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크라이나를 망친 젤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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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3년 끈 전쟁 국토·인명 큰 피해
미국도 등 돌려 패전 굳어질 듯

이미 승산 없지만 고집 세워
대통령 경쟁 정적 제거에 몰두

애초부터 무모한 잘못된 선택
중립·균형 외교 포기 비극 자초

올 것이 오고 말았다. 100만~150만 명의 국민을 희생시키며 3년을 끌어온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패전이 굳어져 간다. 나라가 거덜 났다. 국토의 20%는 이미 러시아에 넘어가 버렸고, 우방이라고 믿었던 미국도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는 앞으로 어떤 협상도, 회담도 없다”라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까지 한다. 미국은 100조 원어치를 퍼부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도 전면 중단했다. 광물 협정이 어렵사리 성사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국민은 앞으로 10세대 250년에 걸쳐 3500억 달러 혹은 그 이상을 미국에 내야 한다.

유럽이 일견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젤렌스키를 돕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남을 제물로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유럽의 ‘술책’이고, 게다가 미국이 빠진 유럽이 무슨 힘이 있을까. 프랑스의 평화유지군 파병, 영국의 4조 원 차관 약속이라는 것도 국제 정세와 역내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난 2월의 나토 합동 군사훈련에도 32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겨우 9개국만 참가했다.

전황 정보를 종합해보면, 미국의 무기 지원과 정보 중단 훨씬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의 패전은 명확했다. 살아날 불씨가 없다. 4개의 큰 전선 가운데 북쪽의 루간스크, 동남쪽의 자포리자와 헤르손은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에 넘어갔고, 도네츠크, 그중에서도 포크로우스크 전선만 우크라이나군이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곳은 희토류 등이 많은 광산 지대로 엄폐물이 의외로 많고, 전차전을 펼 수 있는 평야 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초의 점령지에서 36%만 남은 서북쪽의 쿠르스크에서도 백악관 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 쪽의 공세가 심해졌다. 이러다간 수도 키예프와 서부 등 나라 전체가 없어질 판이다. 경제도 완전히 망가졌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는 거꾸로 간다. 승산 없는 전쟁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계속 이어가려 하고, 징집 나이도 25세에서 18세로 확 낮추려 한다. 사업가들을 쥐어짜 정치자금을 더 불리고, 전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 등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국내 정적들을 미리미리 제거하느라 바쁘다. 거의 내란 수준이다. 이건 지도자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무모하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작은 나라의 국가 지도자라면 전쟁보다는 균형 외교를 택했어야 했다. 핵 재무장론도 해결책이 아니다. 외세를 끌어들여 강대국과 전쟁을 벌이기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국가 기반이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변방’이라는 뜻의 우크라이나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독립의 역사가 겨우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키예프 러시아(882~1240)도 바이킹과 노브고로드 귀족들이 내려와 세운 고대 러시아국가였고, 오랫동안 우크라이나 서부는 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았다. 동부는 세금과 부역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와 살았던 러시아 하층계급 코사크의 자치구역이었다. 돈바스 지역에 지금까지 러시아 뿌리가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 맞서 1654년에 러시아 제국에 영토 병합을 스스로 요청한다. 소련이 300년 뒤인 1954년에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서류상으로 할양한 것도 사실은 이 사건을 다시 자축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1917년 2월의 러시아 부르주아혁명 혼란기에 잠깐 독립을 했다지만,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독립한 건 소련 붕괴기인 1991년 8월 24일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고 국력도 약한 나라가 왜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며 침몰을 자초하는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몹시 안타깝다.

지도자의 죄가 크다. 서방은 떡 줄 생각조차 안 하는데 전임자인 포로센코 대통령은 말기에 헌법까지 고쳐가며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더니, 젤렌스키는 더했다. 2019년 5월 집권 초기엔 균형 외교를 잠깐 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미군을 국토로 끌어들여 포 사격 등 도발을 먼저 감행하고 아예 중립과 등거리 외교를 포기해버렸다. 물론 우크라이나 비극이 젤렌스키 탓만은 아니고, 1990년 10월 독일 통일 때의 부시-고르바초프 약속을 어기고 미국이 계속 동진해오고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2022년 2월에 사방에서 내려온 탓도 크다. 그러나 지도자가 잘했으면 우크라이나가 오늘날의 이런 꼴은 당할 리 만무하다.

탄핵 정국이 올봄에 어떻게 정리되어 대한민국호가 어떤 새 출발을 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앞으로 국가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정보다 권력욕, 모험주의, 화려한 언변을 앞세우는 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엔 젤렌스키 동정론이 의외로 강한 듯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비극을 보면서 그저 약소국 지도자의 비애, 비정한 국제관계만 읽는다면 숱한 희생을 치른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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