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BTS는 다녀왔다, 제도는 변했는가?
일주일 뒤면 7인 완전체로 돌아와
‘병역특례’ 공정성 성찰하는 계기 돼
현행 제도 K팝 현실 제대로 반영 의문
시대에 맞는 새 기준 마련할 시점
논의 핵심은 단순한 ‘혜택 조정’ 아니라
국가가 보호할 가치를 설정하는 일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답할 차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드디어 군 복무를 모두 마치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해 온 슈가가 오는 21일 소집해제하면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 BTS 모든 멤버가 군 복무를 마치게 된다. 구성원 모두 복무를 성실히 수행해 병역 의무 이행의 공정성을 직접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수년간 세계 무대에서 K팝의 위상을 높인 그들이었지만, 국방의 의무 앞에서는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었다. 이제 불과 일주일 뒤면 다시 7인 완전체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을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이들의 군 복무는 단순히 의무 이행을 넘어 우리 사회에 깊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병역특례는 누구를 위해 제도인가?” 그리고 “지금의 이 제도는 과연 공정한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BTS도 다녀왔는데, 왜 또 이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다녀온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다녀왔음에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대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대한민국 병역특례제도의 모순이다.
■ 병역특례, 왜 만들어졌나?
병역특례제도는 병역 의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 복무로 전환해주는 제도다. 1973년 국위 선양과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 및 특기자에게 군 복무가 아닌 체육·예술요원으로 복무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대체 복무지만 실질적으로 군 면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례 대상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국제콩쿠르 등 대회에서 입상한 체육·예술요원’ ‘국가 산업발전 목적의 전문연구·산업기능요원’ ‘공공의료 분야에서 복무하는 공중보건의사’ 등으로 나뉘지만, 현재는 대부분 체육·예술 분야 중심으로 운영된다. 체육인은 올림픽 3위 이내, 아시안게임 1위 입상 시 특례가 적용된다. 예술인은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내, 국내 대회 1위 수상자, 또는 중요 국가무형문화재 전수 교육 이수자가 대상이다. 이들은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과 544시간의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하면 병역을 이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 제도의 타당성과 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참가국이 8개국뿐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이 거셌다. 아시안게임 종목에 e스포츠, 바둑, 브레이킹댄스 등이 포함되며 “이게 과연 스포츠냐”는 논란도 이어졌다. 문제는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진출 시에도 예외적으로 특례를 부여한 사례가 있어 제도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많았다.
■ BTS의 병역 의무 완료의 의미
BTS는 단 한 번도 병역 특례를 요구한 적이 없다. 영향력과 성취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특례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그 논의에서 한발 물러났다. BTS는 ‘국가 브랜드’로서 K팝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빌보드 핫 100 정상, 전 세계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투어, UN 총회 연단에서 전한 세대의 목소리. 이는 기존 병역 특례 대상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국제 콩쿠르 수상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파급력과 세계적 인지도 측면에서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회와 여론은 수년간 BTS를 포함한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특례 확대에 대한 논의를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BTS는 침묵했고, 조용히 입대해 복무를 성실히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다. 이들의 병역 이행은 단지 아이돌 그룹의 군 복무를 넘어, 우리 사회가 병역특례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오늘날 MZ세대는 공정성과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투명성, 결과의 납득 가능성이라는 기준을 통해 사회의 제도와 관행을 끊임없이 점검한다. 단순히 “다 같이 고생하자”보다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공정한 잣대가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맥락에서 BTS의 선택은 하나의 ‘공정성 실험’처럼 작용했다. 그들이 특례를 받지 않았기에 오히려 ‘왜 이들은 특례 대상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BTS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기존 병역특례제도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 병역특례, 지금 그대로 공정한가
현행 병역특례제도는 특히 K팝 아티스트는 명시적으로 배제돼 있다. 이 기준은 심각한 시대착오성을 드러낸다. 문화의 중심이 명백히 이동했다. 전통 예술과 아마추어 스포츠만이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BTS의 월드투어가 수십만 관객을 동원하고,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계를 사로잡는 시대다. 이들이 쌓아 올린 문화적·경제적 가치와 국가 브랜드 제고 효과는 기존 특례 대상 분야의 성과와 비교해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더 널리, 더 깊게, 더 즉각적으로 한국을 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전통 문화 중심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다. 문화적 영향력의 판도가 바뀌었음에도 기준은 그대로 정지돼 있다.
BTS의 존재는 이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UN 연단에 섰고, 빌보드 1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병역 제도는 이들을 ‘국위 선양’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인기’에 기반한 문화 산업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관계자의 답변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특례 제도가 더 이상 “공정한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많은 국민이 체감하는 바와 같이, 어떤 분야의 인재는 병역 면제 혹은 대체 복무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반면, 다른 분야의 인재는 오히려 병역이 경력 단절의 고통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중문화 분야의 세계적 성과는 정작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BTS는 UN 연설, 빌보드 1위, 미국 백악관 초청, 각종 국제 시상식 수상 등으로 국가 이미지를 드높였지만, 이 같은 성과는 병역특례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클래식은 되고, K팝은 안 되는’ 이 기준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 모두가 BTS처럼 할 수 있는가
BTS가 비교적 원활하게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던 건 몇 가지 특수한 요건 덕분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 의식도 큰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세계적 성공을 이룬 ‘성장 완료형’ 그룹이었다. 데뷔 10년을 넘긴 그룹으로 탄탄한 팬덤과 뚜렷한 음악적 정체성도 공백을 감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전 세계 팬덤 ‘아미(ARMY)’의 흔들림 없는 지지와 소속사의 전략적 대응도 주효했다. 솔로 활동을 통한 존재감 유지, 입대 시점 분산, 복귀 준비 등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K팝 산업은 훨씬 치열하다. 신인 그룹들이 쏟아지고, 데뷔와 동시에 글로벌 경쟁에 뛰어든다. 쉼 없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는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 1년 반의 공백은 대부분의 그룹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BTS의 선택이 모두에게 공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실질적 공정성은 단순한 형식적 평등과는 다르다. 병역 의무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이행 방식은 개인의 조건과 기여도에 따라 더 유연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는 병역특례 혜택을 무조건 확대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BTS의 군 복무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현행 제도는 K팝과 현대 대중문화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공정성은 모두 똑같이 입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분야별 특수성과 기여 방식을 고려해 실질적 평등을 추구해야 하는가?”
■ 병역특례 새 기준 수립할 시점
병역은 국민 모두에게 부과된 의무이자,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상징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예외는 신중하고 공정하게 설정돼야 한다. 다만 공정이 형식적 평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정한 공정은 기여에 대한 정당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BTS의 모범적인 병역 이행은 우리 사회가 병역 의무와 예외 제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야말로 병역특례제도를 재검토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병역특례제도는 공정성 논란 속에 여러 차례 개편 논의가 있었지만, 특혜 시비와 형평성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공정이란 ‘누가 혜택을 받는가’뿐만 아니라, ‘누가 배제되고 있는가’를 함께 따져야 한다. 클래식은 되고 K팝은 안 되며, 스포츠는 인정되지만 한류 문화는 배제된다면, 그 기준은 분명 낡았다.
전문가들은 병역특례제도를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기보다 투명한 기준과 국민 공감대 속에서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성취’를 기준으로, 공개 심사를 통해 특례 대상을 선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혜택 조정’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와 공정성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 일이다. 더 많은 청년이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를 빛낼 수 있는 시대, 우리는 그들에게 구시대적 장벽이 아닌 합리적 인정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답할 차례다.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BTS의 이 한 마디가 병역특례제도 개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