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혐한’ 악플러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동남아 누리꾼(SEAblings)들이 한국인 누리꾼(Knetz)을 비판하는 모습을 연출한 합성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팝 공연장에서 시작된 마찰이 소셜미디어(SNS)에서 동남아와 한국 누리꾼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올해 1월 말 밴드 ‘데이식스(DAY6)’의 콘서트를 찾았던 한국인 남성이 현장 반입이 금지된 ‘대포 카메라(대형 망원 렌즈를 단 전문가용 카메라)’로 무단 촬영을 시도했고, 현지 보안요원에 의해 제지당한 뒤 퇴장 조치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한국인의 모습이 엑스(옛 트위터)에도 공유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해당 남성은 인기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촬영한 사진을 통해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이른바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였는데, 현지 팬들은 공연 관람에 큰 방해를 받았다면서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 비난했다. 반면 한국 팬들은 남성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SNS에 공개 사과까지 했는데, 온라인에서 신상을 털고 집단 조롱까지 벌어진 것은 일반인을 향한 지나친 처사라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국 누리꾼이 동남아 사람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인종차별성 표현을 사용했고, 언쟁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지난해 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 때 등장한 ‘#SEAblings(동남아 형제자매)’라는 해시태그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와 형제자매(siblings)를 합친 신조어인 ‘SEAblings’는 한국 누리꾼인 ‘Knetz(Korean Netizen)’의 차별 행위에 대응하는 의미로 자리잡았다. 인도네시아를 넘어 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 등 인접 국가 누리꾼도 문화적 불만을 계기로 온라인 연대에 나섰다. 동남아 팬들은 한류 콘텐츠를 열렬히 소비하면서도 일부 한국 팬덤 내 위계 문화나 외모·인종 관련 비하 발언을 경험해왔다고 토로한다. 이들은 “한류는 좋아하지만 일부 한국인의 오만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K컬처’의 전례 없는 글로벌 인기 이면에 쌓인 ‘동남아 저평가’에 대한 감정적 앙금도 없지않다.
이 때문에 외신을 통해 알려진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나 성형수술 문화 등을 꼬집거나, K팝·K드라마 불매 운동을 외친다. 극단적으로는 100여년 전 한국인의 외모를 비꼬기 위해 당시 일제에 핍박받던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가져와 비하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다만 각국 언론도 이번 설전을 관심있게 다루고 있지만, 과격한 반한·혐한 주장이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는 평가다. 동남아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다행히 없다. 오히려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을 다녀온 데 이어,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조율 중이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