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가 부채의 기능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미국이 ‘천조국’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국방비 때문이다. 지난해 국방비 8414억 달러는 우리 돈 1000조 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문제는 ‘1000조국’을 능가해 버린 국가 부채 비용이다. 곳간이 빌 때마다 채권을 발행한 탓에 올해 이자만 9520억 달러(우리 돈 1320조 원)다. 빚 갚는 돈이 국방비를 역전하면 패권 쇠락이 시작된다는 이론까지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공장을 유치하고, 국경 통과세(관세)로 삥뜯는 미국의 낯선 모습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EU(유럽연합)의 재정 위기는 미국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적자 3분의 2가 이자 비용이었다. 심지어 프랑스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우려할 상황이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지난해 3조 3000억 유로(우리 돈 520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3%다. 재무장관이 “IMF 개입 위험”을 공론화해 파문을 일으켰고, 총리는 지난달 25일 긴축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신임 투표를 요청했다. 야권이 불신임을 벼르고 있어 내각이 해산될 위기다. 부채 비율 1위는 일본(234.9%)이다. 미국(124%)의 배에 가깝다. 복지비와 경기 부양을 위한 자금을 국채에 의존한 공통점이 있다. 저성장 탓에 세수가 준 것도 마찬가지다.

재정 적자의 역할과 효과에는 이견이 존재한다. 폴 시어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전 부회장은 “정부의 부채는 그것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기 때문에 후대에 부담을 준다는 논리에 반대한다. 그는 올해 출간된 〈돈의 권력〉에서 “걱정해야 할 것은 정부 부채로 인한 부담이 아니라, 정부의 적절한 규모와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적자 누적으로 내년 부채는 1415조 원까지 증가한다. GDP의 51.6%로 사상 처음으로 50%대를 넘겨 재정 건전성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내수 침체와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데 적극적 재정 정책이 필요한 측면도 부인하기 힘들다. 재정 지출은 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비로소 쓸모가 있다. 세수 확대, 구조 개혁도 병행돼야 의미가 있다. 나랏빚으로 국가 경제와 민생을 지탱했지만 성장 동력 확보에 실패해 재정 위기에 처한 선진국이 반면교사다. GDP 대비 50% 돌파를 목전에 둔 지금 국민은 국가 부채의 효능을 묻는다. 선진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정부는 실천적 답을 내놓아야 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