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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부산비엔날레 더부살이 이제 그만!
여전히 더부살이는 계속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얘기다. 지난 8월 16일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2024 부산비엔날레가 오는 10월 20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지역 4곳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2002년부터 부산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단 한 번도 비엔날레 전용관을 보유한 적이 없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는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2018년부터 현재까지는 부산현대미술관 등에서 더부살이 전시를 하는 실정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을 지을 당시에는 비엔날레 전용관으로 활용될 예정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메인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용관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부산비엔날레의 역사는 더부살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부산비엔날레조직위 사무실도 부산시청에서 동래구 사직동(아시아드주경기장 내), 그리고 동구 초량동으로 이전을 거듭하며 더부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산시가 퐁피두센터 분관 부산 유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새로운 것만 추구하거나 외국의 문화나 명성에만 기대는 것은 올바른 문화 행정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 부산시는 부산비엔날레의 더부살이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좌표를 살피고 나아갈 길을 점검해야 한다.
■ 비엔날레 전용관 왜 필요한가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미술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행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지역 문화 발전을 선도해 왔다. 특히 국제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미술적 시도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국내 양대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에는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로부터 세계 10대 전시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부산비엔날레는 그동안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문화회관, F1963, 부산항 제1부두 등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왔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세계 미술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관람객 입장에선 장소의 신선함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예술가들은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다. 비엔날레의 일관된 정체성과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전용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비엔날레가 운영되다 보니 자칫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고 휘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매번 다른 장소에서 전시를 관람해야 해 일관된 예술적 경험을 얻기 어렵고, 교통 편의성 문제도 존재한다. 특히 비엔날레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다른 전시 공간과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비엔날레는 흥행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데 교통 불편과 흥행은 대척점이다. 관람객의 편의성, 흥행성을 기반으로 한 전용관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전용관의 파급 효과는
미술계에서는 비엔날레 전용관이 지역 문화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예술 작품을 통해 주민과의 소통을 증진하고, 지역 문화 자산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용관은 또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전용관을 통해 비엔날레 기간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작가 레지던시(창작 스튜디오), 작가 교류, 시민 소통 또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전용관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비엔날레 기간에 현대미술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산비엔날레의 일부 전시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면서, 미술관은 비엔날레 준비 기간을 포함해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5~6개월 비엔날레 측에 임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전용 공간 확보가 비엔날레 행사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고,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용관은 부산비엔날레의 정체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전용관이 마련되면 상시적인 작업 공간이 확보돼 비엔날레 행사 때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여하튼 전용관의 건립은 비엔날레의 안정적 운영 기반 조성, 세계적 수준의 부산비엔날레 이미지 구축, 전시행사 이외 다양한 비엔날레 행사 개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단순히 문화관광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넘어, 이제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발원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행사 기간만 반짝하는 비엔날레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 국내외 전용관 활용 사례
성공적인 비엔날레들은 어떻게 전용 공간을 활용하고 있을까.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95년부터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전시 공간에서 전시를 이어오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아르세날레는 역사적인 조선소를 개조한 공간이며, 지아르디니에는 각국의 국가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고정된 전시 공간 덕분에 지
속적인 인프라 투자와 효율적인 운영도 가능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도 1951년 이후 이비라푸에라 공원 내 시시리오 마타라조 파빌리온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오며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932년 시작된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 역시 고정된 공간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함으로써 그 위상을 꾸준히 높여왔다. 이들 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히며, 전용 공간이 안정적인 운영과 미술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인지도를 자랑하는 광주비엔날레도 1995년 첫 시작부터 전용관을 갖고 출범했다. 최근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작품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자, 광주비엔날레 측은 2027년 완공 예정인 새 전용관을 현재의 비엔날레 전시관 주차장 위치에 건설 중이다. 광주는 전용관에서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인근 광주시립미술관과 대인시장, 광주극장, 무각사 등 광주의 특징적인 장소에도 전시를 배치했다.
■ 다시 전용관 진지하게 고민할 때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전용관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전용관을 새로 짓자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착실히 준비하자는 것이다.
전용관을 새로 짓는 대신,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 사용된 북항 1부두 창고와 같은 지역의 옛 창고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부산에는 교통 편의성도 뛰어나고 비엔날레의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가 제법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이제 전용관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예술가의 참여를 유도하고, 부산비엔날레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한다. 전용관을 통한 지속 가능한 미래 구축은 부산을 넘어 국내는 물론, 국제 미술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산비엔날레를 베네치아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처럼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시키려는 꿈이 있다면, 부산시는 비엔날레의 더부살이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 도시를 꿈꾸면서 부산비엔날레에 전용관 하나 없는 현실은 치명적이다. 앞으로 30년, 100년을 내다보는 문화 정책, 문화 행정을 기대한다. 아울러 부산시의 문화 행정이 퐁피두센터 분관과 같은 외형적 화려함만 좇지 않기를 바란다.
2024-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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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한국은 해리스와 트럼프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할까
11월 5일,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전 세계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7월 13일 암살 미수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듯한 분위기가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지명한 이후 한 달 사이에 판세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근소한 우위를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어떤 반전 드라마가 펼쳐질지 예측불허의 상황이다. 극심한 양극화와 포퓰리즘, 감정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은 '팍스 아메리카'에 입각한 대외 정책보다는 범죄율, 이민, 인플레이션, 낙태, 교육, 성소수자 정책 등이 핵심이다.
■싱거운 승리 & 숨 막히는 접전
트럼프의 승리로 싱겁게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대선은 최근 롤러코스터 모양새다. TV토론 바이든 참패(6월 27일)→암살 시도로 피 흘리면서도 주먹 불끈 쥔 트럼프(7월 13일)→트럼프의 귀환을 선언한 공화당 전당대회(7월 15~18일)→바이든의 대선 후보직 전격 사퇴(7월 21일)→해리스 후보 선포와 민주당 전당대회(8월 19~22일)로 급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전국적으로 해리스와 트럼프 지지가 각각 46%, 45%로 해리스가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7개 경합주 중에서 선벨트(Sun Belt) 경합주에서는 2 대 2 동률을 이루고, 3개 러스트벨트(Rust Belt) 경합주에서는 해리스가 우세한 모양새다. 선거 판세의 주요 지표인 선거자금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민주당은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된 지 불과 3주 사이에 5억 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이 모였다. 그중 60% 이상이 경합주에서 그것도 신규 기부자들로부터 쏱아졌다고 한다.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나서며 여성과 젊은 층, 유색인종의 결집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23~2024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에서 연구년을 보낸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안상욱 교수는 “지금은 해리스가 따라잡는 듯 보이지만, 트럼프가 예전 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꺾고 힐러리를 이겼듯이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안 교수는 “첫 번째 TV토론 이후의 민심 향방, 해리스에 대한 집중적 공격, 지지층 결집 등이 향후 대선을 판가름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88년 동안 미국 대선에서 현직 부통령이 승리한 경우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일부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독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이민·에너지’ 이슈에서 민주당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과연 해리스가 우위를 차지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갑자기 등장한 해리스에 대해 트럼프 진영과 언론의 끈질긴 검증으로 약점이 드러날 경우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과 서민 경제난
미국 대선의 핵심 이슈는 고물가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7%를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때는 연평균 1.9%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을 공격하는 핵심 포인트가 ‘바이든 정부에서 물가가 살인적으로 올랐다’였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파괴적인 인플레이션 위기를 즉각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형유통점 코스트코에는 저렴한 기름을 넣기 위해 아침부터 차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생활물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미국 한인 교포들은 “외식 가격이 너무 올라 식당에서 밥 한 끼 사 먹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에 대응해 물가를 잡겠다며 지난 16일 “연방정부 차원에서 식료품 바가지를 제재하겠다”는 경제 대책을 내놓을 정도다.
■반이민 정책 강화될 듯
두 후보 모두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비슷하다. 대처 방법의 강도에 차이가 날 뿐이다. 친이민 성향의 민주당도 합법 이민 기회를 유지하거나 일부 확대하자는 정도이지, 불법 이민자를 관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불법 이주자들이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질러 미국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여론이 드센 탓이다. 미국 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6%가 더 높은 수준의 국경 강화 정책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의 국경 및 이민 정책이 완전히 재앙이라면서 재집권 시 국경 강화는 물론, 불법 이민자 수색 및 대량 추방, 대형 수용소 건설을 공언하고 있다. 또한, 해리스를 '국경 차르(czar·황제·최고 책임자)'였다면서 이민 정책의 실패를 공격하고 있다.
■“차에 물건을 두고 내리지 마세요!”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서도 경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정책 때문에 차량을 깨고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 노상 방뇨 등 경범죄가 횡행하면서 주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마저 불안해하고 있다. 대부분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 뉴욕 등 대도시가 많은 주에서 범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마약 관련 범죄도 심각하게 증가해 미국 LA 도심의 6차선 도로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이 좀비처럼 도로를 막고 서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LA 다운타운에서조차 한 블록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위험할 정도라고 한다. 공화당은 경범죄자들은 처벌하지 않는 민주당 정책을 비판하면서, 처벌을 강화하고 강력범죄 교도소 신설, 범죄 소탕에 주방위군 동원을 주장하고 있다.
■“저 사람들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요?”
해리스 부통령이 선정한 부통령 후보 팀 월즈와 트럼프가 선정한 JD 밴스 부통령 후보의 싸움도 관전 포인트다. 미네소타 주지사인 월즈는 흙수저 출신으로 주 방위군에서 복무한 뒤 교사와 풋볼코치 등을 거쳤다. ‘따뜻한 이웃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가진 월즈는 전당대회에서 프롬프트를 보지 않고 연설할 정도로 말솜씨가 뛰어나다. 풋볼코치로 휴식시간에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는 즉흥연설을 하면서 닦은 실력이라는 중평이다. 이에 비해 오하이오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같은 흙수저이지만,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로 실리콘밸리에서 부를 쌓은 밴스의 경우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반대파로 정치적으로 성장한 뒤, 권력을 위해 친 트럼프로 돌아섰다는 지적이다.
