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것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 이제 겨우 선풍기를 끄고 잠들 수 있게 되었다. 기후변화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득 과거의 기후 변화가 궁금해졌다. 과거에는 심각한 기후변화가 없었는데, 이 시대에 와서 비로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명태다. 우리나라는 특이한 식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중 하나가 명태다.
사실 세계에서 우리처럼 명태를 생태, 황태, 먹태, 북어, 동태, 코다리, 노가리 등으로 구분하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동태로 국을 끓이고, 황태로 해장국을 끓이고, 코다리로 찜을 만들고, 노가리로 안주 삼고, 내장은 창란 알은 명란으로 만들어 즐기고, 명태 껍질까지 무쳐 먹고, 제사상에도 북어를 올리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다. 명태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셈이다. 심지어 명태에 대한 찬가도 만들었다.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와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로 시작해서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명태에 대한 노래다.
명태, 17세기 동해 한랭화로 남하
한반도에서 독특한 식문화로 발전
90년대 남획·수온 상승 탓 귀해져
기후변화 어자원 고갈 대표 사례
고온 지속 땐 바다 생태계 달라져
다음은 대구·오징어가 떠날 수밖에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는 명태를 어떻게 소비할까? 일단 중국과 일본에서도 명태를 잘 모른다. 중국에서는 명태를 ‘밍타이’, 러시아에서 민타이, 일본에서도 명란을 ‘멘타이코’라고 한다. 모두 우리말 명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에는 아예 명태라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 없었고, 일본에서는 ‘스케토오 타라’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각 지방에서 방언이 통용되고 통일된 표준말이 없다. 즉 잘 알지 못하는 물고기였던 셈이다. 당연히 중국, 러시아, 일본에는 명태 요리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멘타이코’ 즉 명란을 만드는데, 일본 음식 중에서 유일하게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우리나라의 명란 만드는 기술이 일본에 정착한 희귀한 사례다.
그런데 명태는 지금도 한 해에 370만 톤 정도 어획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가 20~30만 톤 이상을 소비하는데, 그것도 주로 명태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요리해서 먹는다. 다른 나라에는 명태 요리가 없는데, 나머지 많은 명태들은 어떻게 소비될까? 외국에서는 대부분 어육 곧 어묵의 형태로 소비된다. 심지어 게맛살의 주원료도 명태 살이다. 그래서 명태라는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전 세계에서 명태를 가장 사랑하고 즐기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명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명태라는 이름은 명천의 명서방이 처음 잡았다고 해서 명태라고 하였다는 속설이 있지만, 명천 지방에서 처음 잡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이름이 없는 물고기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지명에 물고기를 나타내는 대/태를 붙여 급조한 이름일 것이다.
명태는 원래 우리나라 해안에서 잡히던 물고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베링해 연안에서 주로 잡힌다. 가곡 명태에서 노래한 것처럼, 명태는 찬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로 섭씨 1~5도 정도의 수온에서 서식하며 얼음이 있는 해역에서도 살아간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연안의 수온이 떨어진 시기는 17세기 숙종 무렵이다. 17세기는 한반도 일대가 급격하게 한랭화하였던 시기였고, 낮은 기온 때문에 곡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할 때, 바다에서 처음 보는 물고기가 찬물을 따라 남하한 것이다. 기근을 해소하라고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었다. 이후 명태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 겨울철 대표 생선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1960~1980년대에는 동해안에서 풍부하게 잡히며 국민 생선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남획과 해양 환경 변화, 수온 상승 등의 이유로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현재는 대부분 러시아산 명태를 수입해서 버티고 있다. 수산 분야에서는 명태를 복원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무망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연안의 수온은 겨울철에도 명태에게는 열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명태야말로 기후의 한랭화 때문에 문득 나타나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다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물고기다. 우리나라 주변의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수온은 계속 오르고 있다. 몇 년 후에 우리나라 연안의 수온이 30도가 되면, 어획되는 물고기가 아예 달라질 것이다. 시원하고 담백한 맛으로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대구 역시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영하 1도에서 10도 사이에 서식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수온은 5~7도이므로, 명태보다 조금 높은 온도에서 버틸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수온이 올라간다면 대구도 더 이상 우리나라 해안에서 머물 수 없게 될 것이다. 오징어는 적응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대와 온대를 오가기 때문에, 조만간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른다. 기후변화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만 난감한 것이 아니다. 바닷속의 생물들도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