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이세돌 10년 만의 AI 대국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알파고 대국은 ‘세기의 대결’로 꼽힌다. 결과는 AI(인공지능)의 4승 1패로 인간의 패배. 하지만 여론은 단 한 번의 승리에 환호했다. AI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1승은 기계학습의 허점을 노린 모험 덕분이었다. 이세돌은 수천 년간 축적된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의 약점을 간파했다. 신의 한 수로 불린 4국 78번 착점은 사람이 잘 두지 않는 수였다. 알파고의 데이터에 없었던 것. 낯선 행마를 놓고 ‘50초 룰’에 쫓겨 헤맨 탓에 ‘버퍼링’을 일으킨 것이 패인이 됐다.
이후 AI는 인간 지식을 배제하는 ‘자가 학습’(self-play)으로 발전했다. 알파고 제로는 기보를 무시한 채 오로지 규칙만 입력된 상태에서 스스로 기력을 향상했다. AI끼리 맞붙고, 승패 요인을 분석해서 더 나은 수순을 개발하고, 다시 두는 과정을 수백만 번 반복하면서 진화한 결과는 놀라웠다. 알파고의 개선된 버전을 상대로 100전 전승을 거둔 것이다. 경기를 본 이세돌은 “알파고 제로가 두는 수는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영역(집)을 더 확보해야 이기는 ‘반상의 쟁투’에서 입증된 작전 능력은 실제 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AI로 가상의 공습을 하고 공격과 방어 능력을 평가해서 전략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자가 학습’이 적용된다. 실제 미국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작전에서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사용했다. AI 작전 참모가 공습 시뮬레이션을 돌려 선택지를 제시하면 인간 지휘관이 선별하는 식이다.
알파고 충격 10년 만에 이세돌이 AI와 대국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AI 스타트업 인핸스는 오는 9일 과거 알파고 대국장이었던 포시즌스호텔 아라홀에서 이세돌이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면서 ‘미래의 바둑’을 구상하는 자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의도를 돕고 창조성을 높이는 파트너 역할로 진화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혹시 명승부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프로기사조차 AI 기보를 연구하는 세상이다. 이세돌과 AI의 두 번째 대국은 승자를 가리기 위한 것일 수 없다. ‘AI를 이길 수 있나’라는 질문은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로 바뀐 지 오래다. 알파고 충격 10년은 대결이 아닌 협업 관계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관전 포인트는 이세돌 9단이 AI를 부리는 솜씨다. 에이전트를 자신의 전략 속에 끌어들여 자유자재로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 승리 아닐까.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