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 흥한 전포카페거리, ‘커피향’이 흐려진다
카페 명소서 2년 새 카페 5% 줄어
높은 임대료 피해 전포사잇길로
식당, 술집 등 다양한 업종 들어서
"개성 약화" "상권 성장 결과" 엇갈려
개성 있는 카페들이 모이면서 부산 카페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한 전포카페거리에서 카페가 사라지고 있다. 전포카페거리 일대가 지역 중심 상권으로 부각되고 이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도 뒤따르며 식당과 술집 등 다양한 업종이 카페를 대신하고 있다. ‘카페거리’만의 매력이 퇴색됐다는 우려와 상권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전포카페거리는 식사와 쇼핑을 위해 방문한 젊은 세대들로 북적였다. 최근 문을 연 유명 피자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카페가 있던 자리에 새로 들어선 곳이다. 맞은편에 일대 유명 매장들을 소개한 ‘전포카페거리 안내도’가 있었지만 정작 근방에 카페는 두어 곳에 불과했다. 여행객 정 모(27·대구 남구) 씨는 “평소 아기자기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취미라 여행 겸 이곳에 왔는데 카페보다 식당과 술집이 눈에 띄었다”며 “대구나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권 같다”고 말했다
1일 부산진구청에 따르면 현재 전포동 전포카페거리에서 운영 중인 카페의 수는 60곳이다. 2년 전 조사 당시 63곳에서 3곳이 줄었다. 최근 잇따라 문을 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포함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포카페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개인 운영 소규모 매장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포카페거리는 부산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 7번 출구 인근에서 시작해 전포성당과 놀이마루 주변 상가와 골목을 아우르는 구역이다.
전포카페거리에서 카페가 줄어드는 배경에는 임대료 상승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면/전포 상권 소규모 상가 임대가격지수는 2023년 1분기 98.2에서 올해 2분기 100.7을 기록했다. 부산 지역 21곳 표본 상권 중 광안리 다음으로 상승폭이 크다. 같은 기간 18곳 상권은 하락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전포카페거리 소규모 상가 임대료 시세는 50㎡(약 15평) 기준 보증금 3000~4000만 원에 월 임대료 100만 원 초반대다. 최근에는 직전 계약보다 10만 원가량 월 임대료를 올려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카페는 특히 임대료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이다. 업주가 매달 부담해야 하는 고정비용 중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과거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임대료가 상권 발달로 크게 오르면서 기존 상인들이 상권을 떠나는 젠트리피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기 쉬운 업종인 것이다.
최근 전포성당을 중심으로 한 카페거리 인근에서 오랫동안 영업하던 카페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유명 피자 업체에서 잇따라 분점을 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높은 임대료를 피해 전포카페거리 인근 전포사잇길로 카페들이 대거 이동한 모습도 포착된다. 전포사잇길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 8번 출구에서 부산진여중 뒤편, 서전로 58번길 일대에 넓게 형성된 상권이다. 부산진구청 조사에 따르면 전포사잇길의 카페는 2023년 117곳에서 올해 162곳으로 늘었다.
전포카페거리에서 15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업주는 “전포카페거리는 2019년이 르네상스였다. 지금은 인건비, 임대료, 식자재비 등 각종 비용이 급격히 올라 카페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다”며 "치열해진 경쟁을 견디지 못해 사라지는 카페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과 다른 업종들이 들어서면서 전포카페거리의 정체성과 개성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카페 업주는 “과거에는 카페 여러 곳을 성지 순례하듯 다니는 카페 애호가들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퇴근길에 식당이나 술집을 찾는 손님들이 주를 이루는 등 상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개성 있는 카페가 줄고 점점 평범한 거리가 되면서 바다를 갖춘 광안리 등에 비해 우리 상권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러한 현상이 상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월간상사 공인중개사사무소 여대훈 공인중개사는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가운데 카페 간의 경쟁에서 밀리는 업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일대에 매물을 알아보는 예비 카페 창업자들도 이제는 카페만 몰려 있기보다는 식당, 소품 가게 등 다양한 업종이 함께 있는 상권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전포카페거리를 지원하며 관광 명소로 조성해 온 구청도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상권의 특색을 커피와 카페로 제한하지 않고 다각화하는 것이다. 최근 출범한 청년상권운영단을 중심으로 상권에 문화·예술 콘텐츠를 결합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전포사잇길에서 맥주 축제를 열면서 커피와 맥주가 어우러진 ‘전포커피맥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진구청 관계자는 “다양한 업종이 들어서는 것은 상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며 “기존 카페거리의 브랜드도 지속적으로 키우기 위해 각종 홍보 사업과 커피 축제 등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