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봄나들이] 천년 왕릉, 이 고요… 흐드러진 목련인들 어찌하랴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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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듯 걷게 되는 긴 돌담길
고즈넉한 분위기 마음 다독여
마을 뒷동산처럼 편안한 고분
더불어 추억 쌓는 목련·산수유
톡! 터질 것만 같은 벚꽃 망울
내달 3~5일 축제 땐 활짝 피길

부드러운 곡선의 대릉원 고분 사이에 풍성하게 핀 목련과 수줍은 듯 옆에 있는 산수유의 모습이 정겹다. 경주시청 제공 부드러운 곡선의 대릉원 고분 사이에 풍성하게 핀 목련과 수줍은 듯 옆에 있는 산수유의 모습이 정겹다. 경주시청 제공

봄이 북상하고 있다. 꽃들이 봄 소식을 먼저 전한다. 섬진강 일대에는 매화가 꽃을 피워 은빛 물결로 장관을 이루고 있고, 전남 구례에서는 노란 산수유꽃들이 봄 풍경을 만들고 있다. 화려함 보다는 차분함을 전해주는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나면 봄의 자리는 화려한 벚꽃이 차지한다. 벚꽃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만 다를 뿐 전국 어디서나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왕릉과 벚꽃의 만남. 경주 대릉원돌담길의 벚꽃 길을 다녀왔다.


■경주 대릉원돌담길에 찾아온 봄 기운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대릉원은 ‘천마의 영혼을 담은 언덕’으로 불리는 곳으로 경주 왕릉의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40만㎡(12만 평) 규모의 대지에 크고 작은 봉분만 23기에 이른다.

대릉원 전체를 둘러볼 생각으로 차량으로 대릉원 외곽을 돌았다. 이게 뭔가? 대릉원돌담길을 따라 늘어선 벚꽃나무에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았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양 앙상한 가지만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나무에는 꽃망울이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화려한 벚꽃은 아니었다.

봄 소식이 남쪽에서 시작됐지만 아직 이곳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대릉원돌담길 축제(4월 3~5일)도 당초 계획보다 일주일 연기돼 있었다.

실망감은 잠시, 대릉원돌담길은 자체만으로도 고즈넉하고 좋았다. 벚꽃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돌담길은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명상하듯 걷는 돌담길이 심연으로 이끌었다.

차들이 간간이 지나며 고요를 깨뜨리기도 했지만, 걱정할 게 없다. 축제 기간에는 차량 통행이 금지돼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화려한 벚꽃이 만개하며 흩날리는 대릉원돌담길은 생각만으로도 황홀했다. 특히 야간에 조명 아래의 벚꽃은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대릉원 담장 안은 또 다른 풍경이다. 들어서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반긴다. 포근함이 전해진다. 왕릉도 분명 무덤인데, 마을 뒷동산 같다. 누렇게 변한 봉분 잔디와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 다정하고 편안하다.포토존 이정표가 보인다. 따라봤더니 목련 포토존이다. 반가웠다. 벚꽃 대신 목련이라니. 완만한 곡선의 고분 사이에 풍성하게 핀 목련이 우아함을 자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목련꽃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았다. 목련 포토존 인근에는 노란 산수유도 간간이 볼 수 있다. 때를 잘 맞추면 풍성한 목련과 사랑스런 산수유, 화려한 벚꽃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경주의 대표적인 봄 축제인 ‘대릉원돌담길 축제’ 때는 벚꽃의 절경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 체험, 먹거리 등이 가득하다. 마임과 댄스, 서커스 등 다양한 거리예술은 물론 매일 밤 벚꽃 터널을 화려하게 수놓는 ‘벚꽃라이트’, 아이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떠나 함께 놀이를 즐겨볼 수 있는 ‘도로 위 놀이터’ 등이 마련된다.

황리단길 관광객들 황리단길 관광객들
황리단길 캐리커처점 황리단길 캐리커처점

■가장 핫한 젊음의 거리, 황리단길

대릉원 인근에는 경주에서 가장 핫한 젊음의 거리인 황리단길이 있다. 황리단길은 경주의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내남사거리 대릉원 서쪽 담에서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약 1km의 구간 양쪽에 특색 있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1960~19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다.

8년 만에 찾은 황리단길은 많이 변해 있었다. 활기가 넘쳤다. 점포 수가 늘어났고, 다양해졌다. 예전에도 특색 있는 가게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캐리커처, 기념품 가게, 심지어 타로 업소들도 여럿 보였다. ‘1978년 개업’이라고 버젓이 적어 놓은 문구 가게는 그대로였고,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린 흑백사진 전문관도 아직 성업 중이다. 이곳 가게들은 예나 지금이나 외관뿐만 아니라 콘텐츠에서도 개성이 넘쳐났다. 과거와 현재, 복고와 유행의 묘한 배합이 곳곳에 묻어 있다.

평일인데도 수백 명의 관람객들이 황리단길을 찾았다.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한국 전통 음식인 육회 비빔밥을 먹으며 연신 땀을 닦아내는 외국인이 친근하다. 가게 앞 의자에 앉아 김밥을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다. 기와집을 개조한 카페 마당에 가족들이 봄 햇살을 맞으며 편안한 한때를 즐기는 모습은 유럽의 어느 거리 풍경보다 인상적이다.

황리단길이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10년 전쯤이다. 상인들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대릉원 등 경주의 역사 유적지 사진을 소개하며 황리단길을 알렸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경주에서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금관총 외부 전경 금관총 외부 전경
금관총 내부 모습 금관총 내부 모습
오아르미술관 오아르미술관

■봉분 내부 개방된 금관총과 오아르미술관

황리단길의 시작지점 중 하나인 내남사거리에서 북쪽 맞은 편 노서동 고분군에 가면 금관총이 보인다. 경주 왕릉을 볼 때마다 옛 신라 사람들은 어떻게 커다란 왕릉을 지었을까 궁금했다. 무덤의 내부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고 해서 찾았다.

금관총은 신라 이사지왕의 무덤이다. 신라시대 유물의 대표 격인 금관이 최초로 발견되면서 ‘금관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는 금관총 금관을 비롯해 금제 관식, 금제 허리띠 등 유물 4만여 점이 출토됐다. 1921년 일제의 최초 발굴 이후 2015년 3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재발굴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무덤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보존전시공간을 마련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관총 안으로 들어가니 당시 이사지왕이 묻혔던 형태와 봉분을 쌓아 올린 방법까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금관총은 돌무지덧널무덤 형태다. 관이 묻힐 자리를 잡은 뒤 커다란 통나무를 서로 엮어 빼대(덧널)를 만든 뒤 사람이 안아 옮길 수 있는 크기의 돌로 틈새를 메운 뒤 흙으로 덮는 형태였다. 돌들이 나무틀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10m 이상 높이의 봉분이 견고해진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며 금관총을 나오니 신기한 미술관이 보인다. 오아르미술관이다. 1년 전 경주 출신의 개인 컬렉터 김문호 관장이 2005년부터 수집한 개인 소장품 약 600점을 가지고 설립한 사립 미술관이다.

미술관 외곽 정면 창(가로 30m, 세로 12m)으로 고분군 풍경이 사진처럼 반사돼 보인다. 미술관이 고분을 품은 듯한 모습이다. 미술관 안에서 밖을 내다 봐도 마찬가지다. 창틀 없이 유리로만 만들어진 유리창은 고분군을 액자에 넣고 가둔다. 미술관 전시품에다 고분군의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다. 오아르미술관은 개관 1주년을 맞아 ‘오아르미술관, 경주에 스며들다’란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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