월즈 주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을 두고 한 말이 미국 정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발언으로 ‘해리스, 월즈, 민주당=정상’ ‘트럼프, 밴스, 공화당=비정상’이란 프레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리스도 여성의 낙태권을 공격하는 트럼프와 밴스를 여성혐오론자나 성차별주의자라고 공격하는 대신 “그냥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불렀다. 상식과 비상식의 구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중국과의 패권 전쟁은 강경해질 듯
트럼프와 해리스 두 후보 모두 ‘중국 억제’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역임한 매트 포틴저는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대체할 수 없는 승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며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라면서 “미국과 중국은 이미 냉전 상태에 돌입했고, 명확한 목표는 중국 정부가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끔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도 ‘힘을 통한 평화의 귀환’ 기고문에서 “중국을 군사적·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적”으로 규정했다. 정당과 관계없이 누가 당선되더라도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 첨단 기술 수출 통제 등 기술 패권과 무역 전쟁이 불가피할 조짐이다.
■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
대선 여부에 따라 주식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핵심 정책인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축소 및 폐기를 예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IRA를 폐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 승용차량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방 보조금이 철회되거나 감소해 인센티브가 없어지게 되면, 대미 투자를 결정한 한국 자동차업체와 배터리 회사들도 투자 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
■동맹정책, 외교 롤러코스터 타나
미국의 정권교체는 대외정책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대체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해외에서 미국의 안보와 가치를 확고히 증진하겠다"면서 바이든의 바통을 이어받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해리스가 집권하면 각종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국제정치가 예측불허의 전장으로 변하게 된다.
트럼프는 일방적, 예측불가능한 형태로 대외정책을 처리할 위험성이 높다.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요구,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 독자적 미북 협상 추진 등이 우려된다. 트럼프는 관세 인상과 보호무역정책, 다자주의에서 양자주의로 전환, 고립주의로 바뀌는 추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내세워 이념과 가치, 동맹과 신뢰를 추구했던 것에서, 이익 추구가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임석준 교수는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예측 가능한 해리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현재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창했던 다자주의동맹 등 국제 관계를 이어가야 한국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이번 대선의 결과에 따라 향방이 엇갈릴 전망이다.
■한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해리스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혹은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칠까. 11월 5일 선거 결과에 따라 많은 국가와 기업,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지게 된다. 확실한 사실은 어느 정당이라도 대중국 압박과 미국 중심주의는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이 어떤 스텝을 밟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안상욱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국의 해외 원자력발전소 건립 사업 등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도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수 있다”면서 “대선 이전에 두 후보 진영과의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2024-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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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건국절 논란은 왜 안 사그라질까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 불거진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정부가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나 계획이 없었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 역사단체들은 대통령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 관장 등의 지명을 철회하는 등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다. 건국절 논란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뉴라이트가 촉발한 건국절 논란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된 건국의 날인 만큼 이를 기념하자”는 게 건국절 주장의 요체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는 곧 이승만 정부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논리로 연결된다.
건국절 주장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건 이명박 정부 때다. 2006년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씨 등 뉴라이트계(극우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인사들이 언론 매체를 통해 건국절을 주장하자,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국경일 개정 법안을 발의했고, 2008년 국무총리 산하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단체와 야권의 반발이 거세 유야무야됐지만 이후에도 건국절 주장은 이어졌다.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새로 발의했지만, 역시 흐지부지됐다.
건국절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을 지목한다. 이는 현행 헌법에 명확히 규정된 바다. 따라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건국절 주장은 오히려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흔드는 꼴이 된다. 이들은 또 건국절을 수용하면 1919년 이후 우리 독립운동사가 모두 사라지고, 따라서 친일파도 없는 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하지 않겠다고 직접 나서 단정적으로 말한 적도 없다. 건국절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런 이유로 여러 정황을 살펴 윤 대통령에게 의구심을 나타낸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그중 하나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은 건국절 논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해 7월 19일 이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부”라고 말한 데서 충분히 증명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에 건립 기금 500만 원을 기부하면서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의 성공을 응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독립운동과 광복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도 논쟁 대상이다. 2022년 취임 후 첫 광복절을 맞은 윤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축사에는 ‘자유’가 무려 33번 언급됐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반공’ 또는 ‘반북’으로 대체할 경우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실제로 이날 언급된 ‘자유 추구의 과정’은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것’을 일컬음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일관된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독립운동을 정의했고,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한반도 전체에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산 세력’ ‘자유 추구’ ‘건국 운동’ 등은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 인사들이 흔하게 동원하는 단어들이다. 윤 대통령은 비록 건국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정황이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추진 움직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뉴라이트 성향 윤 대통령의 사람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일까.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9일 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 것. 아닌 게 아니라 윤 대통령 주변에 뉴라이트 성향,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집권 후 요직에 기용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 지적이 그리 틀린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를 이끌던 핵심 인물들을 국가안보실장, 국정상황실장, 방송통신위원장,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에 앉혔고, 이런 경향은 역사·교육 관련 국책 기관의 수장 임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국가교육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이 죄다 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진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이다. 이번 광복절에 파란을 일으킨 독립기념관장도, 본인 주장과는 무관하게, 뉴라이트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반국가세력 vs 일진회 같은 인사들
윤 대통령이 지금껏 보인 역사 인식이 윤 대통령 개인을 넘어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집단의 인식에 연유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있지도 않은 건국절 계획” “억지 주장” 운운하고 심지어 “엄정 대응할 생각”이라고 을러대도, 윤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인물 배경이 바뀌지 않는 한 건국절 논란은 사그라질 수 없는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지난 13일 알려졌다. “국민 민생과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취지”라고 대통령실은 해명했지만, 뉘앙스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윤 대통령은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왜 필요한지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혹 “건국절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국민은 먹고사는 데나 신경 써라”는 뜻은 아니었는지….
‘두 쪽 난 광복절’ 사태에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은 자신 주위에 포진한 뉴라이트계 인사를 내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아니, 이전보다 더 강고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강조한 게 그렇다. 이날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을 계기로 열린 국무회의였다고는 하지만, 가슴 한편에 섬찟함이 가시지 않는다. 반국가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며, 항전 의지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가.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0일 “대통령 주변 옛날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말끔히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일진회는 구한말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 정책에 적극 호응한 대표적인 친일단체다. 묻게 된다.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이 문제인가, 이 회장이 언급한 일진회 같은 인사들이 문제인가. 어느 쪽이 실체인가.
2024-08-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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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새만금 잼버리 1년, 파행은 끝나지 않았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폐막 1년을 맞았다. 지난해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렸던 대회는 총체적 준비 부실로 ‘역대 최악의 국제 행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밖으로는 국제적 망신, 안으로는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도 파행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책임 소재 규명은 하세월이고 ‘네 탓’ 공방만 난무한다. 무슨 까닭일까.
■ 악몽의 12일
6년 준비 끝에 열린 2023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158개국에서 4만 3000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도 컸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드넓은 간척지 야영장에 햇볕을 피할 그늘이나 더위를 식힐 샤워장이 없었고 급수 시설도 태부족했다. 첫날부터 온열 질환자 400여 명이 속출했다. 영국이 조기 퇴영을 결정했고 미국과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도 뒤를 따랐다. 개최 시기 8월이라면 충분히 예견된 일인데, 어째서 아무런 대비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쏟아지는 비판에 정부가 대회 조직위원회를 대신해 직접 나섰으나 사태는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온열 질환자만 하루 1000명이 넘어가고 태풍 카눈까지 북상했다. 정부는 결국 대회 시작 일주일 만에 야영지 조기 철수라는 결정을 내렸다. 부랴부랴 대회 장소를 전국 곳곳으로 옮기고 K팝 콘서트와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을 위로했지만 '실패한 대회'라는 평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 총체적 실패
무려 117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새만금 잼버리는 기대한 만큼의 막대한 경제효과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와 도시 이미지만 먹칠하고 말았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은 파행 원인으로 조직위의 미숙한 운영을 지적했다. 안전, 보안, 청소년 보호, 의료지원, 위생, 현장 이동, 날씨 대응 등에서 상당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간척지가 어떻게 대회 부지로 선정됐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드넓은 평야라는 장점은 있지만 배수가 원활하지 않고 뙤약볕을 피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더 커서 야영지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잼버리 대회 종료 이후 수백억 원을 들여 설치한 샤워장과 급수대, 상하수도 등 야영 관련 시설은 채 열흘도 쓰지도 못하고 철거됐다. 잼버리 부지는 원래 ‘관광 레저’로 묶여 있다가 농업용지로 전환된 땅이다. 막대한 사업 재원을 농지 기금의 투입으로 해결하기 위해 용도를 변경했던 터라 대회 종료 뒤에는 야영장이 아닌 농경지로 다시 원상 복구해야 했다. 그런데 시설 철거에도 다시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갔다.
결국 전북도가 새만금 SOC(사회기반시설)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잼버리 대회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는 이런저런 사정들이 숨어 있었다.
■ 뒤처리도 파행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잼버리 대회에 쓰겠다고 했던 건물이 얼마 전 완공됐다. 이름하여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429억 원을 들여 당초 스카우트 박물관, 야영장 등 부대시설에 교육·숙박 시설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기획한 곳이다. 그런데 폐막하고 10개월이 흐른 지난 6월에야 완성된 것이다. 대회 메인 시설을 다 짓지도 못한 채 국제행사를 치른 셈이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도 쓰임새조차 확정되지 않은 이 건물에 매년 20여억 원의 운영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부실 논란의 당사자인 잼버리 조직위는 폐막 11개월 만인 지난달 12일에 해산했다. 해산 직전까지 올해 조직위 예산으로 약 17억 원이 넘게 편성됐는데, 사무총장 등에게 과도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달 초에는 잼버리 조직위가 200억 원에 가까운 예비비를 긴급 편성했으나 47억 원의 잔액이 남아 예산 집행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국회예산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역시 재정 투입을 통한 한국 정부의 개입을 문제 삼은 바 있다. 지난 4월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관련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막대한 재정 지원이 사실상 대회를 좌지우지했고 연맹 고유의 기획과 운영을 소외시켰다고 주장했다.
