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러시아 직통열차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가 최근 한층 두터워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 5000명을 파병한 데 이어 추가 파병도 검토 중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북한은 평양과 모스크바를 잇는 직통열차 운행을 최근 재개했다. 이 열차의 운행 재개는 부쩍 깊어진 양측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러 직통열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2월 운행을 중단했다. 5년 만에 재개된 이 열차 운행 노선은 총 1만㎞를 넘는다. 지구의 둘레 길이가 4만 75㎞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거리 노선으로 꼽힌다. 편도로 8일이나 소요된다.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11~13시간가량 소요되는 기나긴 노선인 셈이다.
북러 직통열차는 평양에서 북한 국경에 인접한 러시아 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달한 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달리는 방식으로 운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열차는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키로프, 코스트로마 등 TSR 주요 역에 정차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 길이는 9288.2㎞에 달한다. 1891년 철도 건설을 시작해 1916년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이 철도는 한민족과 관련한 슬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1937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이 철도를 이용해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TSR에는 정든 터전을 버리고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옮겨야 했던 한인들의 눈물이 담겨있는 셈이다.
특히 TSR은 우리나라 대북 정책 역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철도를 연결, TSR을 통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이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불발됐다. 북러 직통열차 운행 재개를 지켜보면서 부산에서 러시아로 연결되는 이른바 ‘부러 직통열차’가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부산에서 대전, 서울, 북한을 거쳐 TSR을 타고 유럽에 도달하는 육로가 열린다면 물류 수송, 관광 활성화 등의 측면에서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갈수록 격화되는 신냉전 구도를 감안하면 부러 직통열차 현실화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부산에서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육로가 하루빨리 열리길 기원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