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몬도가네'의 환한 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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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지난달 초 10년간 누렸던 ‘원도심 주민’ 생활을 청산하고 감천동으로 이사를 했다. 영주동에서 8년, 보수동에서 2년 거주했기에 정확히 10년을 채우며 살았던 부산 중구를 떠난 것이다. 물론 거주지만 옮겼을 뿐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여전히 중구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재도구는 양산에 있었는데, 양산에서 감천동으로 이사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아서 걱정했다.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우선 견적을 보고 이사 날짜를 정한 후, 이사하기 편하게 정리해야 할 물건들을 틈틈이 쟁여두거나 버리다가 이사 전날 양산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고작해야 한 달에 두어 번 들르는 게 전부였던 양산 공간이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찾아오는 서운함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빨리 이 시기가 건너갔으면 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물론 이사 스트레스야 어디 나뿐만이겠는가.

인공지능이 창작마저 대체하는 시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의지

작가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기우일뿐

요즘엔 이삿짐센터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는지 4명의 직원 중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만 한국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다. 가을 초입이라고는 하지만 막바지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날이었다.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팔과 다리에 온통 문신을 한 사람이 끼어 있었고, 다른 이들도 차림은 간편했지만 일하러 나온 사람보다는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행색이 헐렁해 보였다. 나는 이들의 모습에 조금은 긴장했지만, 군소리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성실하게 짐을 내리고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첫인상만 보고 불안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집 앞 골목으로 진입한 5톤 트럭이 우리 집을 얼마 두지 않고 앞집 정원수 나뭇가지에 걸려 하는 수 없이 중간쯤 차를 세워 짐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불평하는 듯한 표정 없이 묵묵히 주택 2층에 있는 내 공간으로 짐을 부리고 대강이나마 정리를 해주었다.

산적들처럼 갑작스레 양산 집엘 들이닥쳤다고 스스로 상상하곤 피곤한 이사를 어떻게 마무리 짓나 내심 불안했던 나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사태가 수습되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다. 워낙 세상 인심이 험해 어제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버젓이 벌어지더라도 하등 놀랍지 않은 요즘이다. 여기저기 정리되지 못한 가재도구들이 산적했던 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서도 이삿짐센터 직원 첫인상만 보고 오늘날의 흉흉한 인심과 곧바로 연결 지었던 나 자신만 봐도 그렇다. 업무 중 간혹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짧은 영상을 보노라면 세상이 참으로 넓고, 다양한 가치관과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생각이 곧잘 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뒤바뀌었고, 불안한 미래가 가져다주는 의심과 불안이 팽배하였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AI(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도 그 풍경 가운데 하나다. 그 기술과 기능의 고도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글 쓰는 일이 업이다 보니 작가들과 만날 기회가 많은데, 요즘은 AI 때문에 작가 노릇도 이젠 접어야겠다는 식의 푸념도 자주 듣는 편이다. 이들에게 지금의 세상은 어찌 보면 몬도가네(mondo cane·개 같은 세상)다. 즉,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창작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세태에 대한 일종의 불만이나, 그동안 비록 돈은 안되지만 ‘작가’라는 특수 신분이 주는 자부심도 이젠 내려놓아야 한다는 낭패감이 그런 말로 드러낸 것이다.

‘AI와 문학’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세미나나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잡지마다 기획 특집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면서, ‘문학’이 놀랄만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응전하는 방법과 태도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 인간과 기계가 함께 작업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품이 ‘제작’되어 독자의 소비를 이끄는 문화 시스템 속으로 작가들도 동참해서 걸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작가의 고유 영역인 창작의 독창성을 존중해야 하는지의 판단은 오롯이 작가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작가의 고유성을 역설하는 이도 AI가 주는 편리성과 절묘한 구성력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듯이, 시대에 발맞춰 이제 작가들도 구태의연한 창작 의식에서 벗어나 기술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이 또한 문학 고유의 창조적인 영역을 부정하지 않는다.

차림새부터 영락없이 가벼운 MZ 세대처럼 보였던 이삿짐 직원들이 물건을 손에 쥐고 옮기는 순간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장인의 손길처럼 섬세하고 노련했던 기억을 새삼 되살린다. 과정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창작하는 내내 열정과 의지가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작가에게 부과된 본래 능력이요 기능이다.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요즘, 글 쓰는 사람이 느낄 만한 불안감은 괜한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견지하는 태도야말로 작가 개개인이 하나의 홀씨처럼 우리 사회에 던지는 귀중한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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