■ 늦어지는 책임 규명
1년이 지났지만 파행 책임을 놓고 지루한 ‘네 탓’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권은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5년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조직위와 전북도가 대회를 성공시킬 역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1년은 윤석열 정부 시기였다’고 반박한다. 총사업비 1171억 원 중 문 정부가 집행한 예산은 156억 원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마당에 감사원 감사는 무한정 지체되고 있다. 감사 대상 기관은 여성가족부, 조직위, 전북도 등 11곳인데, 지난해 9월 시작된 감사가 11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아직 중간 단계인 ‘보고서 작성’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 감사 결과 최종 발표 시기조차 미정이다. 잼버리 사태는 아무도 책임을 지는 이 없이 망각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제2, 제3의 새만금 안 나오려면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살피는 일은 또 다른 지자체의 여러 국제 행사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2010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각 지자체의 국제 행사 유치 움직임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행사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무턱대고 개최만 하고 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부실한 계획으로 인한 예산 초과 투입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현재 개최를 앞두고 있거나 추진 중인 국제 행사들이 상당수인데 지금이라도 운영 상황 전반을 철저히 다시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실효성 있는 사후 평가 제도가 필요하다. 지자체의 차기 국제 행사 유치 때 행사의 질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부산은 지난해 월드엑스포 유치에 실패했지만 다양한 국제 행사를 치른 경험이 있고 향후에도 더 많은 국제 행사를 치를 게 분명하다. 이번 잼버리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반면교사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우리의 자부심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제2, 제3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안 나오려면 파행의 실체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필수다. 이와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과 제도 개선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진영논리에 좌우되거나 유야무야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2024-08-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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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사도광산, 1만 곳 이상 더 있다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조선인의 ‘강제’ 노역 표기 누락이 한국 정부의 용인 속에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비판 여론이 거세다. 한국 외교부가 ‘강제’ 표현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이 거부했고 결국 인근 아이카와(相川) 향토 박물관에 징용 조선인 전시를 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박물관 안내판에는 한반도에서도 징용제가 실시됐고,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더 힘든 일에 내몰렸다는 서술이 있으나 결국 강제성이 표시되지는 않았다. 군함도에 이은 역사 인식의 후퇴를 한국 정부가 자초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에 투입된 곳은 군함도와 사도광산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강제 동원된 곳은 탄광뿐만 아니라 공사장, 농장, 항만, 군수 공장 등 모두 1만 1500곳에 달한다. 현지 동포와 일본 양심 세력은 조선인 징용을 ‘강제 연행’과 ‘강제 노역’으로 규정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시설을 만들고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후세에 알리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 과정은 일본 우익 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는 신산의 고비고비였다. 우경화가 급속히 진행된 일본에서는 지금도 ‘강제’ 표현을 없애려는 우익 단체의 집요한 공격이 이어지고 이에 맞서는 동포와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저항이 진행 중이다. 만약 ‘강제’가 아니었다면 식민 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이고, 이것을 우익 세력이 바라기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강제’ 표현을 스스로 포기했다. 민간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기억의 전쟁’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가담한 꼴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이 장면을 후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 양심적 시민·동포 “아픈 상처 전하자!”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게이센마치(桂川町)의 주택가 쌈지 공원. 추모비와 석비가 없었다면 이곳이 과거 탄광 밀집지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가한 풍경이다.
‘이곳은 1909년부터 60년간 탄광이 있었던 곳으로… 8000여 명이 생활… 전쟁이 격화될수록 노동자가 부족하게 되고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갱내에서 위험한 일에 종사됐다.’
추모비는 옛 요시쿠마(吉隈)탄광에서 갱내 화재로 숨진 조선인 25명과 일본인 4명 등 모두 29명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폐광 뒤 대단지 주택가로 조성되자 과거가 잊혀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주민들이 탄광 회사에 추모 시설을 요구한 덕분에 추모비가 건립돼 아픈 상처를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됐다. 추모비 옆 석비 뒷면에 적힌 조선인 사망자 명부를 읽어 내려가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부분 20대 초반이고 가장 어린 희생자는 19세. 식민지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들이 여기서 스러졌다.
이 지역에서 ‘강제 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을 30년 이끌며 추모비 건립에 앞장섰던 오노 세츠코 여사는 92세이던 2018년 <서일본신문> 인터뷰에서 징용 조선인이 겪은 고초를 전했다. “잊히지 않는 이는 경북 출신의 17세 정청정 군입니다. 강제 연행되어 탄광에 온 뒤 가혹한 노동을 못 견뎌서 결국 6개월도 안돼 탈주를 감행했죠. 장시간 과로에 시달렸기 때문이지요. 식사도 충분치 않았고 폭력은 일상적이었어요.”
기자가 예전에 일본 규슈 지역을 취재할 때면 일부러 한반도 관련 유적을 찾았는데, 개중에는 조선인 징용의 흔적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규슈 지역에 탄광이 많았고 탄광에 동원되는 경우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도 출신이 다수였다.
이국 땅에 끌려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귀향하지 못한 영령을 위로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긴 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동포와 양심적인 일본 시민이었다.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려 평생을 바친 이들을 만날 때면 고개가 숙여지곤 했다. 그중 잊히지 않는 곳이 사가(佐賀)현 히젠초(肥前町)의 사찰 고묘(光明)사. 주지 스님은 사찰에서 4㎞ 떨어진 탄광에서 숨진 조선인 영령을 반백 년이 넘게 돌보고 있었다. 사찰 뒤에는 영령 51위를 기리는 추모비까지 세웠다. “제법 떨어진 거리였는데도 밤만 되면 ‘아이고 아이고’ 하는 신음 소리가 사찰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주지 스님이 불귀의 객이 된 조선인들의 명단까지 새긴 석비를 세운 까닭이다.
후쿠오카현 오무타(大牢田)에는 과거 광업소 세 곳에 수천 명씩의 징용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에 투입됐다. 주택과 공원으로 변모한 폐광 부지에 동포들이 추모비를 세웠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후대들에게 전하여 갈 것이다.’ 동포들이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을 세운 것은 아픈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남기기 위함이었다.
■ “‘강제’는 없었다!” 우익의 반격
후쿠오카현 이즈카(飯塚)시 시립묘지에 있는 조선인 무연고자 납골당 ‘무궁화당’은 우익 세력의 공격 좌표가 되고 있다. 이 납골당은 과거 지쿠호(筑豊) 지역 탄광에서 숨진 징용 조선인 중 무연고자 117위를 모신 곳. 동포와 일본 시민들이 시에 끈질기게 요구해 2000년 시립묘지 내에 ‘무궁화당’을 세우고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일본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에 따라 2015년 갑자기 우익 단체가 등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문에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 각지로 연행돼… 지쿠호 탄광에서만 15만 명 이상이 가혹한 강제 노동에 투입돼 희생자가 많이 나왔다’고 쓰여 있는데, 이 ‘강제’ 표현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우익 단체는 “강제 연행의 실태와 숫자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더구나 정부의 견해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이 시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도 시립 시설이 무상 제공되고 있다면서 시 의회를 통해 시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무궁화당 측은 “강제 연행 등 비문 (근거)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 납골당 시설은 시와 협의해서 설치 허가를 받았다”고 일축했다. 우익 세력의 집요한 공격 탓에 납골과 연례 추모제가 위축될 우려가 제기됐으나 시민과 동포들은 꿋꿋이 버텼다. 추모제도 코로나19 기간 중단됐을 뿐 2023년 10월 재개됐다.
일본의 과거사 지우기 흐름 속에 식민 지배의 ‘강제성’을 삭제하려는 역사 공세가 강화되자 양심 세력은 힘겹게 진실을 지키고 있다. 이는 비단 무궁화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전역의 조선인 강제 동원 역사·추모 시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즉, 윤석열 정부가 ‘강제’를 포기한 것은 사도광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우경화 세력의 논리에 보조를 맞춤으로써 일제 지배 정당화 논리에 들러리를 선 것인데, 이는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전하려던 양심 세력의 장기간에 걸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 조선인 29.7% 강제동원 피해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당시 한반도 인구는 2636만 1401명. 이 중 징병·징용·군무원·위안부로 강제동원된 이는 782만 7328명(29.7%)에 달한다. 인구 10명 중 3명이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인류사에 보기 드문 가혹한 식민 지배다. 이 때문에 2010년 ‘강제동원지원특별법’이 시행되고 2015년 부산 남구 대연동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개관했다. 부산이 역사관 입지로 정해진 것은 규슈 탄광의 노무자 동원이 경상도에서 상당수가 이뤄졌고, 부산항이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관 전시물 중 징용 조선인들이 혹사당했던 탄광 모형이 있는데, 입구에 증언록을 전시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시작하고 (오후) 7시까지 12시간 일 해야 돼. 굴을 비우지 않고 3교대로 돌아가면서 그렇게 일을 해요. 나올 때 성한 사람은 몇 명 안돼. 다리가 잘렸다, 손이 잘렸다, 어디가 깨졌다…. 부상자가 3분의 2는 돼.”
이런 가혹한 노역이 이뤄진 곳은 규슈의 탄광 지대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공장, 농장, 공사장 등 1만 1500곳에 달한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광산 두 곳에서 ‘강제’를 감춘다고 해서 감춰질 수가 없다는 뜻이다.
■ 윤 대통령, 부산 강제동원역사관 방문해야
일제 강점기 시절 인도주의에 반하는 과거사에 대한 인정과 반성은 1995년 당시 일본 총리가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로 요약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지금 일본 정부는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외면한 채 과거사에 대해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한다. 그 연장선에 군함도가 있고 사도광산이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무라야마 담화 준수를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데, 되레 일본 역사 왜곡의 길을 터주는 모양새를 자초했다. 한마디로 외교 참사다.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정부가 임명한 독립기념관장에 대해 광복회가 뉴라이트 계열이라며 부적절성을 주장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은 국민 눈높이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래서, 79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께 간곡히 제안 드린다.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방문해서 징용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물을 살펴 보시라. 4층 상설 전시실 마지막 코너의 제목은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제동원’이다. 왜 강제동원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지 곱씹어 보시길 부탁 드린다. 일본 우경화 세력에 동조화되는 대일 외교 행보에 대해 언짢음을 느끼는 국민들이 왜 많은지 해답을 찾으시길 기원한다.
