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배고픔과 항노화
김미경 인제의대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동남권항노화의학회 사무총장
블루존(Blue Zone)은 전 세계의 장수 마을로, 인구 대비 100세 이상 장수자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율이 높은 다섯 곳을 말한다. 이들 지역을 방문해 장수의 비밀을 알아보는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중 일본 오키나와 섬의 비결 중 하나는 ‘하라하치부(腹八分).’ 즉 80%만 먹는다는 생활습관이다. 소식은 가장 확립된 항노화 비법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소식은 어떻게 우리를 더 젊고 건강하게 만들까? 그 비밀의 열쇠 중 하나는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이다.
그렐린? 생소하지만, 우리가 배고픔을 느낄 때 위장에서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 이름이다. 보통 식사 전에 혈액 내 농도가 높아지고, 식사 후에는 낮아져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배고픔 호르몬’ 이라고도 불린다. 소식이나 간헐적 단식을 할 때처럼 몸이 에너지를 적게 섭취하는 상태가 되면 혈액 속 그렐린 수치가 증가한다.
최근 연구들은 그렐린이 식욕 조절 외에도 우리 몸의 다양한 중요 기능에 관여하며 항노화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관련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자. 그렐린은 심장근육 세포의 생존과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을 개선하여, 혈압 조절 및 혈관건강 유지에 기여함으로써 노화로 인한 심혈관계 기능 저하를 완화할 수 있다. 또한 뇌의 해마 부위에서 신경세포 증식과 재생을 도와 기억력 향상과 치매 예방에 기여한다. 이는 그렐린이 뇌 신경세포의 보호인자로 작용하여 신경 손상을 막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와도 연결된다. 그렐린은 항염증 작용을 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세포 손상을 방지하며, 면역 기능 증진 역할을 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도 1960년대 초반까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단어를 사용할 일이 없다. 지금은 넘쳐나는 온갖 음식들과 식품들로 지속적인 과식의 시대이다. 오히려 비만과 그로 인한 암, 심장병, 당뇨병 및 여러가지 만성질환들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소식은 앞서 설명한 그렐린의 효과뿐만 아니라, 중장년 및 노년기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들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비만을 예방함으로써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질환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수적으로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배고픔의 고통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소식으로 나의 건강도 챙기고 세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무조건 굶고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호르몬의 특성상 충분한 기간동안 규칙적으로 스트레스 없이 증가되어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그런 식으로는 좋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규칙적 식사 간격과 소식을 통해 살짝 가벼운 배고픔을 느껴보자. 배가 고픈 느낌이 들면 노화를 늦추는 생리적 신호인 그렐린이 증가된다고 기뻐하자. 그렐린이라는 ‘젊음의 메신저’를 심장과 뇌 및 온몸에 보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