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언니, 제가 벼락을 떨어뜨려줄까요?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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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윤이 장편 소설 <정전>. 문학동네 제공 함윤이 장편 소설 <정전>. 문학동네 제공

함윤이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작가가 다른 사람인가 한다. 이종교배된 인물과 소재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낯선 것과 낯선 것이 한번 만나보라고 작가는 판을 깔고, 이야기 안에서 이들은 알아서 생명력을 얻어 집을 짓는다.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 이어 첫 장편 <정전>에서도 인물들은 서로 간에 공통점이 없고, ‘평균’을 비껴나간다. 정착민보다는 이주민, 여공과 노조원과 초능력자가 ‘뜬금없이’ 만난다.

서사도 그렇다. “언니, 제가 벼락을 떨어뜨려줄까요?” 대학 등록금을 벌러 공장에 취직한 스무살 ‘막’은 좋아하는 친구들을 다치게 하는 공장 기계를 멈추기 위해 공장의 정전을 도모한다. 대의도 야망도 없다. 오직 친구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시작한 여정이다.

뜬금없다는 인상은 이야기에 구심점이 딱히 없어서일 것이다. 구심점이 없다는 것은 주변부 확장에 한계도 없다는 것이라서, 이들은 생각지 못하게 생긴 교집합에서 덜컥 서로를 이해하고야 만다.

함께 실린 심사평에서 심사위원 하나는 이 소설에 멈춤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는데 이는 함윤이 세계관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장이야 전류를 끊으면 기계가 멈추지만, 인간사는 전류가 끊겨도 감정이 요동친다. 뜬금없이 만나 불쑥 시작된 이야기는 물리적인 정전으로 불쑥 끊긴다. 기계 소리가 멈추자 사람들이 잊고 있던 대화를 시작한다. 그 이상한 정동의 지도를 그리는 이야기. 안전한 내 세계 속으로만 좁아지는 우리가 타인의 우주를 엿보는 기적은, 이런 뜬금없는 연결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함윤이 지음/문학동네/324쪽/1만 7500원.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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