2024-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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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역대 최대 해파리 습격, 바다 안전 어쩌나
여름 피서철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전국 해수욕장은 해파리 습격으로 피서객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해파리는 해양생태계 파괴와 해마다 높아지는 수온 등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강도를 더해 가며 우리나라 전 해역으로 확산 중이다. 이 때문에 독성이 강한 해파리가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양식장과 근해 어업 피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해파리 종별 유입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하며 피서객과 어민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 방안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다.
∎제주·부산 이어 동해까지 확산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해역의 해파리 밀도는 ㏊당 108개체로 전년도의 0.3개체에 비해 폭증했다. 이는 국내 해역에서 해파리 모니터링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다. 이 때문에 피서철을 맞은 전국 해수욕장마다 해파리 쏘임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부산의 7개 주요 해수욕장에서 발생한 해파리 쏘임 구급 활동은 모두 195건인데 지난달 28일 하루에만 39명이 응급 처치를 받았다. 지난해 비슷한 기간 6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수치다. 부산·경남 해역에는 지난달 12일부터 노무라입깃해파리 ‘주의’ 특보가 발령된 상황이다.
국내 해역의 해파리 밀도가 높아지면서 부산·경남과 제주는 물론이고 동해로도 해파리 피해가 확산했다. 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중국 연안에서 발생해 해류를 타고 국내 해역으로 유입되는데 제주, 경남, 부산에 이어 동해로까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 따르면 올여름 동해안 6개 시군에서 집계된 해파리 쏘임 사고는 모두 500건에 달한다. 최근 일조량 증가와 연안 해역의 급격한 수온 상승으로 동해안으로 해파리 출몰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서객 쏘임에 어업 피해도 속출
국내 연안에서는 2010년 이후 해파리 출현이 잦아지기 시작해 해마다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연도별 편차는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길게 더 많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수욕장 피서객 쏘임 사고는 물론이고 어업 피해도 속출한다. 해파리에 쏘일 경우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통증과 붓기가 발생하고 알레르기 반응으로 설사, 복통이 생기기도 하는데 심할 경우 혈압 저하,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고 쇼크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어 방심할 수 없다. 2012년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8세 여아가 해파리에 쏘여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연근해 어민 피해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고수온과 해파리 밀도 증가로 어민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해양수산부와 지자체가 피해 실태 조사 등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최대 200㎏에 육박하는 해파리가 그물에 걸리면 그물이 찢어지고 어획량 감소로 이어진다. 또 해파리에 의해 물고기가 폐사하거나 훼손돼 상품성도 떨어진다. 연근해 어민들에 따르면 7~8월 극성을 부리다 10월이면 사라지는데 이제는 11월에도 나와 골치라고 한다.
∎해양생태계 파괴와 해파리 증식
인류보다 먼저 지구상에 나타난 해파리는 엄청난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생존력을 길러 왔다. 환경에 철저하게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환경 변화에 따라 이동하며 적응한 것이다. 우리 수역의 해파리 증가도 해수 온도 상승과 함께 동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하면서 먹이를 따라 자연스레 유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적으로 해파리 개체 수 증가를 둘러싸고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고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워낙 종이 다양하고 종마다 생태적 특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함께 남획으로 인해 쥐치와 거북이 등 천적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해파리 개체 수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는 연안의 인공구조물이 많아지면서 해파리 서식지가 확장해 개체 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해파리 같은 자포동물의 부착유생인 폴립이 인공구조물에 부착돼 다량으로 번식한다는 것이다. 새만금방조제 축조 후 서해안에 해파리 밀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어민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인간에 의한 해양생태계 파괴가 해파리의 이상 증식과 공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해파리 퇴치 안간힘
해파리는 유해조류로 인명과 어업 피해는 물론이고 대량 증식의 경우 해양생태계 균형에도 치명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국립수산과학원은 2010년부터 모니터링을 통해 주의보와 경보 등을 발령하고 있다. 단계별로 해파리 특보가 발령되면 각 지자체는 해당 수역에서 그물에 칼날을 달아 해파리 퇴치 작업을 벌인다. 또 해파리 수매사업을 통해 개체 수를 줄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해양환경공단은 해파리 번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산란장을 찾아 폴립 제거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양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보니 근본적 퇴치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김경연 연구사는 “국내 해역에서 강한 독성으로 문제가 되는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경우도 중국 연안 개발에 따른 부영양화 등으로 개체 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환경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해파리가 국내 어업과 해양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연구와 인력 등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4-08-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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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개 식용 종식법’ 시행, 남은 개들은 어쩌나…
지난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30여 동물보호단체가 결성한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국민행동’ 주최로 ‘2024 초복 문화제’가 열렸다. 이들은 이른바 ‘보신탕 문화’의 빠른 근절을 촉구하는 동시에 정부가 개들을 살리기 위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 세간의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초복이었던 지난 15일 시중의 보신탕집을 찾는 발길이 예년보다 한산했다는 소식이다. 업주들은 ‘초복 특수’가 사라졌다고 울상이라는데, 사정은 지난 25일 중복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법은 시행되는데…
지난 2월 공포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마침내 다음 달 7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보신탕 등으로 먹기 위한 개는 기르지도, 죽이지도, 팔지도 말라는 법이다. 이를 어기면 꽤 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처벌 조항은 공포 후 3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 2027년 2월부터 적용된다. 개 식용을 둘러싼 오랜 논란을 해소하고 동물 복지와 생명 보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분명 진일보한 성과라고 하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개 농장 등 관련 업체가 특별법에 따라 전업 또는 폐업할 경우 정부가 어떻게 얼마나 보상·지원하느냐를 놓고 업체와 정부 사이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육견협회 등은 이번 달까지 정부의 지원책이 확정되지 않으면 개 식용 종식을 전면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개 식용 사업은 그동안 불법으로 진행됐는데 왜 국민 혈세로 보상하고 지원해야 하냐”며 반발한다.
■50만 마리? 100만 마리?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식용으로 길러졌다가 특별법 시행 후, 특히 처벌 조항이 적용되는 2027년 이후에도 남아 있을 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국내 개 농장은 1500곳이 넘으며, 거기서 사육되는 식용 개는 50만 마리 이상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파악되지 않은 농장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실제로 동물보호단체들은 식용 개가 1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육견협회는 200만 마리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처벌이 유예되는 2027년까지 육견업자들이 보상을 노리고 집중 번식에 나서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식용 개들의 개체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뾰족한 수가 현재로선 없다. 육견업자들의 생업이 걸린 문제라 정부가 나서서 개체 수 제한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입양도 보호도 난감
향후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물론 육견업계와 동물단체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식용으로 사육 중인 개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없는 셈이다. 육견업자가 개를 버려둔 채 농장 문을 닫거나 살처분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육견업자들의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다. 처벌 유예 기간 안에 개를 모두 출하하거나, 판매하거나, 입양시키는 것이다.
개를 출하한다는 건 보신탕집 등으로 유통시킨다는 뜻이다. 향후 2년여 동안 지금 있는 개들을 다 먹어 치운다? 실현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특별법 시행 취지에도 맞지 않는, 차마 못 할 짓이다. 판매와 관련해 육견업자들은 정부가 개들을 매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십만에서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을 예산을 들여 모두 매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육견업자들은 마리당 200만 원의 보상액을 제시했다는데, 식용 개의 개체수를 고려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설사 정부가 무리해서 매입한다고 해도 이후 그 개들의 처리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지자체나 민간단체의 동물보호소가 있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그 마저 이미 포화 상태라 식용 개들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 입양도 난감하다. 식용 개 대부분이 20kg 이상의 대형견이라 일반 가정에서는 입양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개들을 그대로 유기할 수도 없는 일. 결국 안락사밖에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많은 개들을 모두 안락사시킨다? 그 자체로 참극이다.
■법으로 강제한 대가!
이런 현실에 그동안 개 식용 금지를 주창해 온 동물보호단체들은 곤혹스럽다. 최선을 다해 개들을 보호·관리하겠다지만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번식하지 않게 하고 남은 개들을 인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잘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제언할 따름이다. 정부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보호단체와 비공개 회의를 가졌는데 별다른 대안을 찾지는 못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말만 나왔다고 한다. 정부가 오는 9월까지 관련 기본계획을 수립한다지만 거기에 과연 획기적인 해법을 담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앞뒤 고민 없이 법으로 개 식용 금지를 밀어붙인 대가를 우리 사회가 톡톡히 치르게 됐다. 반려견 문화 확산으로 개고기 먹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형편이라 가만히 놔둬도 자연스레 ‘보신탕 문화’는 사라질 터인데, 굳이 그렇게 했어야 옳았나 묻는 이들이 많다.
2024-07-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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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홀리려 왔다는데…
제주(2020년 9월), 전남 여수(2021년 8월), 강원 강릉(2021년 12월) 찍고 이젠 부산이다. 일단 지금까진 통(通)했다. 국내 누적 관람객 수는 650만 명, 해외까지 합치면 700만 명에 달한다.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K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얘기다. 18일 국내 4번째로 부산서 개관해 19일 운영에 들어갔다. 그것도 영도 최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복합문화공간 ‘피아크(P-ARK)’ 바로 옆이다. 해외에는 2022년 홍콩을 시작으로 중국 청두, 미국 라스베이거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문을 열었다. 2026년까지 전 세계 20곳 개관을 목표로 한다. 아르떼뮤지엄이 심상치 않은 속도로 그 무대를 넓히고 있다. 이번엔 부산을 매혹하러 왔다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르떼뮤지엄이 뭐지
아르떼뮤지엄은 일반인들에게 조금은 생소할 수 있다. “미술관인 건 알겠는데….” 그다음부터는 말문이 막힌다. 간혹 프랑스 퐁피두센터처럼 외국 미술관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아르떼뮤지엄은 디지털 디자인 회사인 디스트릭트(d'strict)가 운영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설 전시관이다. 관람객이 마치 실제 작품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해서 흔히 몰입형이라고 한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오감을 자극하며,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미디어아트가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전시 공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과 관람객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시각 예술 작품은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바라만 보는 입장이었다면, 미디어아트는 영상과 소리는 물론이고 때로는 만져볼 수 있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작품 자체에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은 제일그룹이 운영 중인 영도 선박 수리공장 부지에 있다. 전시관은 1700여 평 규모다. 그 옆에는 제일그룹이 2021년 5월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피아크가 있다. 제일그룹은 부산 향토기업이면서 영도를 기반으로 하는 선박 수리 전문 기업이다. 지난해 1월 (주)디스트릭트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유치했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은 기존 조선 기계를 수리하던 공장의 외관을 유지하고 내부를 업사이클링(Upcycling) 했다.
