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핏줄' 해저 케이블, 국내 고부가가치 시장 지켜라 [71%의 신세계, 해저시대로]
AI 확대 등으로 가파른 성장세
해외 글로벌 기업들 과점 양상
데이터센터·ESS 분야 대비를
LS전선이 생산한 해저 케이블을 선적하는 모습. LS전선 제공
해상 풍력, 해저 데이터센터 등이 ‘신체 장기’라면 해저 케이블은 ‘핏줄’에 해당한다. 해저의 핏줄은 장기보다 훨씬 빨리 자리를 잡았다. 이미 해저 케이블은 고성장 고부가가치 시장이다. 다만 유럽 등의 발 빠른 소수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해저 케이블은 통신(데이터) 케이블과 전력 케이블로 구분된다. 통신 인프라 조사 기업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해저에 깔린 전 세계 통신 케이블은 148만km에 이른다. 지구를 37번 정도 감을 수 있는 길이다.
해저 케이블이 없으면 국가 간 정보 이동이 불가능하다. 인터넷 데이터의 95~99%는 해저 광섬유 케이블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제 해저 통신 케이블 대부분이 부산 해운대구 송정 착지국으로 연결된다. 부산이 해운물류 관문이자, 데이터 관문이기도 한 것이다.
해저 전력 케이블의 경우 최근 성장세가 매우 가파르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해저 전력 케이블 시장 규모는 112억 달러(16조 원)였고, 연 평균 6.45%씩 성장해 2032년엔 186억 달러(2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상 풍력 확대,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등이 성장 이유다.
해저 케이블 시장은 과점 형태이다. 전력 부문은 이탈리아·프랑스·덴마크 3개 기업이, 통신 부문은 프랑스·미국·일본 3개 기업이 시장의 70% 이상을 과점하고 있다. 해저 케이블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아직 국내 산업 역량은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나라 LS전선이 해저 전력 케이블 글로벌 4대 기업으로, 선두 그룹을 쫓고 있지만 격차가 있다.
국내 해저 케이블 시장마저 국외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14GW를 설치한다는 정부 계획이 나와서다. 사업 지연 가능성이 높지만, 수년 내 해상 풍력이 급증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해상풍력 1GW에 수십~수백km 전력 케이블이 필요한데, 수요가 몰릴 경우 국내 기업만으론 공급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 특히 케이블을 해저에 깔 시공선 부족이 심각하다.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해저 케이블 시장을 과점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작이 빨랐기 때문이다. 해저 케이블 선두 그룹 기업들은 이르면 1900년 전후, 늦으면 1950년대에 해저에 진출해, 꾸준히 기술 장벽을 쌓아왔다. LS전선이 해저 전력 케이블 공장을 준공한 것이 2009년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빠르게 성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장기’에 해당하는 데이터센터·ESS 등 해저 설비에서는 우리나라도 선두가 될 수 있다. 아직 이 분야에선 크게 앞선 글로벌 기업이 없어, 한두 걸음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출발 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