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어 들리자 눈앞에 한국어 자막… ‘AI 통번역 안경’ 대학가 상륙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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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국내 최초 20대 시범 도입
이달부터 교수진·행정부서에 배치
영어·중국어 등 20여 개 언어 지원
학교 내 언어장벽 해소 방안 기대

지난달 27일 부산대학교 본관 2층 미래정책실에서 <부산일보> 취재진(왼쪽)이 ‘AI 통번역 안경’을 쓴 채 한혜진(오른쪽) 전임연구원의 중국어 인사말을 듣고 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지난달 27일 부산대학교 본관 2층 미래정책실에서 <부산일보> 취재진(왼쪽)이 ‘AI 통번역 안경’을 쓴 채 한혜진(오른쪽) 전임연구원의 중국어 인사말을 듣고 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닌 진톈 중우 다쑤안 츠 선머?”

지난달 27일 오전 9시 30분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본관 2층 미래정책실 회의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인공지능(AI) 통번역 안경’을 착용한 채 한혜진 전임연구원의 중국어 인사를 듣자, 렌즈 화면 중앙에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드실 생각이신가요’라는 초록색 글자가 선명히 나타났다. 글씨를 제외하면 시야는 일반 안경처럼 깨끗했다. 취재진이 한국어로 답하자 1~2초 뒤 상대방의 안경에 중국어 자막이 자연스럽게 표시됐다.

제품은 일반 안경보다 약간 두꺼웠지만 착용감은 가볍고 안정적이었다. 처음에는 4D 안경을 쓴 듯 잠시 어지러움이 있었으나 금세 익숙해졌다. 기존 휴대폰 번역 앱보다 시선 이동이 적고 반응 속도도 빨라, 조용한 실내라면 언어가 다른 두 사람도 별도의 번역기 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부산대 이미나 미래정책팀장은 “외국인 유학생이 늘면서 강의나 상담 현장에서 통번역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외국인 학생들이 직접 착용해본 결과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답답함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산대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AI 통번역 안경’을 시범 도입했다. 외국인 유학생 증가와 외국어 강의 확대로 대학 내 실시간 통역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강의·연구·상담·행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언어 장벽을 해소할 방안으로 기대된다.

부산대는 이달부터 교수진과 주요 행정부서에 AI 통번역 안경 20대를 배치해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국내 대학이 AI 통번역 안경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안경은 착용자의 시야에 실시간 자막을 띄워 외국어를 바로 번역해 보여주는 웨어러블 기기다. 강의나 회의, 세미나, 국제교류 현장 등에서 활용할 수 있으며,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등 20여 개 언어를 지원한다. 국내 스타트업 ‘엑스퍼트아이엔씨’가 개발했으며, 올해 CES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AI 스마트안경’으로 소개됐다. 배터리는 한 번 충전으로 약 4시간 사용할 수 있다.

부산대는 AI 기술을 교육·연구·행정 전반에 실증 도입하는 ‘AX 대전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난 15일 열린 AX선도위원회에서는 AI 통번역 안경과 통번역 앱을 대학 현장에 우선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부산대는 시범 운영을 통해 교수·직원·대학원생 등 실제 사용자 만족도를 평가하고, 향후 강의실과 행정부서로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특히 언어 지원이 부족했던 외국인 유학생 심리상담 영역에도 적용해 학습과 생활 전반에서 언어 장벽을 낮출 방침이다.

부산대의 도입 사례는 다른 대학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이 빠르게 늘어나는 지방 대학의 경우, 한국어와 영어 모두 서툰 학생이 많다”며 “이 때문에 외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확보하려 해도 한계가 있는데, 통번역 안경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부산대의 시범 도입 소식이 알려진 뒤 하루 만에 5~6곳의 대학이 업체에 문의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최재원 부산대 총장은 “AI 통번역 안경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접근성과 포용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언어 장벽으로 인한 불평등을 줄이고, 전 세계 인재들이 부산대에서 자유롭게 학문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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