■부산을 홀릴 수 있을까
최근 몇 년간 부산 영도는 다양한 문화공간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산업의 흔적과 현대적인 문화공간이 공존하는 영도는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개장은 이러한 영도의 매력을 더욱 확장시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하나의 문화공간이 추가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곳에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전시는 전통적인 예술 전시와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그룹 측은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피아크와 아르떼뮤지엄 부산을 찾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부산의 또 다른 복합문화공간인 수영구 소재 F1963과 비교하면 분명 한계도 있다. 우선 공간의 다양성 측면에서 아직 F1963에 미치지 못한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의 접근성도 크게 떨어진다. 주변에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누릴 수요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미술계에서는 비슷한 주제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공간이 전국에 네 군데나 있어 소위 장기간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차별성이 강하지 않으면 자칫 전시 매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국의 미술관들도 최근 미디어아트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지역 문화에 새 활력 기대
기업의 문화 참여라는 의미에서 제일그룹의 문화공간 확대는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다. 핵심은 아르떼뮤지엄 부산이 피아크와 연계해 지역 문화 예술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두 공간의 시너지 효과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탁 트인 바다 전망까지 갖췄으니 더할 나위 없다. 다만 지역 문화를 선도할 전진기지 역할을 하려면 주변 공간과의 연계, 지역 사회와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에 바다 문화 콘텐츠를 갖춘 인근 국립해양박물관과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까운 곳에 상승효과를 끌어낼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르떼뮤지엄 강릉은 참고할 만하다. 아르떼뮤지엄 강릉 주변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전시관 근처에 조선 중기 문인 허균과 허난설헌을 기리는 기념 공원이 있다. 공원 내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는 두 사람의 작품과 자료가 전시돼 있어 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인근에는 강릉의 대표 아이콘인 경포호가 있고,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경포호 근처에는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로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인 선교장(국가민속문화재)이 있다. 미디어아트를 경험한 뒤에도 문화를 누릴 콘텐츠나 기반 시설이 주변에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아르떼뮤지엄 강릉이 개관 1년 만에 100만 명의 관람객을 넘어설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주변 인프라도 큰 역할을 했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이 지역 문화를 견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반 확충 등 체계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참에 피아크와 아르떼뮤지엄 부산이 영도에 새로운 문화 활력을 불어넣고, 긍정적 변화를 끌어내는 지렛대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4-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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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에 또 난장판 된 축구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축구계가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 문제로 또 시끄럽다. 대한축구협회가 이달 7일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선임하자, 축구계 안팎에서 협회의 불통 행정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축구협회는 지난 2월 국가대표팀 내 불화와 전술 부재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때도 책임 떠넘기기와 무능 행정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팬들의 실망감만 깊어지고 있다. 이번 홍 감독 선임 역시 미리 대상자를 정해 놓은 채 충분한 협의도 없었다는 내부 폭로까지 나와 후폭풍이 거세다.
■ 또 불거진 협회의 불통 행정
많은 사람이 반대하던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대한축구협회의 일 처리는 이번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협회 내 소통은 없었고 정상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내부 지적이 잇따른다.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무려 100명에 가까운 후보군을 놓고 저울질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돌고 돌아 현직 K리그 감독인 홍 감독을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감독 선임 업무를 맡았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임했고 이임생 기술이사가 뒤를 이어 이 작업을 지휘했다.
그런데 그동안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협상했는지 충분한 내부 소통이 없었다고 한다. 100명이나 되는 많은 후보를 만났는데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결국 K리그로 눈을 돌려야 했다면 협회의 인물 정보나 협상 능력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라는 실무 조직이 무시당한 것도 문제로 떠올랐다.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라며 이미 내부 분위기는 국내 감독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부분은 이임생 기술이사가 8일 브리핑에서 “개별적으로 5명의 강화위원에게 ‘내가 최종 결정을 해도 되느냐’는 동의를 얻고 결정했다”고 밝혀 사실상 단독 결정임을 인정했다.
협회는 박 위원의 폭로에 ‘비밀유지 서약’을 어겼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감독 선임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이임생 기술이사가) 강화위원들과 소통한 후 발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말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 홍 감독의 처신도 미스터리
홍 감독 스스로 자초한 논란도 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엔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울산 팬들에는 “자신의 입장은 항상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바꿨다. 대표팀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이해해도 울산 팬들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다 홍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출전했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언행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선수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에선 이해할 수 없는 용병술로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아직도 회자하는 K리그 비하 발언과 ‘의리 축구’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홍 감독은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에 비해 국내 K리그 출신 선수들의 ‘급’이 훨씬 떨어진다며 해외파 출신을 선호했다. 하지만 여기엔 일관성이 없었고 손흥민 선수를 제외하면 오히려 해외파보다 국내 리그 선수들의 활약상이 더 돋보였다. 이때 소속팀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겪던 해외파 선수의 기용을 고집해 의리 축구에 집착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대회 중 적절치 않은 음주·가무 회식과 선수들의 신구 조화 실패로 결국 1무 2패의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 기로에 선 침체한 한국 축구
지금 축구계 분위기는 협회 행정에 대한 팬들의 불신과 올해 파리올림픽 출전 실패로 매우 뒤숭숭하다. 날씨로 치면 ‘매우 흐림’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2년 남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축구협회는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협회의 계속되는 헛발질로 인한 팬들의 실망도 그렇지만 축구계 내부의 심각한 분열과 불신은 더 문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장기 체제에 대한 축구계 내부의 불만과 이로 인한 소통 부재는 지난번 클린스만 감독에 이어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은 채 똑같이 반복됐다. 이런 병폐는 당장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48장으로 늘어난 북중미월드컵 출전 티켓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출전 자체는 당연하고 24강 진출 이상의 의미 있는 성적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신과 냉소가 팽배한 상황이라면 될 일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게 한국 축구와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걱정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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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힙한 불교’와 ‘스님 주점’
승복 차림으로 셔플 댄스를 추며 ‘극락왕생’과 ‘부처핸섬’을 외치는 DJ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던진 파장이 적지 않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까지 소환했다. ‘아무나 법복 입어도 되느냐’는 논쟁적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는 뉴진스님으로 인한 불교 호감도 상승 효과를 반기는 분위기가 대세다. 엄숙주의 대신 일반인 눈높이로 접근한 것이 불교에서 멀어지는 젊은 층에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템플 스테이에 MZ 세대가 몰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잊힌 불교를 일상의 화제로 불러냈기 때문에 “가뭄에 단비”라며 감격하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은 ‘힙한 불교’를 전파한 공로로 뉴진스님에 디제잉 헤드셋까지 선물했다.
대만 공연을 거치며 상승세를 타던 뉴진스님은 말레이시아 공연 후 현지에서 ‘조롱’ 비판이 제기되고, 싱가포르 공연도 같은 이유로 불허됐다. 승려 복장 디제잉은 불경과 환호의 양극단으로 갈린다. 한국 불교의 개방성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뉴진스님 현상은 탈종교 시대의 유연한 변화상으로 봐야 그 의미가 읽힌다.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고 특히 MZ 세대와 접점이 끊기면서 종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던 차에 디제잉하는 스님이 나타났다. 종교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일본도 종교 이탈 추세가 심각하다. 일본 종교연감에 따르면 불교계 신도는 1990년 9625만 명에서 2016년 8770만 명으로 10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존폐의 위기감을 느낀 사찰은 속세로 파고들었다. 찻집, 밥집은 물론 스님이 직접 운영하는 술집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6월 AP통신은 ‘유럽 교회에서 기도와 고해가 술과 춤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신자가 급감한 탓에 고색창연한 교회 건물이 식당, 나이트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종교 현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대와 조응한다. 해외 언론 보도에 소개된 사례를 살피면 추세가 읽힌다. 일본 사례는 후쿠오카에서 발행되는 <부산일보>의 자매지 <서일본신문> 기사를 인용한다.
■ 신도 급감, “모두 바꾼다”
‘신도 감소로 곤경에 처한 사찰이 생존을 위해 모두 바꾸고 있다.’
400년 넘은 명찰로 손꼽히는 도쿄 츠키지 혼간지(築地本原寺)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기사 도입부는 시대 변화에 맞춰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계속 이어가려는 사찰의 혁신 노력을 강조한다. 사찰 내에 카페와 서점이 문을 열었고, 대학생과 공동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식당도 운영한다. 특히 18가지 반찬을 내놓는 식당은 인스타그램에서 각광받는 명소다. ‘18찬 아침 밥상’이 인기를 끌면서 오전 8시 개점 전부터 대기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인적이 드물다시피 했던 사찰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사찰이 필사의 노력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까닭은 단가(檀家)의 급감 때문이다. 일본에서 단가 제도는 각 가정이 가족의 장례, 위패 봉안, 묘지 관리 일체를 사찰에 맡기는 대가로 시주를 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사찰 구독제’다. 문제는 핵가족화와 저출생이 가속화되면서 단가를 매개로 한 관계는 급격히 와해되는 중이다. 2016년 ‘사찰의 미래’ 조사에서는 특정 사찰에 소속되어 단가를 유지하는 비율이 29%에 불과했다. 일본인 사이에 사찰은 점점 잊히는 존재가 되고 있다.
