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흩어져야 낳는다
인구 밀도 높아지면 생존 본능 앞서
서울로 이동한 청년들 애 적게 낳아
수도권 집중이 초저출산 근본 원인
거점도시 집중 육성이 현실적 대안
지역 시혜 아닌 국가 생존의 문제
드라마틱한 전략 없인 공멸의 길로
국내 최고 인구학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대 조영태 교수가 2020년 인구와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망국적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남긴 말이 ‘흩어져야 낳는다’였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절대 사라지지 않는 두 가지 본능이 생존과 재생산인데 인구 밀도가 높아 경쟁이 심해지면 생존 본능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재생산 본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원이 있는 소수로 한정된다. 수도권 인구 밀도의 상승이 초저출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2020년은 서울·경기·인천을 합한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절반을 넘긴 첫해였고 우리나라 인구 증가가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선 분기점이 된 시기였다. 그는 앞으로 10년이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했다. 인구가 줄긴 하겠지만 크게 줄지 않고 대다수 베이비부머가 여전히 경제활동을 할 것이어서 초저출산에 따른 경제·사회적 여파를 감당할 여력이 있을 것으로 봤다. 이 기간 정권의 부침을 떠나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해 국가적 잠재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경고였다.
그 10년 중 3년이 다 지나가는 지금 통계로 확인되는 지표는 수도권 집중의 심화이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합계출산율의 추락이다. 통계청은 7일 국가통계포털을 통해 최근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긴 20대 청년이 60만 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울산·경남에서만 20만 명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 결과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6%가 몰려 있고 쏠림은 점점 가속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이 지난 2일 ‘지역 경제 심포지엄’에서 공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 경제 보고서’는 청년층의 수도권 유입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진행되고 저출산으로 이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2015년 이후 2021년까지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의 78.5%가 청년층(15~34세)이었다. 이들이 수도권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지역 간 기대 소득과 문화·의료서비스 격차였다. 2021년 한 해에만 비수도권에서 청년층 유출로 줄어든 출생아 수가 3만 1000명이었는데 수도권으로 청년이 유입된 결과 늘어난 출생아 수는 2만 5000명으로 결국 6000명의 인구 손실이 발생했다. 서울 등 수도권 인구 밀도 상승에 따른 추가적 출산 손실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1만 명을 넘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향한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녀 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기존 수도권 청년들마저 경쟁이 심해지자 출산을 줄인 결과다.
보고서는 대안으로 비수도권 거점도시 위주의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거점도시에 집중해 산업 규모와 도시 경쟁력을 키워야 수도권 팽창을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2000년대 이후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혁신도시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 간 형평성만 강조해 역량을 분산시킴으로써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은의 시뮬레이션 결과 거점도시로의 인구이동이 늘면 현재 50.6%인 수도권 인구 비중은 30년 후인 2053년에는 49.2%로 떨어지고 전국 인구도 50만 명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현재의 이동 추세가 이어지면 2053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53.1%까지 늘어나고 인구 감소세도 지속된다.
통계에 기반한 사회과학적 분석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더 이상의 수도권 집중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맞먹는 거점도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권 집중은 지역 불균형이라는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나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한계를 넘었다. ‘김포 지옥철’은 인프라 투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의 수도권 집중은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위원회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인 것은 지방시대위가 지역 주도의 선택과 집중에 의한 균형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부산과 서울의 두 바퀴론을 들고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구체적 실행 단계로 들어가면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핵심 전략인 기회발전특구만 해도 실효성에 회의적 시각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 강석구 조사본부장은 현재까지 나온 세제 감면이나 규제 완화 수준으로 기업의 지역 투자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부산에서라도 성공 모델을 만들어 보는 일이 중요하다. 공고해진 수도권 집중 구도를 깨는 일은 지역에 대한 투자 확대든 규제 철폐든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2030년도 이제 머지않은 미래다. 그 안에 해답을 찾지 못하면 공멸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