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산콘서트홀, 클래식 음악의 새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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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명 경성대 음악학부 교수

부산 문화예술 인프라 열악한 수준
콘서트홀·오페라하우스 갈증 해소

개관 축제에 지역 음악인 안 보여
글로벌 수월성·로컬 생태계 균형
기획력 발휘해 지역 문화 꽃피우길

부산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부산시민공원 내에 지난달 20일 문을 연 부산콘서트홀. 부산콘서트홀 제공 부산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부산시민공원 내에 지난달 20일 문을 연 부산콘서트홀. 부산콘서트홀 제공

부산은 슬로 시티다. 문화예술 분야의 진화 속도 말이다. 광역문화재단은 전국 꼴찌를 가까스로 면하면서 2009년 설립되었고, 기초문화재단도 16개 구·군 중 겨우 2개만 설립되어 서울(22), 경기(24), 대구(6), 인천(4)에 명함을 못 내민다. 예산은 더 열악하다. 광역과 기초를 포함한 지자체 전체 평균 문화 예산은 전국 꼴찌 자리를 기웃거리는 수준이다.

공연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먼저 양적 측면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공연장 수는 총 41개(5.7%)로 서울 202개(28.1%), 경기 97개(13.5%)에 크게 못 미치고, 인구가 100만 명 적은 대구 46개(6.4%)보다 적다. 인구 1000명당 객석 수는 전국 평균 10.3인데, 부산(8.4)은 대전(10.8), 대구(9.5)보다 열악한 수준이다. 최근 건립된 몇몇 공연장들을 고려하면 수치가 조금 나아질 것 같긴 하다.

이번엔 질적 측면이다. 공연장 운영의 민간 전문화 추세는 예술의전당(1988), 세종문화회관(1999)을 비롯해 일찍이 80년대부터 추진되었다. 부산 최초의 전문화 시도는 (재)부산문화회관의 출범으로, 2017년의 일이다. 시설의 전문화 측면도 비슷하다. 콘서트홀 이전의 부산 공공 공연장은 모두 다목적 홀이었다. 오페라, 음악회, 무용, 연극이 모두 같은 곳에서 공연되었다. 다목적이란 말을 뒤집어보면 무슨 뜻일지 생각해 보자. 수도권과 대구에는 전용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부산이 원래 늦은 도시는 아니었다. 시민회관은 세종문화회관보다 5년 앞선 1973년 건립되었다. 그때만 해도 부산은 서울에 뒤지지 않는 문화 역량이 있었다. 작금의 초라함은 끊임없이 쪼그라드는 시세(市勢)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산 공연장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개관한 부산콘서트홀과 2년 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덕분이다.

두 공연장은 메인 홀 기준 객석 수가 각각 2000석과 1800석으로 두 공연장 모두 기존 대형 공연장(부산문화회관, 시민회관)보다 많다. 그뿐만 아니라 두 공연장 모두 부산 최초의 전용 공연장이다. 예산 역시 두 공연장 규모에 걸맞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재)부산문화회관의 2024년 예산이 360억 수준임을 고려하면, 두 대형 공연장 운영 예산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이 지역 음악 문화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나무 음향판이 둘린 프로시니엄(액자형) 무대에 익숙한 부산 관객에게는 빈야드(포도밭) 방식의 콘서트홀 구조가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4400여 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도 새로운 경험이다. 전면부의 시각적 웅장함이 기대보다 덜해 좀 아쉽긴 하지만 수도권 밖에선 처음이다. 몇 배 많은 건립비가 들어간 베를린 필하모니 홀이나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 홀에 비교할 순 없지만 이제 기본은 갖춘 느낌이랄까.

13년의 긴 곡절 끝에 탄생한 콘서트홀은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우선 얼마 전 펼쳐진 개관 페스티벌에 부산 음악인이 안 보인다. 부산콘서트홀에 부산이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연장이 시민의 문화 향유를 우선하는 것은 지당하나, 지역 예술인을 도외시하면 그 대가도 적지 않다. 글로벌 예술 수월성과 로컬 예술 생태계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을 일이다.

비싼 대관비도 걱정이다. 초대형 공연장을 쉽게 대관할 일도 아니지만, 기존 공연장에 비해 두세 배 비싼 금액은 부담이다. 지역 예술단체에 제공되던 할인도 많이 축소되었다. 주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체임버 홀 객석까지 합하면 2400석인데 주차면은 300면이다. 부산시민공원 주차장을 같이 이용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하고 거리도 멀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겉의 새로움은 잠시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 성공적 예술 경영의 산실이 된 것은 기획 능력 때문이다. 공연장은 대관이 아닌 기획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관객 관리와 서비스 개선은 물론이다. 축제의 기쁨을 뒤로 하고 지역 공연 문화를 선도하는 막중한 역할을 기꺼이 안아주길 바란다. 기대하고 응원한다. 더 이상 늦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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