■ 승려가 운영하는 주점, ‘인생 상담’이 강점
일본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번화가에 ‘매직 바 다쿠미’라는 상호의 이색 주점이 등장했다. 40대 이하 젊은 승려 4명이 차린 ‘스님 스나쿠’가 그 주인공. 스나쿠는 ‘스낵 바’의 일본식 준말로 종업원이 바를 사이에 두고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의 주점이다. 중년 남성이 주 고객. 주점이긴 하지만 법당에 있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난다. 승복 차림의 스님들이 손님을 응대하고 바 위에는 목탁, 아미타여래상, 향로가 놓여 있어서다. 손님이 원하면 분향도 할 수 있다. 주 메뉴는 고민 상담, 부 메뉴는 칵테일이다. 주류 메뉴는 불경에서 따왔다. ‘윤회전생’은 보드카로 만드는 칵테일 ‘스크루 드라이버’다. ‘데킬라 선라이즈’에는 ‘극락정토’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정토종과 조동종 소속 승려들이 의기투합해 술집을 차린 이유는 불교 신자의 감소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지역 사회와 사찰 사이에 접점이 상실되면서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찰은 사람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들어주고 해결을 돕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절을 찾는 발걸음이 줄면서 고민 상담을 매개로 한 관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민을 들어줄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주점을 열었습니다.”
취재 기자는 취기를 빌어 슬쩍 회사 선후배 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을 털어놨다. “인정 욕구가 너무 강한 게 아닐까요?” 무심결의 푸념이 인생 상담으로 이어졌다. 뒤늦게 입장한 손님들도 불교 장례 절차를 문의하거나 불교 용구 쓰임새를 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관록이 묻어나는 스님 말투가 마음에 스민다”는 반응도 있다.
■ MZ 세대를 찾아 거리로 나간 불교
그윽한 조명의 카페 겸 바에서 승복 차림의 바텐더가 푸르고 흰빛을 띠는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아미타경의 ‘청색청광 적색적광 백색백광’ 구절을 이미지로 만든 칵테일입니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번화가에 문을 연 ‘엥겔’은 ‘스님 카페 & 바’라는 콘셉트를 내걸었다. 젊은 세대와 만나기 위해 그들이 몰리는 거리 한가운데 들어간 경우다.
정토신종 혼간지파 소속 젊은 승려 8명은 ‘사찰종합연구회’를 통해 불교 이탈 현상을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한 끝에 “지금까지 하지 않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와 관계를 트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이 끊길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MZ 세대가 몰리는 번화가를 택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간단한 칵테일은 내지만 고기나 생선 안주는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찰 요리법을 적용한 채식 메뉴만 갖췄다. 가지와 토마토를 사용한 ‘정진(精進) 피자’, 토산 된장을 사용한 ‘된장국 피자’ 등이다. 상담이 주를 이루지만 염주 만들기 체험,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 이벤트도 개최한다. 젊은 층에 친근한 불교 이미지로 다가가는 게 목표다.
■ 텅 빈 유럽 교회, 호텔·클럽 개조
2000년 동안 기독교 문화의 중심이었던 유럽은 이제 기독교인의 감소로 텅 빈 성당과 교회가 늘고 있다. 미국 AP통신의 지난해 6월 보도에 따르면 신도의 발걸음이 끊긴 성당과 교회가 카페, 콘서트장, 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 벨기에 메헬렌의 성심수녀회 교회는 신도가 없어 2년 문을 닫았다가 카페와 콘서트장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인근 프란치스코 교회는 고급 호텔로 재단장했다. 수도 브뤼셀의 파두아 성 안토니 교회는 2023년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교회가 문화, 레포츠, 접객 시설로 바뀌는 현상은 벨기에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전 유럽에 걸쳐 나타난다.
이와 달리 독보적인 콘셉트로 명소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맥주를 양조하던 수도원이 그 경우. 과거 순례자를 대접하는 한편 수도원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한 맥주 양조가 지금은 지역 문화 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벨기에 베스트말레 수도원(Westmalle Abbey)이다. 이 수도원은 듀벨과 트리펠로 유명한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의 원조다.
수도원 입구의 레스토랑 ‘카페 트라피스텐’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토산 음식과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데 외딴 전원이라는 불편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항상 손님으로 붐빈다. 지역민의 생활과 문화에 밀착한 덕분일 것이다. 독특한 점은 요청이 있으면 푸드 트럭에 음식과 맥주를 싣고 어디든 간다는 점이다. 종교가 속세와 동떨어지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생명력이 배가되는 사례로 읽힌다.
종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본연의 가치는 지키되 방편을 바꾸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뉴진스님이 던진 화두는 그 법명의 뜻 그대로 ‘어떻게 새롭게(New) 나아갈(進·진) 것인가’일 터. 탈종교 시대,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할지 주목된다.
2024-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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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부산시립 대학원인가?
“R&D(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학부생들로만 진행할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라도 해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전공 부산 A 대학 K 교수! 국내 최고 학부에 세계 적인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최근에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랩실까지 꾸려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그나마 줄어든 정부 R&D 프로젝트를 받아도, 함께 연구할 대학원생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지원하는 학부생도 없는 데다가, 그나마 인력조차 장학금이 부족해, 자비를 털어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지역 석박사 대학원 충원율은 국립대인 부산대와 부경대가 80% 안팎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정원의 20%가 미충원이다. 그 외 사립대학은 60% 이하 수준이다. 이마저도 계약학과, 산업대학원, 야간경영대학원 등을 총동원해야 나오는 수치다. 부산의 대학원이 텅 비어가고 있다. K 교수는 “지역 대학원 충원이 힘들어지면서, 국가 R&D 사업을 수행할 인적 역량을 갖추기조차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대학원은 비고, 부산시는 대학원 설립
이처럼 부산의 대학원이 지원 인력 부족으로 비어가는 상황에서 부산시가 ‘부산시립 대학원대학’ 설립을 시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원 대학은 현행 고등교육법상 특정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만 두는 대학이다. 첨단 미래산업을 이끌 인재 육성과 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만약 설립된다면, 국내에서는 지자체가 설립한 첫 대학원 고등교육기관이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는 지난 10일 부산시가 제출한 ‘대학원대학 추진 업무협약 동의안’을 부결했다. 입학자원 감소, 청년 인재 유출 등을 고려해 예산 투입 대비 실익이 적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하루 뒤인 지난 11일 재논의를 거쳐 3억 원의 ‘부산형 대학원대학 타당성 분석 연구용역 실시 계획안’ 용역비를 통과시켰다. 부산시 고위층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부산시 남정은 청년산학정책관은 “부산에서 연구 역량을 키울 지역 인재를 확보하고 미래 첨단 산업 분야 선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시립 대학원이 필요하다”며 “대학원 설립과 함께 지역 인재가 부산에 정주하며 첨단 기술 분야에 진출할 방안도 마련하겠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지역 S대가 기부체납하는 부지에 향후 5년간 1500억 원의 시비를 투입해 대학원 본관과 강의동을 신축하고, 운영비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대학원 충원율 풍선효과 우려
지난해 부산지역 출생아 수는 1만 2900명. 부산지역 대학 입학정원(4만 81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10여 년 뒤 부산지역 대학 셋 중 두 개가 문을 닫거나, 정원의 3분의 2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부의 상황이고, 그 부족한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대학 교수단체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부산권 국립대학 교수회연합회(부국련)는 17일 “부산시가 추진 중인 부산시립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경대 교수회 회장, 부산교대 교수평의회 회장, 부산대 교수회 회장, 한국해양대 교수회 회장 등이 참여한 이번 성명에서 “학령인구 격감이라는 지역 교육 환경을 고려치 않은 건 물론이고 정부의 지역 대학 육성 정책과도 엇박자를 내는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첨단분야 인력 양성을 위해선 새로운 대학원 설립이 아닌 기존 지역 대학들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라고 강조했다.
부국련은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해 운영되는 우리나라 카이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등 4대 과기원도 대학원 학생만으로 운영의 어려움이 있어 결국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학부 학생을 모집해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부산 발전을 위한 첨단분야의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면 부산지역 대학들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라고 반박했다.
■대학 통폐합 유도하는 정부 정책과도 엇박자
윤석열 정부는 지역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간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학 숫자를 줄이고, 지역 혁신을 이끄는 경쟁력 있는 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기존 대학의 생존이 아니라 지역 경쟁력 활성화 차원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정부 정책에도 완전히 역행한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RISE(지자체 주도 대학지원체계) 사업 등 대학 지원 예산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은 지자체가 그 예산으로 자체 대학원을 설립한다면, 다른 대학과 스스로 설립한 대학의 성과 평가를 공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상당수 대학 관계자는 부산시가 지역과 산업계, 대학 간 협력의 조력자가 아니라, 예산과 집행권을 가지고 선수로서 뛰려고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즉 대학에 갈 예산이 내(부산시) 돈이니 내가 대학원을 설립하고, 교수를 충원하고, 맞춤형 인재를 직접 육성하겠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산시 주도로 미래 산업 인력 육성 가능할까
부산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황당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 국립대학 교무처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S 교수는 “부산시가 1400억 원이나 들여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에, 기존 대학원의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 교수는 “대학원 설립과 동시에 대학원장, 학장 사무실을 만들고, 학사·총무·회계·인사 등 대학의 모든 기능을 갖춰야 한다”면서 “건물 신축에 이어, 최고 연봉의 교수진 인건비 부담, 유지·관리를 부산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했다.
화학 전공의 Y 교수는 “부산시 계획상 건축비 1400억 원, 초기 운영비 100억 원으로 예상돼 있다”면서 “미래 신산업 기술 대학원에 투입될 최신 실험 장비와 장학금, 실험 자재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지 고려조차 없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R&D와 교육에 문외한인 부산시가 대학원을 설립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정책 수립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 질타했다.
D 대학 글로컬 추진위원인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교육부의 인허가 문턱도 넘기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들도 서로 규모를 줄이며 특성화하고 있고, 대학원들도 부산에서 대학원생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에 투입될 예산을 지금 부산지역 대학원에 지원해서 우수한 국내외 학생을 유치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대학 총장을 지낸 L 명예교수는 “부산시가 어떤 첨단산업을 할 것인지, 어떻게 인재 육성을 할 것인지 노하우나 계획, 비전을 갖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시가 필요하면, 부산의 어느 대학이라도 기존 건물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면서 “부산시립 대학원은 혈세 낭비”라고 질타했다. L 명예교수는 “부산시는 부산의 대학 인재 양성 고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 산업적 연계를 주도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부산시의회 대학원 설립 동의안 부결시켜
부산시의회에서도 국내에서 지자체 대학원 설립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면서 반대 기조를 분명히 했다. 시의회는 대학원 설립 동의안 안건을 부결하고, 당초보다 대거 삭감한 용역비 3억 원만 통과시켰다.
