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당신의 죽음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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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얼마 전 〈부산일보〉를 통해 부산시의 공영장례가 부실하게 운영되어 이른바 ‘꼼수 장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소 6시간으로 규정돼 있는 조문 시간을 단축하거나 조문이 공지된 시간에 빈소가 치워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돕는 제도다. 부산시는 2022년부터 공영장례 조례를 시행하여 햇수로 4년을 맞았지만 지난해에도 부실한 운영이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기사를 접하면서 17년간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에서 활동하며 겪었던 여성들의 죽음이 떠올랐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언니, 스스로 삶을 마감한 언니, 성구매자에게 살해된 언니…. 가족과 연락이 오래도록 끊겨 있거나 겨우 연락이 닿아도 시신 수습과 장례를 포기해서 활동가들이 대신 상주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연고자인 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활동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천도제를 치러 준 일도 있었다. 정경숙의 〈완월동 여자들〉에는 그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살림’이 천도제를 지냈다는 소식에 완월동의 여성들은 “고맙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초상 치러줄까 걱정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전한다. 20대 초반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멀리서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장례를 치렀지만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른 무연고자의 유골과 함께 봉안했다. 담당 활동가는 매년 그의 기일에 추모를 하러 공공봉안시설을 방문했다.

부산시 공영장례 부실 운영은

죽음에 대한 공적 인식 드러내

사회 활동가로서 접했던 죽음

공동체와의 연결성 되짚게 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까지

외면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길…

완월동에서 나왔음에도 무연고자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야 했던 내담자 언니의 죽음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시신을 수습해가라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슬픔과 황망함에 어쩔 줄 몰라 울었던 당시의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다행히 성당에 다녔던 언니를 위해 신도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미사를 올렸으며 가는 길 내내 추모와 애도를 함께 했다. 그때 장례를 치르고 정성스럽게 애도한다는 것이 살아가는 이에게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공동체의 바깥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인권 활동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과 공동체 밖으로 소외된 삶의 연속선에 그 죽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년학자 이기숙은 “죽음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함께 애도하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종교라는 공동체는 죽음 앞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이러한 사적 공동체만의 몫이 아니다. 1인 가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고령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실제로 무연고 시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부산시는 2012년 61건에서 2024년 683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서울, 경기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우리는 출생과 양육을 국가 정책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도, 떠남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산반빈곤센터 임기헌 활동가는 죽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공영장례가 자선이 아니라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공영장례 조문단을 운영한 결과 처음에는 자선과 봉사의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민들이 ‘존엄한 죽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이러한 시민들의 변화에 호응하는 정책이며,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새길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헬렌 니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실제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삶의 일부로서 죽음을 생각한다. 또한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사회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곧 우리 자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상상하는가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삶의 존엄을 지켜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존엄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공영장례는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공영장례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공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애도하고 애도받을 권리를 회복하고 공영장례와 같은 좋은 정책을 밑거름삼아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시민의 관심과 좋은 정책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끝없는 여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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