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깐부 효과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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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일곱 개의 시선’ 특집에서 하하가 구슬치기 관련 이야기를 하며 “나랑 깐부 먹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시절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할 때 서로 동맹을 맺는 것을 깐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깐부라는 단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1을 통해 깐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일남이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때문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를 깐부라 부르며 동맹을 맺는 장면을 통해 깊은 우정과 동료애를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았다. 깐부치킨 홈페이지에서도 ‘깐부’를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 했던 내팀, 짝꿍, 동지로 설명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깐부치킨 치맥 회동이었다. AI(인공지능) 깐부 세 사람이 치킨과 소맥으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 매장에서 열린 세 사람의 ‘깐부 회동’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AI 기술 동맹의 상징이 됐다. 이튿날 젠슨 황은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에 최대 14조 원에 달하는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 계획을 밝혔다.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AI 깐부 회동의 효과는 일상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깐부치킨은 세 사람이 먹었던 메뉴를 한데 모아 ‘AI 깐부’라는 세트로 공식 출시했다. ‘바삭한 식스팩’ ‘크리스피 순살치킨’ ‘치즈스틱’으로 구성한 이 세트는 치맥 회동 테이블에 올랐던 메뉴다. 해당 깐부치킨 매장 출입문에는 ‘젠슨 황 CEO 테이블 좌석은 모두를 위해서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안내문까지 붙었다고 한다.

엔비디아와의 ‘깐부 효과’가 이어지려면 대한민국이 AI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AI와 반도체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 과제다.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냉혹한 글로벌 무역전쟁의 한복판에서 ‘AI 깐부동맹’이 굳건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드라마 속 깐부처럼.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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