부산시의회 김형철 시의원은 “2014년에 경기도 남경필 지사가 지금 부산시와 똑같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경기도립대학원 설립을 공약으로 추진하다 실패했고, 제주도가 2017년 수백억 원의 예산으로 탐라대학 부지를 매입해 대학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역시 진척이 없다”라고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막대한 건립비와 운영비로 부산시가 특정 위치에 대학원을 만들어 대학원생을 유치하면, 결국 다른 대학은 충원율이 떨어지는 풍선효과만 발생한다”면서 “기존 대학원에서 부산의 신성장 동력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기껏 인재를 육성해도, 부산에 취업이나 정주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승우 시의원도 “부산의 대학이 축소·통합하는 추세에서 시 예산 100%로 시립대학원을 만드는 것은 옥상옥 행정”이라면서 “산학협동을 통해 기존 대학을 활성화하는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권고했다.
포화처럼 쏟아진 시의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시립대학원 입장을 고수했다. 10~11일 이틀에 걸쳐 열린 부산시의회에서 부산시 남정은 청년산학정책관은 첫날 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역비 3억 원을 챙겼다. 남 청년산학정책관은 시의회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80명 규모를 충원해 신산업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를 기존의 대학 연구 분야와 중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교수들이 연구를 안 하고 있는 분야를 시립대학원에서 중점적으로 연구를 해서 전체 산업 생태계에서 시너지를 내도록 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중복을 회피할 분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본인 용역비를 모아 대학원생을 지원해 랩실을 운영하는 A 교수는 “가능하지도 않을 대학원 설립 타당성 용역비 3억 원을 우리 연구실에 지원해 주면, 바이오 분야 인재 양성과 SCI급 논문 생산이 가능하다”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 돈이면 우수한 유학생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의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취재 후기
기자 생활 30여 년간 수많은 대학 보직교수, 전·현직 총장들과 인터뷰를 했다. 정권에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과거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이 익명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유는 부산시가 대학의 예산 집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돈을 쥔 부산시가 ‘갑’으로 행세할 경우 소속 대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속내였다. 최고 지식인인 대학 전·현직 총장과 교수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지자체와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는 사회가 건강할까. 이러고서야, 지역 고등인재 양성과 대학, 도시의 미래가 있을까. 부산시립 대학원의 운명보다도 더 걱정되는 부분이다.
2024-06-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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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종부세, ‘종이호랑이’ 전락하나
대통령실이 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부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부자 감세’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종부세는 고가의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통해 사회적 평등을 증진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돈이 상전이 된 자본주의 사회를 그나마 굴러가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랄까. 종부세의 의미는 지방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각별하다. 세수 전액이 지방 재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곤궁한 지자체에게는 든든한 생명수에 다름 아니다.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 과연 지방정부 지원보다 다주택자 피해 구제가 더 급한 일인가. 종부세를 손질하려면 이를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 대통령실 발표 일파만파
종부세는 현재 공시가격 9억 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 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으로 상속세와 함께 종부세를 꼽았다. 가격안정 효과는 없는 반면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불합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재산세가 있는데 종부세까지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있다. 종부세 부과에 대한 오랜 저항 논리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대통령실이 종부세 전면 폐지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우선은 초고가 1주택자와 가액 총합이 매우 높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편해 보자고 한다. 여기가 끝은 아닐 것이다. 윤 정부는 틈만 나면 종부세와 상속세 등을 놓고 부자 감세를 주장해 왔다. 결국은 다주택자 중과세율도 완화하고 나아가 제도 자체를 완전 폐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종부세 부담 완화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도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다.
■ 계층 양극화 막는 장치
일종의 보유세인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여기에 누진적 세율을 적용해 계층 양극화를 막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2005년부터 시행됐다. 그 이전에는 고가 아파트 세금이 중형 자동차 세금보다 턱없이 낮은 세제의 불합리성이 엄연한 시절이었다. 종부세는 오랜 사회적 진통과 합의 과정 끝에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종부세 폐지는 ‘공평 과세’라는 원칙을 흔드는 일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법적 정당성을 명확히 한 바 있다. 2021년 종부세 대상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지난달 30일 종부세법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라는 취지가 정책 목적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 폐지 땐 지방 재정 직격탄
지난해 종부세 수입은 전년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2022년 거대 양당이 합의해 종부세를 대폭 깎아준 탓이다. 전년도보다 2조 6068억 원가량 크게 줄어든 4조 9601억 원. 감소 폭이 무려 전체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종부세는 이미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종부세 세수는 전액이 지방 재정인 부동산 교부세 재원으로 쓰인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부가 지방에 내려보내는 부동산 교부세 역시 대폭 삭감됐다. 지방정부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린 이유다. 부산 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도 타격이 컸다. 지난해 부산 중구는 전체 예산 총액 대비 부동산 교부세 비중이 12.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는데, 부동산 교부세가 깎인 규모(-4.8%)도 세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동산 교부세 감액 절대 규모가 가장 큰 지자체는 부산 영도구(-154억 원)였다.
사정이 이러한데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방 재정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지자체에 교부세가 많이 배분받는 방식이라서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 대안 없는 원칙 훼손 안 돼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전체 국민 중 2%가 안 된다. 가구주 1명에 딸린 가족까지 포함해 넓게 잡는다 해도 6% 정도. 이들이 보유한 종부세 납부 기준 공시가격 12억 원의 주택은 시세로는 20억 원 이상을 상회한다. 이렇듯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가 주로 부담하는 세금이 종부세다. 마치 서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인 양 호도하는 건 옳지 않다.
종부세 부과의 목적은 뚜렷하다. 조세 형평성 강화, 자산 불평등 완화, 지역 균형발전. 이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세수 감소로 지자체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막을 대책이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대규모 감세를 실시했으나 지방소비세·지방소득세 등 세수 보전 대안을 만들어 지방정부의 처지를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윤 정부는 19일 저출생 대책으로 지자체의 부동산 교부세를 활용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불과 얼마 전 종부세를 전면 개편하는 방향으로 얘기해 놓고는 난데없이 저출생 투자에 돌리겠다고 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 여론 수렴해 국민 신뢰 얻어야
일관성 없는 정책은 국민들의 믿음을 얻기 힘들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세력이 국민적 영향이 큰 세금 문제를 갑자기 툭 던져 놓는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부세 같은 중요한 정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정교하고도 합리적인 준비를 통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정부여당도 거대 야당도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여론을 수렴해 동의를 구하는 게 순리요 도리다.
2024-06-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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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대왕고래’와 후루꾸
■“고래 잡으러 가자!”
나라가 들썩인다. 많은 이들이 꿈꾸지 않았던 ‘산유국의 꿈’. 그러나 국정 최고 수장이 그 꿈이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포항 영일만 프로젝트’,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이하 ‘대왕고래’)를 국민 앞에 전격 공개했다. 동해 영일만 일대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려는 계획. 윤 대통령은 이날 ‘140억 배럴’을 강조하며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보다 더 많은 탐사자원량”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호언에 경북 포항 일대는 이미 ‘한국의 두바이’라도 된 양 호들갑이다. 고래 잡으러 동해로 가자는 대통령의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던져지는 테마주
석유나 가스와 관련된 이른바 테마주에선 분명 대박이 나야 했다. 자원빈국 한국에서도 석유와 가스가 펑펑 쏟아진다 했으니 분명 그래야 했다.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를 공개한 직후 석유·가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증시가 잠시 들썩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흥분 상태는 며칠 가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큰일 낼 것 같던 석유·가스 테마주들은 ‘대왕고래’ 발표 다음 날부터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그러더니, 동해 유전에 대해 “유망성이 높다”는 미국 액트지오사(社)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의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7일 일제히 급락하며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는 양상을 보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 순매도 물량이 쏟아진 탓으로 분석했다. 분명 대박의 조건이었는데도 외국계 자본은 관련 테마주를 대거 팔았던 것이다. 돈에 약삭빠른 그들이 왜 그랬을까.
■외신은 왜 안 다룰까
윤 대통령 발표대로라면 ‘대왕고래’는 가이아나 광구를 뛰어넘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석유시장에 그야말로 해일 같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외국의 내로라할 언론, 즉 외신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눈에 불을 켜고 한국, 특히 영일만의 동해를 들쑤실 것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대왕고래’에 대한 기사를 찾기 어렵다. 미국의 경제전문 방송 CNBC가 윤 대통령의 '대왕고래' 발표 소식을 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CNBC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논평을 냈다. 이처럼 대다수 외신들은 ‘대왕고래’를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외면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 S&P의 평가를 보면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S&P는 정유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한 보고서를 통해 “다른 국가들이 ‘대왕고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서 “실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의혹 키우는 정부 해명
‘대왕고래’와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은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하필 액트지오를 파트너로 선택했느냐’다. 당초 파트너는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였다. 우드사이드는 2007년부터 영일만 일대를 탐사하다 지난해 1월 철수했다. 알려진 바로는, 우드사이드는 해당 지역의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는 “우드사이드의 철수는 자체 사업 재조정 때문이지 사업성 여부와는 관련 없다”며 부인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영일만에서 십수 년 동안 석유와 가스를 찾던 우드사이드가 무려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을 팽개치고 다른 사업장으로 떠난 것인데,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우드사이드의 석유 탐사·개발 역량이 부족했던 걸까. 우드사이드가 지난 11일 세네갈에서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 생산에 성공했음을 고려하면 그 또한 성립하지 않는 가설이다.
