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화재로 잇따라 숨진 어린 아이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고등학생들
모두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재난

더 이상 아이들이 스러지지 않고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먼저 어른 된 우리에게 주어진 몫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부산에서는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비극적인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화재로 어린 자매들이 세상을 떠난 소식이 그 중 하나다. 부모가 일터로 나간 사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어린 남매를 애도했던 정태춘의 노래도 벌써 35년 전 이야기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시민들의 충격과 슬픔은 오래 지속되었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은 어린이들이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어른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다. 이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돌봄 사각지대와 주거환경 문제까지 사회적 의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비극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삶을 잃어버린 또 다른 사건이 얼마 전 부산에서 있었다. 같은 학교 세 명의 고등학생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건이 그것이다. 진로 고민과 입시 스트레스, 학교 운영의 구조적 문제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그 어떤 이유도 이 죽음을 온전히 설명하진 못한다. 가족에게 마지막 사랑을 전할 만큼 다정했던 이들이 정작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가족과 친구, 교사들이 겪고 있을 고통 역시 다 헤아리기 어렵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재난이다.

우리는 이미 숫자를 통해 그 심각성을 접하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인 동시에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도 청소년 자살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13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로 꼽히고 있다. 청소년의 자해·자살 입원율은 10년 새 86.7% 증가했고, 여자 청소년이 남자 청소년의 4배에 이르렀다. 한국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는 선진국 최고 수준이지만 정신 건강 지표는 최하위권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 아동연구조사기관인 이노첸티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종합적인 복지 실태는 36개 국 중 27위를 차지해, 역시나 하위권에 머물렀다.

교사단체와 시민단체는 청소년의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며, 우리의 과도한 입시경쟁중심 교육체제가 한계에 달했음을 지적한다. 청소년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교육이 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고 있는지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역시 학벌 혹은 성공 등에 대해 획일화한 이상적 기준이 존재하고 그런 잣대가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줄 세우기가 쉬워지고,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회에선 열등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중고등학생의 47.3%가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불안하거나 우울하다고 답했다. 청소년 고민 상담의 유형으로는 정신건강과 대인관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학령인구는 줄었지만 사교육비는 30조 원을 넘어서고,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도한 조기 사교육이 벌어지고, 향정신성의약품인 ADHD 치료제가 공부 집중력에 좋다는 이유로 품절 사태까지 빚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교육 지옥’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갈 정도다.

교육 개혁은 역대 정부의 오랜 화두로,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제시했다. 지역의 국립대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경쟁력을 높여 지방 소멸과 교육위기를 돌파해보겠다는 취지다. 교육을 중심으로 한 지역 발전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기에 장기적인 비전으로 정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교육의 현장에 막상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큰 비극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20대에 발견한 폴 발레리의 시 구절은 혼란스러운 10대 시절을 위로했다. 청소년기는 누구에게나 복잡스럽고 혼란한 시기로, 김소영 작가의 말처럼 마음이 골짜기를 지나고 산마루도 오른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은 재난상황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를, 지역을, 제도를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을 잃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우리 사회와 정책에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나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그저 바람이 불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을 먹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몫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