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체포·몸수색부터 구금 기간 내내 인권 완전 실종” [미 조지아 ‘구금 일지’ 언론 공개]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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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공장 근로자 일지 남겨
미란다 원칙도 없이 신체 결박
시설도 엉망, 조사 땐 조롱까지
방한 미 국무 부장관 “깊은 유감”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7일간 구금된 근로자들 중 한 명인 A 씨의 ‘구금일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사진은 구금 과정에서 수갑과 쇠사슬을 찬 근로자들 모습.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7일간 구금된 근로자들 중 한 명인 A 씨의 ‘구금일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사진은 구금 과정에서 수갑과 쇠사슬을 찬 근로자들 모습.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구금된 근로자의 일지가 뒤늦게 세상에 공개됐는데, 여기에는 참혹했던 당시 구금시설 환경과 인권 침해 상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파장을 우려한 듯 14일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날 연합뉴스가 입수해 공개한 A 씨의 일지에 따르면, 합법적인 B1 비자(출장 등에 활용되는 단기 상용 비자)로 입국한 그는 두 달간 업무 미팅 및 교육을 위한 출장 도중 케이블 타이에 손목이 묶인 채 체포됐다.

4일(현지 시간) 오전 10시께 현장에 들이닥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한 근로자들을 1차로 몸수색했다. 오후 1시 20분 ICE 요원들은 외국인 체포 영장과 관련한 서류를 나눠주며 빈칸을 채우라고 했다. 일지에서는 요원들의 서류에 대한 설명도, ‘미란다 원칙’ 고지도 찾아볼 수 없다. A 씨는 “근로자들은 이 종이를 작성하면 풀려나는 줄 알고 종이를 제출했다”며 서류 제출 후 손목에는 빨간 팔찌를 채웠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A씨는 9시간 넘게 대기하다 손목에 케이블 타이가 바짝 채워진 채 호송차에 탑승했다. 먼저 간 사람들은 쇠사슬로 허리, 다리, 손목까지 채워진 채 이동했다. 호송차 내부에는 변기가 있었고 지린내가 진동했다. 에어컨도 켜주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근로자들은 구금 초반에 72인실 임시 시설에 몰아넣어졌다. 늘어선 이층 침대와 함께 공용으로 쓰는 변기 4개, 소변기 2개가 있었다. 시계도 없고 바깥도 볼 수 없었다. 침대 매트에는 곰팡이가 펴있었다. 해당 구금시설은 현지 언론을 통해 과거 미국 국토안보부(DHS) 감사에서 수감자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곳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변기 옆에는 겨우 하체를 덮는 천만 있었다고 한다. A 씨는 생리 현상을 참으며 버텼다.

겨우 버텨가던 구금 3일 차 6일이 돼서야 비로소 ICE의 인터뷰가 시작됐는데 요원들은 ‘자발적 출국 서류’를 나눠준 뒤 서명하라고 했다. 상당수 구금자는 ‘불법’이란 단어로 채워진 서류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일단 서명했다.

이들의 첫 질문은 ‘무슨 일을 했느냐’였다. A 씨는 업무 미팅 및 교육을 위한 출장을 왔다고 답변했다. 이후 별다른 질문이 없던 요원은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남한)인지를 물었고 A 씨는 맞는다고 답변했다. 이를 들은 직원들은 웃는 표정으로 대화하며 ‘노스 코리아’(North Korea·북한) 등을 언급했다. A씨 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를 가지고 농담·장난을 하는 것 같아 열 받았지만, 혹여나 서류에서 무엇인가 잘못될까 봐 참았다”고 일지에 기록했다.

인터뷰 말미에 A 씨는 “나는 적법한 B-1 절차로 들어왔고 그 목적에 맞는 행위를 했는데 왜 잡혀 온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겠고 위의 사람들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요원의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일부 요원들은 다른 구금자에게 ICE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구금 4일차인 7일 총영사관 및 외교부 직원 4명이 구금자들을 만났다. 총영사관 측에서는 “다들 집에 먼저 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사인하라는 것에 무조건 사인하라”고 말했다고 A 씨는 전했다.

또 분쟁이 생기면 최소 4개월에서 수년간 구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사인하면 강제 출국당해 비자는 취소되고, 전세기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안내했다고 한다.

이처럼 당시 구금됐던 이들의 불합리한 조처가 일지를 통해 확인된 이날 크리스토퍼 랜도 미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을 찾아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이번 사태를 제도 개선 및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전기로 활용해 나가자고 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귀국자들이 미국에 재입국 시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며, 향후 어떠한 유사 사태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박윤주 1차관은 우리 기업 근로자들이 부당하게 미국내 구금시설에서 감내해야 했던 불편한 처우에 대해 언급하며, 해당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깊은 충격을 받았던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미 측이 우리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재발 방지 및 제도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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