여하튼 우드사이드 대신 파트너가 된 액트지오는, 설립된 지 겨우 8년에 연매출이 4000만 원도 안 되는, 사실상 1인 기업으로 드러났다. 자격 논란에 대해 정부는 이런저런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석유개발에 성공한 경험이 많고 직원도 5000여 명이나 되는 우드사이드가 떠난 빈자리에, 지구상에 지오사이드쯤 되는 석유개발 기업이 없지도 않을 텐데, 시쳇말로 듣보잡인 액트지오 같은 1인 기업을 굳이 앉혀야 했던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안보” 운운하며 실체 공개를 거부한다. 의구심만 더 키우는 꼴이다. 이런 형편이니 ‘대왕고래’에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국민이 10명 중 3명도 안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요행 바라는 국정?
“석유·가스 탐사의 성공률 20%는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이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이는 80%의 실패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대왕고래’ 성공률로 ‘20%’의 수치가 제시된 것과 관련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석유나 가스 개발 사업에서 20% 성공률이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인정되는 게 사실일 수도 있다. 개인사업이라면 이 정도 가능성에 ‘올인’ 하더라도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른바 ‘잭팟’을 터뜨리든 쫄딱 망하든 그건 개인의 사정이니까. 그러나 ‘대왕고래’는 국민 혈세가 천문학적으로 투입되는 국가사업이다. 잘못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약간의 실수도 용납해선 안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큰 위험을 감수해야 큰 수익을 얻는다)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외칠 말은 아니다.
당구 등에서 실수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쓰는 속어가 후루꾸다. 영어 플루크(fluke)의 일본식 발음이다. 플루크의 여러 뜻 가운데 하나가 ‘요행’이다. 그런데 플루크는 고래 꼬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부들이 망망대해를 떠돌다 ‘돈 되는’ 고래의 꼬리를 우연히 발견한다면 그 얼마나 반가울까. 플루크, 즉 후루꾸의 유래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후루꾸가 나왔을 때는 조롱을, 후루꾸를 기대할 땐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다. ‘대왕고래’에 후루꾸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요행을 바라는 국정만큼 위태로운 건 없다.
2024-06-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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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20년 만에 소환된 이유는
20년 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이 가해자들의 실명과 근황을 공개해 온라인에 급속히 유포되면서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한 명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지금도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제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온라인 가해자 실명 유포 후폭풍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는 지난 1일부터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재조명한다면서 가해자 2명의 신상과 근황을 공개했다. 해당 유튜브는 사건 주동자 A 씨가 결혼해 애를 낳고 잘살고 있다며 실명과 근황을 알렸다. 특히 A 씨가 일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의 한 식당이 1년 반 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유튜브에 소개한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결국 해당 식당은 위반건축물로까지 확인돼 행정처분을 받았고 지난 3일 자로 영업을 중단했다.
또 다른 가해자 B 씨는 사건 후 개명하고 경남의 한 수입차 딜러사 전시장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딜러사는 B 씨를 해고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경남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당시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이후 경찰이 된 여성 C 씨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C 씨는 2004년 가해자 미니홈피 방명록에 “잘 해결됐나? 듣기로는 3명인가 빼고 다 나왔다더니만. X도 못생겼다던데. 고생했다. 아무튼”이라는 글을 남겼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가해자들이 서로 자신은 빼 달라는 조건으로 제보하는 상황이라면서 추가 실명과 근황 공개를 예고했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들도 44명 전부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파장이 확산될 전망이다.
∎20년 전 밀양에서 무슨 일이
2003년 6월 울산의 한 여중에 재학 중이던 피해자는 우연히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밀양의 한 남고에 재학 중이던 가해자와 통화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채팅을 통해 6개월간 관계를 이어가던 가해자는 2004년 1월 피해 여중생을 밀양으로 유인한 후 한 여인숙에서 집단 강간한다. 범행은 밀양의 비행청소년 조직이었던 ‘밀양 연합’ 소속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수십 차례 피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 갈취와 불법 촬영까지 일삼았다. 둔기로 여중생을 폭행한 후 집단 강간하고 휴대폰과 캠코드로 영상을 찍어 부모에게 알리면 인터넷에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며 범행을 이어 간 것이다. 결국 피해 여중생의 이모가 이상해진 조카와 대화를 나누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 수사로 범행에 직접 가담한 학생만 44명이 확인됐고 망을 보거나 범행을 촬영하는 등 범행에 동조한 이들도 75명으로 가해자는 모두 119명에 달했다. 피해 여중생 외에도 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 1명과 여고생 3명이 추가로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가해자들 어떤 처벌 받았나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울산지검은 44명 중 7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은 불구속기소했다. 20명은 소년부로 송치했다.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됐다.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던 피해 여중생 아버지가 5000만 원을 받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울산지법은 기소된 10명에 대해서도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로 결정 내려 사건은 일단락됐다. 당시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고 청소년들로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적 집단 심리로 인해 저지른 우발적 측면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소된 이들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보호처분이 내려졌을 뿐 사건 가해자 중 단 1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또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 여중생에 대한 신상 노출과 인권침해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여경 입회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피해 여중생을 가해자와 직접 대면시켜 지목게 하는 등 상식 이하의 조사가 이뤄졌다. 특히 한 경찰관이 “밀양 애도 아니면서 왜 여기 와서 물을 흐려 놓느냐.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냐”고 말해 큰 문제가 됐다. 가해 부모들이 피해 여중생을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며 막말하는 등 지역사회의 2차 가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피해 여중생은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로 우울증 앓고 자살을 기도하는 등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피해 여중생 무료 변론을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피해 학생이 받은 상처는 상상을 초월하며 아직도 고통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불붙는 사적 제재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근황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는 이들에 대한 비난 글과 함께 ‘특검으로 발본색원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피해자에게 꽃뱀 운운하던 가해자 부모를 밝혀내 망신을 줘야 한다는 격한 반응도 쏟아진다. 일부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이 성토 글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사적 제제가 횡행하는 것은 사법 정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 집단 성폭행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고 피해자만 만신창이가 된 것은 사법 시스템의 붕괴가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법정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문제도 지적됐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박철현 교수는 “우리의 형벌 체계가 범죄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법원에 양형 기준도 있지만 법관의 재량 범위가 너무 넓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심각한 문제다”고 밝혔다. 밀양 사건과 같은 청소년 범죄의 경우도 미국은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청소년 자격을 박탈하며 형사 처벌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가해자 중심의 현행 사법 시스템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사적 제제로 사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명예훼손 등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칫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고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일 경우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래 전 사건을 재조명할 경우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유튜브 가해자 공개도 피해자 동의 여부가 논란이다. 특정 사건의 상처와 고통이 양상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지게 해서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는 것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변화로 봉합되게끔 노력하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2024-06-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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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임영웅과 김호중’의 같은 길, 다른 길
트로트 가수 ‘임영웅과 김호중’. 요 며칠 사이 가요계를 넘어 온 국민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된 두 ‘스타’다. 지금의 트로트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 말고도 두 가수는 닮은 점이 많다. 일단 태어난 해가 1991년으로 동갑내기라는 점 말고도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는 점도 같다. 게다가 둘은 무명 시절 생활고로 어렵고 곤궁한 시절을 보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둘 다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잡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덴 성공했지만 지금 둘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임영웅은 더욱 대중적인 인기를 다지며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반면 김호중은 음주운전 사건으로 ‘국민 밉상’으로 지칭되며 가요계에서도 ‘손절’ 될 위기에 몰렸다. 무엇이 동갑내기인 이들의 처지를 이토록 극명하게 갈랐을까.
■ 무명 시절 고생은 약?
이미 알려진 얘기지만 임영웅과 김호중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러모로 어려운 처지였다. 가수 데뷔 이후에도 여전히 무명 신세를 벗지 못한 임영웅은 겨울엔 군고구마 장사를 비롯해 음식점 서빙, 가구 공장 보조, 마트 짐 옮기기 등 여러 부업을 전전했다. 아마 이 땅의 많은 젊은이처럼 당시엔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늘 초조함 속에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김호중 역시 임영웅 못지않게 힘든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돌봄 속에 자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어려운 환경을 비관해 교내 폭력 서클에 가입할 정도로 불량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교 때 만난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로 성악에 매진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이후 가수의 길로 들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생을 딛고 일어선 ‘인생 성공담’ 그 자체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섣부른 예단을 금하는 것인가. 임영웅은 노래로 인한 대중적 인기는 물론 공연을 할 때마다 따뜻한 인간미로 ‘미담 제조기’라는 별칭을 얻으며 국민가수의 반열로 들어서고 있다. 반면 김호중은 음주운전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구속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기 관리 실패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가요계 잔류마저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처지가 됐다. 무명 시절의 고생이 성공한 이후의 삶에는 아무런 약이 되지 못했다.
■ 작은 차이가 낳은 극명한 대비
임영웅과 김호중의 사례는 성공한 이후 몸가짐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이와 유사한 사례가 셀 수 없다. 성공한 이후에도 예전과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고도 힘든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런데도 여기에 실패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특히 성공을 계기로 공인의 영역에 오르게 되면 더욱 그렇다.
성공적인 공인의 바탕이 바로 배려와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매우 어렵다. 여기에 이 말의 무서움과 무거움이 있다. 임영웅은 이 의미를 알고 있는 스타로 보인다. 며칠 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나이 드신 관객을 위해 공연장 밖에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돌출 무대를 준비하는 것부터 경기장 잔디 보호를 위해 중앙 스탠딩 좌석 전체를 포기했다. 심지어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안내원들이 직접 업어서 좌석까지 안내했다고 한다. 공연 상술이라고 치부해도 이런 상술이라면 당사자는 물론 보는 사람도 흐뭇해진다. 이처럼 배려와 관심이 임영웅을 더 돋보이게 한다.
김호중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음주운전 자체도 잘못된 행동이기는 하지만 국민은 이보다 공인으로서 오만함에 더 실망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김호중이 보여준 여러 거짓말과 속임수, 증거 인멸 그리고 뻔뻔한 변명 등 온갖 부정직함이 국민의 역린을 건드렸다. 안하무인의 행위로 여긴 것이다. 중요한 순간,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선택과 결정이 한 스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번 일은 한 대중 가수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성공에 걸맞은 배려와 겸손을 갖추지 못하면 그 성공은 단지 한순간의 일로 끝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듯하지만 엄혹하고 촘촘한 세상사의 이치는 빈틈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래도록 성공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라도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할 일이다.
2024-06-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