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동산이 묻는 사회적 가치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필자는 2021년 4월 21일 자 본 칼럼에서 ‘토지의 주인은 원래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법적으로 소유권은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토지가 만들어내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공동체가 형성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도로와 철도, 학교와 병원, 산업단지와 공원,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라는 거대한 협업의 결과가 땅값을 만든다. 한 필지의 가격은 그 땅 위에 서 있는 건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변의 인프라, 사람, 제도가 함께 만든 총합이 토지의 가치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원래 처음부터 토지는 특정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었다는 문제 제기를 통해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한 불로소득 발생에 있다면 불로소득 발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지 않는 이상 투기를 잠재우기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강한 세제와 보유세 강화를 통해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려 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상징적 조치였다. 토지공개념의 정신을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지만, 사회적 갈등이 만만치 않았다.
양도세 유예 종료, 자본 흐름 재배치 정책
싱가포르, 다주택 자산 축적 어렵게 설계
집은 투자 수단 아닌 다수의 삶 기반 돼야
문재인 정부 역시 다주택자를 정책의 중심에 두었다. 다주택 보유에 대한 중과세, 양도세 강화, 대출 규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정책의 빈번한 수정과 예외 조항은 오히려 매물 잠김과 가격 상승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적 유예였다. 일정 기간 양도세 중과를 완화해 매물을 시장에 유도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집값을 안정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5월이면 그 유예의 종료 시점이 다가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돈이 되니까 살지도 않을 집을 사 모으는 것”이라며 다주택이나 투자용 비거주 주택의 매도를 유도하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는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책의 실패 또는 방임 속에서 형성된 이익 구조를 급격한 충격 없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양도세 유예 종료는 단순히 세율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다주택자에게 여러 주택을 계속 보유할지, 아니면 처분할지에 대한 판단을 하라는 것이다. 세금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선택지는 세 가지다. 계속 보유하거나, 임대 사업 등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거나, 매각해 다른 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본의 이동이다. 매각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금은 금융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 채권, 펀드, 혹은 신성장 산업 투자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자산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촉진하고, 과도하게 부동산에 집중된 자본을 생산적 영역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도세 유예 종료는 세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재배치하는 정책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한 대통령의 행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하고, 공공주택을 중심으로 주거 안정을 유지해 왔다. 다주택을 통한 자산 축적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대신, 금융시장과 산업 투자로 자본이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공공 인프라와 주거 정책으로 환류된다. 토지의 공공성을 제도화한 사례다.
물론 우리는 싱가포르와 다르다. 한국의 토지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감수성도,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토지는 전쟁과 산업화, 압축 성장의 시간을 거치며 자산 축적의 핵심 통로가 되었다. 부모 세대의 아파트 한 채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애의 노력과 불안을 보상받는 상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토지와 주택은 경제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대상이다. 그렇기에 부동산 정책은 경제 정책만이 아니라 한 사회가 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공동체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대 간 자산 격차가 구조화되는 현실에서, 주거 문제를 외면한 채 불평등을 논하기는 어렵다. 자가 점유가 불평등 완화의 요인으로 작동한다면, 정책의 초점은 명확하다. 더 많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주택이 과도한 투자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집은 재화이기 이전에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소수의 투자 수단이 아니라 다수의 삶의 기반이 될 때, 비로소 토지는 공동체의 토대가 된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이 단순한 자산 차이를 넘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면 사회는 균열을 피하기 어렵다. 부동산 정책은 그래서 단순한 경제 운용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