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내밀한 삶, 책으로 남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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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근현대역사관 연구집 발간
3권 책에 시민 삶 다각도 조명
시민 흔적, 공공의 역사로 확대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 표지. 김효정 기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 표지. 김효정 기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이원호 일기> 표지. 김효정 기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이원호 일기> 표지. 김효정 기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이춘근 작가 아카이브 사진 자료집> 표지. 김효정 기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후 첫 연구 자료집을 출간했다. <이춘근 작가 아카이브 사진 자료집> 표지. 김효정 기자

역사책은 흔히 유명한 사건, 군주, 영웅, 큰 작품을 남긴 거장의 면모를 주로 다룬다. ‘역사책에 등장한다’라는 말은 한때 인간에게 하는 최고의 찬사인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와 비슷하게 해석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역사의 큰 바퀴는 유명 인물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굴러갈 수 있었다고 인정된다. 2026년 현재의 부산 역시 과거 일상을 열심히 버텨낸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부산근현대역사관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3권의 연구 자료집을 냈다. 부산 각 지역의 생활 문화, 한국전쟁기의 개인 일기, 1980~1990년 부산 시민이 담은 풍경을 모아 실제 부산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기획한 류승훈 팀장은 “시민이 남긴 흔적을 공공의 역사로 확장하겠다는 목적이 있다”며 “부산근현대역사관의 기록문화사업의 첫 결실”이라고 소개했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먹거리를 톺아본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 일반 병사로서 경험한 한국 전쟁 당시 일기들을 모은 <한국전쟁 참전용사 이원호 일기>, 교사로 재직하며 20년 가까이 부산 곳곳을 돌며 지역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을 담은 <이춘근 작가 아카이브 사진 자료집>은 이렇게 탄생했다.

구술, 기록, 사진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로 나왔지만, 모두 시민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부산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연구집이라는 말 때문에 학술 논문집이나 연구 자료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부산의 보통 시민의 삶을 담았다는 말처럼, 실제로 책 안에 등장하는 이야기나 사진은 마치 우리 가족, 우리 동네의 일상 같다. “맞아! 그 때는 이런 놀이도 있었지” “예전에 여기 놀러 갔었는데 이젠 사라졌네”라는 공감의 말이 절로 나온다.

4대째 구포국수 공장의 맥을 이어오는 곽조길 씨의 구술 채록 장면.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4대째 구포국수 공장의 맥을 이어오는 곽조길 씨의 구술 채록 장면.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국수 면을 말리는 기술자의 모습.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국수 면을 말리는 기술자의 모습.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먼저 <구포와 밀의 만남, 구포국수>는 부산의 대표 향토음식인 구포국수를 통해 지역의 생활 문화, 산업, 공동체의 기억을 살펴본다. 2024년 2월 기획 회의를 시작으로 발간까지 거의 2년 가까이 걸렸다. 1년 동안 문헌, 사진 자료 조사, 구포시장과 구포 생산지 현장 답사, 주민 구술 채록, 사진 촬영을 하며 구포국수의 형성과 변천을 다층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구포국수와 관련된 음식점이 프랜차이즈처럼 전국에 엄청나게 많지만, 정작 구포국수의 고향인 부산 구포시장에는 구포국숫집이 딱 1곳 있으며, 구포국수를 생산하는 공장 역시 1곳만 남았다.

책에선 국수가 지역 정체성과 감수성을 반영하는 문화 요소이며 면발, 육수 조리법, 제조 기술의 변화, 국수 산업이 지역 경제에서 수행한 역할까지 분석했다. 특히 국수 공장 운영자, 노동자, 상인, 구포 토박이 등 9명의 구술 생애사는 구포국수가 지역 공동체의 삶 속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음식 문화를 결합한 연구 총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크다.

전쟁 시기 일반 병사였던 이원호 씨는 매일 일기를 쓰며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이원호 씨 일기장 원본.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전쟁 시기 일반 병사였던 이원호 씨는 매일 일기를 쓰며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이원호 씨 일기장 원본.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이원호 일기의 육필 기록.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이원호 일기의 육필 기록.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한국전쟁 참전용사 이원호 일기>는 2024년 손자가 할아버지의 일기 11권과 수양록, 제대 편지 모음, 군가집, 사진첩을 기능하며 시작됐다. 일기의 주인공 이원호는 북한의 징병을 피해 월남해 국군에 입대한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 군 복무 일상을 거의 매일 기록했다. 전투 상황뿐 아니라 청년들의 사고방식, 언어, 도시 풍경, 생활 습관까지 세밀하게 드러난다.

류 팀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매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쟁 시기 군인의 일상을 직접 육필로 남겼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고, 전쟁기 사회 문화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수천 쪽에 달하는 일기를 일일이 판독하고 복무 시기 위주로 정리했다.

명지포구에서 나룻배를 타는 아이들 모습. 이춘근 씨의 사진 중 한 점.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명지포구에서 나룻배를 타는 아이들 모습. 이춘근 씨의 사진 중 한 점.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영도 민가에서 생선 말리는 풍경. 이춘근 씨의 사진 중 한 점.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영도 민가에서 생선 말리는 풍경. 이춘근 씨의 사진 중 한 점. 부산근현대역사관 제공

<이춘근 작가 아카이브 사진 자료집>은 교사이자 사진가였던 이춘근 씨가 수십 년간 촬영한 필름 1만 2000여 점을 기증하며 시작됐다. 부산과 낙동강 일대를 꾸준히 기록했고, 특히 사라지거나 변모한 공간의 표정을 생생히 담아낸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1만 2000여 점의 필름을 일일이 판독하고 그중 부산의 생활 문화, 도시 변화를 잘 보여주는 246점을 가려 수록했다. 사진마다 촬영 시기, 장소, 장면의 특징을 해설로 덧붙인 점도 인상적이다.

김기용 부산근현대역사관 관장은 “다양한 기록을 발굴하고 연구해 부산이 걸어온 시간과 시민의 기억을 풍부하게 축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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