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쟁으로 추석 연휴 보낸 정치권, 민생 절규에는 귀 닫아
대통령 부부 '냉부해' 놓고 날선 공방
EU 관세 등 현안 엄중 협치 서둘러야
정쟁으로 얼룩진 추석 연휴였다. 정치권은 이번 연휴 시작 전, 추석 민심을 경청하는 민생 행보를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야는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야당 대표의 영화 관람 등을 놓고 공방을 이어갔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지역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는 것이지만 정치권은 극단 대결에만 몰두했다. 소상공인들이 못 살겠다며 아우성을 치고, EU가 철강 관세 50% 인상키로 하는 등 국내외 상황은 엄중하다. 정치권은 연휴 뒤에도 국정감사 등을 빌미로 막장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정쟁을 멈추고 민생부터 챙기는 것이 도리다.
여야는 연휴 동안 추석 당일 방송된 이 대통령 부부의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과 관련한 진흙탕 싸움에 몰두했다. 국민의힘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재난 상황을 무시한 직무유기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야당은 국민 피해가 속출할 때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부부의 예능 출연을 비판한 국힘 장동혁 대표를 고발하는 등 맞불 공세를 이어갔다. 이른바 ‘냉부해 논란’이 연휴 주요 뉴스로 다뤄지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모처럼의 연휴에 휴식은커녕 정치권이 유발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사안이 이렇게까지 공방을 벌일 일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 대표가 추석을 맞아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제주 4·3 유가족 등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당도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여야는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신경전을 이어갔다. 연휴 전부터 논란을 유발한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두고 국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8일 자신의 SNS에 김 실장의 국감 증인 출석을 촉구하며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했다. 여당은 송 원내대표가 민생은 팽개치고 정치 공세를 퍼붓는다며 맞불을 놓았다. 날선 공방에 담긴 혐오와 선동의 언어가 국민 피로도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거세다.
여야가 민생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서로 흠집 내기에 골몰하는 사이 유럽연합은 수입 철강에 대한 무관세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초과 물량에는 미국과 같은 50%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와 중국발 저가 철강 공급에 EU 관세 리스크까지 발생하면서 국가적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 관세 협상 마무리,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준비 등 현안은 첩첩산중이다. 부산 경제도 끝없이 추락 중이다. 그러나 여야는 연휴 직후부터 김 비서관 논란, 국정감사 등을 놓고 정쟁을 이어갈 태세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민생 살리기와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 여야는 하루빨리 손을 맞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