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대치맘’ 열풍, 왜 주목받나?
사교육비 29조 원 역대 최고 기록
강남 사교육 현실 다룬 콘텐츠 인기
과도한 사교육·경제적 양극화 ‘씁쓸’
창의적 개성·다양한 교육관 존중돼야
지난해 사교육비가 29조 원을 넘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가 2023년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지만, 사교육 광풍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튜브와 OTT 드라마, TV 시사 프로그램 등에서 ‘대치맘’으로 상징되는 강남 학부모들의 사교육 열풍을 다룬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이수지 ‘대치맘’ 패러디 화제
개그우먼 이수지의 ‘대치맘’ 캐릭터 연기가 화제다. 그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은 엄청난 조회 수를 올리고 있다. 이수지는 지난달 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 1편을 올렸다. 조회 수는 무려 839만 회(3월 20일 기준)다. 지난달 25일 올라온 2편의 조회 수도 547만 회(3월 20일 기준)에 달한다.
영상에서 이수지는 사교육 열풍의 중심에 선 가상의 ‘대치맘’ 캐릭터인 이소담(일명 ‘제이미맘’) 씨를 사실감 있게 연기한다. 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엄마들의 교복으로 통하는 ‘몽클레르 패딩’을 입고 나온다.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하고 ‘~하지 않아요’라는 강남 엄마처럼 교양 있는 말투를 쓴다. 그 모습이 ‘대치맘’과 너무 흡사해 놀랍다는 평가다. 영상에서는 이소담 씨가 영어 이름이 ‘제이미’인 4살 아들의 사교육을 밀착 지원한다. 대치동 학원가는 셔틀버스를 잘 운영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는 ‘라이딩’을 위해 자동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수행 평가를 위해 제기차기 과외를 비롯해 심지어 배변훈련 과외까지 알아볼 만큼 사교육을 신봉한다. 자녀의 원어민 선생님과 어설픈 영어로 통화하고, 아들의 평범한 행동에서 ‘영재적 모멘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수지는 대치동에서 펼쳐지는 사교육 경쟁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웃음 포인트를 영리하게 전달한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고 싶은 부모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 시사 프로그램 ‘7세 고시’ 조명
지난달 14일 방영된 KBS1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은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를 주제로 대한민국 사교육 현실을 폭로했다. 대치동의 유명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레벨테스트, 이른바 ‘7세 고시’를 치르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담았다. 여기에 나온 사례가 충격적이다. 한 학원의 ‘7세 고시’ 영어 모의고사 시험지를 본 영어 교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유형이 수능시험 문제와 같다. 만 5세 아이들에게 추론을 물어보고 있다. 이것은 지적 학대에 이르는 수준이다”라는 반응이었다. 한 수학 학원의 7세 어린이 선발 시험 문제를 서울대 재학생들에게 풀어보도록 했다. 이들은 “아주 까다롭다. 어느 특목고 시험문제냐?”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치맘 라이프’는 드라마 소재로도 활용됐다. 지난 3일 처음 방영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7세 딸을 명문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대치동 학원을 돌며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강남 학부모들의 문화를 담은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실 세태를 생생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다. 교육 경쟁이 치열하고 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강남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패러디를 통해 포착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으론 진입 장벽이 높은 대치동 사교육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따라 하고 싶은 이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작용도 했다는 것이다.
■ 대치동은 욕망의 공간
대치동은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부동산과 교육이 결합해 계급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성공을 향한 선망과 욕망이 집중된 곳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이곳에서 학부모는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 자녀를 위한 교육 기획자로 활동한다.
“대한민국이 다 무너져도 욕망이 남아 있는 이 동네는 절대 안 무너질 거야.” 지난해 초 방영된 tvN 드라마 ‘졸업’에서 대치동 학원 강사인 남자 주인공이 한 말이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 동네’는 대치동 학원가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작품 배경으로 대치동을 꼽는 이유는 이렇다. 대치동은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물리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곳을 내밀하게 엿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변화의 조짐도 감지된다. 최근 유튜브, SNS 등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대치동은 한정된 이들만 접근할 수 있는 ‘닫힌 동네’가 아니라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이제 대치동은 특정 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치동 학원들은 전국에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분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교육 열풍은 강남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됐다.
■ 학벌 위주 사회 벗어나야
‘대치맘’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어린아이들, 경제적 양극화 등 씁쓸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과도한 경쟁 체제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더욱 어린 시기까지 내려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다.
공교육만으로 원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부모들의 불안감, 학령 인구는 줄어도 갈수록 심해지는 입시 경쟁,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사교육 의존도 증가.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치맘’ 열풍은 이어질 것이다. 공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의대 열풍, 학벌 위주 사회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적인 개성과 다양한 교육관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 본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