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청년이 행복한 나라로
청년 3명 중 1명 ‘번아웃’에 시달려
저성장 체제·양질 일자리 부족 원인
AI 확산으로 청년 고용 위축 현상
변호사·회계사 전문직 영역도 확산
‘청년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 인식을
더 나은 미래 꿈꿀 수 있게 믿음 줘야
청년(19~34세) 인구는 지난해 기준 1040만 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1%에 달한다. 그런데 많은 청년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기력함을 느끼는 ‘번아웃’을 경험한다고 한다. 저성장 체제로 접어든 사회구조, 경제적 양극화 심화,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취업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6일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조사 대상(1만 5098명)의 32.2%에 달했다. 3명 중 1명꼴이다. 번아웃을 느낀 이유는 ‘진로 불안’(39.1%), ‘업무 과중’(18.4%), ‘업무에 회의가 들어서’(15.6%), ‘일과 삶의 불균형’(11.6%) 순이었다. 청년층이 고용과 미래 불안, 일자리에 대한 낮은 만족도 등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부터 ‘번아웃 증후군’을 국제질병분류(ICD)에 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본 것이다.
다른 지표들을 봐도 착잡함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24.4명으로, 2011년(25.7명)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척도에서 6.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8점)보다 낮다. 38개국 중 31위로 하위권이다.
취업하지 못해 ‘일자리 밖’으로 내몰린 청년은 160만 명에 육박한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이거나,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또는 ‘취업 준비자’에 머물러 있는 2030세대는 지난달 총 158만 9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2만 8000명 증가한 규모로 2021년 11월 173만 7000명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다. 일자리 밖 청년이 증가한 건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따라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년층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지만 정작 대기업은 수시·경력직 채용에 나서며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청년층이 담당하던 단순 직무가 AI(인공지능)로 대체되는 것도 고용 한파의 배경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10월 발간한 보고서 ‘AI 확산과 청년 고용 위축’에 따르면 챗GPT 등장 직전인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3년간 15~29세 일자리는 21만 1000개나 줄었다. 감소한 청년 일자리의 98.6%는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발생했다. 저연차 노동자가 수행해 온 정형화된 지식 업무가 생성형 AI로 점차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생성형 AI는 문서 정리, 보고서 요약, 이메일 작성, 기본 코딩, 고객 지원 등 사무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생성형 AI로 인한 취업 한파가 인문계 최상위권 청년들이 지원하는 전문직인 ‘변호사·회계사·세무사’ 영역까지 확산한다는 점이다. 올해 회계사 시험 합격자 1200명 가운데 10월 말까지 수습 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는 443명(39.6%)에 달한다. 정식 회계사로 활동하려면 회계법인 등에서 최소 1년 이상 실무 수습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업황 악화와 저연차 회계사들이 하는 단순·반복 업무의 AI 대체 등이 겹치며 실무 수습 기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지정 회계사 문제가 심각해지자 금융위원회는 실무 수습 규제 완화, 기관 확대 등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했다. 변호사 업계도 마찬가지다. 계약서 리뷰, 서면 초안 작성, 법률 리서치, 국제 판례 검색 등 저연차 변호사들의 업무 영역이 생성형 AI로 자동화되면서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1744명 가운데 대형 로펌, 검사, 법원 재판연구원 등 선호도가 높은 진로로 진입한 비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사회생활의 시작부터 희망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좌절과 불안에 빠져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태가 지속한다면 개인과 국가의 발전에도 저해된다. 청년의 짐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일자리·주거·세제 대책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이들의 사회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 특히 청년층이 AI 시대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창업 지원, 직무 재교육, 맞춤형 취업 서비스 강화 등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청년 세대의 자립 기반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비용 절감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AI와 협업 가능한 인재 양성, AI 협업 체계 구축, 직무 재설계 등 보다 지속 가능한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하다.
청년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정부와 기업이 청년들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서 이들에게 미래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