수도권이 8.7배로 2023년 8.5배보다 늘었다. 부산을 비롯한 광역시는 6.3배로 전년과 같았고, 도 지역은 2023년 3.7배에서 4.0배로 증가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전국의 자본이 ‘똘똘한 한 채’만 바라보며 서울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벨트 부동산으로 유입되면서, 수도권과 지방의 초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KB부동산의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의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2.1을 기록했다. 가격 상위 20% 평균을 하위 20% 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상위와 하위 가격 격차가 크다. 하위 20%인 지방 아파트 12.1채를 팔아야 상위 20%인 서울의 고가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2월 해당 통계 집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서울의 고가 아파트가 연일 신고가를 쓰는 반면, 지방에서는 인구 유출과 집값 하락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의 과열 양상과 지방의 공동화가 맞물리면서 지역 간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수도권 주택 가격만 끌어올려 지역 간 주택 경기 양극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8월 ‘세컨드 홈’ 적용 지역을 기존 ‘인구감소지역’에서 ‘인구감소관심지역’까지 확대했다. 강원 강릉·동해·속초·인제, 전북 익산, 경북 경주·김천, 경남 사천·통영 등 9곳이 추가로 ‘세컨드 홈’ 특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주택 가격 상승을 우려로 광역시는 제외했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는 강력한 ‘세컨드 홈’ 정책을 광역시 등 비수도권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집을 사는 사람들에게 규제가 아니라 혜택을 오히려 늘리는 게 마땅하다. 수도권과 차별화된 지방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지방 부동산 침체 외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월급을 수십 년 모아도 10억 원이 넘는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렵다. 고금리, 정체된 임금, 불안한 고용과 치솟는 집값 사이에서 이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지고 있다. 정부가 청년 중심의 주거정책 대전환을 통해서 주거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 가구의 주거 실태와 생애주기별 주거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고, 실수요자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세자금 보증 확대, 청년형 공공임대주택의 지역별 공급 확대 등 생활 기반 실질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소득이 높은 청년들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주택 구매 기회를 확대하고, 저소득 청년들에게는 지분적립형 주택을 공급해 자산 형성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지금 한국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인생을 결정짓는 부동산 세습 사회 조짐도 보인다. 청년의 노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청년의 주거 이전과 자산 형성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청년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면 자산 격차와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집 한 채가 인생을 갈라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