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제3의 개항과 체제 전환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가덕신공항 착공 지연에 시민 허탈
해수부 부산 이전엔 기대감 드러내
올해 부산항 개항 150주년 맞는 해
해양수도 정립 방향 설정 의미 있어
서울 중심 일극체제 넘어서는 계기
이를 통해 글로벌 해양 허브로 도약을
새해를 맞아 가덕도를 다녀왔다. 경남 진해 용원의 대구 맛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고 해도 좋을 터인데 이참에 부산신항과 가덕도 신공항 자리를 보고 싶다는 속내도 있었다. 세계 유수의 선사가 보유한 컨테이너선이 기항한 가운데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터미널의 위용이 무척 놀라웠다. 몇 년 전에 제법 큰 요트에 승선해 부산항과 신항을 돌아본 추억을 환기하며 과연 세계적인 항만이라는 자각을 다시 했다. 여기에 가덕신공항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공항은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신항이 준 환희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부산의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에게 엇박자의 형국이다. 마침 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내려와 환호와 갈채가 적지 않다. 해양수도의 염원이 실현되리라는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오는 2월이면 부산은 개항 150주년을 맞는다. 나는 이를 제3의 개항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제1의 개항은 식민화하는 아프고 못난 얼굴을 지녔다. 일본 제국의 통로가 돼 대륙과 섬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수탈의 아픈 역사를 생각할 때 기념하기에 아쉽기만 하다. 일본 요코하마의 잘난 개항에 비할 때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막말(幕末) 우키요에 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조차 1830년경에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그려 바다로 밀려오는 서구 해양 세력의 위협을 경계하며 일본 사회를 눈뜨게 했다. 호쿠사이의 그림을 ‘거대한 물결’로 재해석한 이는 일본계 미국인 서평가인 미치코 가쿠타니이다. 그녀의 지적처럼 일본 사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그림을 소환해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제1의 개항기에 우리는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을 보지 못했다.
제2의 개항은 냉전체제와 그 하위체제인 분단체제로 근대화하면서 대양으로 나아간 극복과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에 부산은 조역이 아니라 주역이었다. 식민의 유산이지만 제1 부두에서 제4 부두에 이르는 항만 기반 시설은 한국전쟁의 교두보였고 대양과 접속하면서 근대화를 이끌었고 20세기 후반 내내 용호만에 이르기까지 컨테이너 터미널이 형성되는 확장을 이뤘다. 제2의 개항은 신생 독립국인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나아간 궤적과 맞물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앞세운 국가 독점 시스템을 형성한 측면이 크다. 1990년대에 진행된 냉전체제의 와해와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행진 속에서 부산은 세계적인 노동 분업으로 제조업이 몰락하는 한편 한국 사회의 중심주의에 희생되는 주변화를 겪게 된다. 제2 개항은 영광에서 시작해 굴욕으로 끝났다.
세계화 이후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일극체제가 고착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부산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서울 중심 일극체제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대륙과 해양을 두루 소통하며 경영해야 할 나라가 수도권이라는 내륙으로 축소되는 형국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산을 해양수도로 삼겠다는 국가적 방향 설정은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를 두고 제3의 개항을 가능하게 하는 지렛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북극항로의 환상도 큰 여파를 미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북극항로는 준비할 대상이지만 낙관할 일은 아니다. 국제문제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자이들러는 북극해 쟁탈전이라는 ‘그레이트 게임’이 진행될 소지가 있음을 예견하며 경고한다. 지금 세계는 ‘불량 행위자’가 판을 치고 있다. 북극해 영유권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와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움직임이 국제 해양법 협약을 준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기후 위기와 해수 상승 등의 문제를 물류 이동의 편익으로 환산하긴 힘들다. 이래서 마냥 북극항로에 희망을 걸지 않아야 한다.
부산이 맞는 제3의 개항은 무엇보다 체제 전환이라는 사회적 변혁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해양수도로 정립되고 해양수도권이 형성되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정치는 서로 말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5극 3특으로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일은 평면적이나 일극체제 재편을 지향하는 정책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해양수도는 내륙의 수도와 해역의 수도라는 맥락에서 일국 수준을 넘어 체제 전환을 이루어 내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해양수도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 긴요하다. 해양 관련 산업이나 본사, 해수부 산하기관의 이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일국 수준이 아닌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글로벌 허브로의 도약이 절실하다. 해양수도를 매개로 체제 전환을 이루는 제3의 개항이 완성되려면 부산은 반드시 싱가포르 등에 비견되는 글로벌 해양 거점 도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