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 줄여달라” 조선업 도시마다 '이유있는 아우성'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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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후 대규모 구조조정
조선업계 내국인 노동자 떠나
최근 일감 몰리자 외국인 수급
소비 둔화 지자체 비용만 늘어

삼성중·한화오션 보유 거제시
“외국인 쿼터 지자체와 협의”

HD현중·현대미포 울산 동구
주민대책위 구성 “확대 반대”

급증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도시들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경남의 한 조선소 현장 모습. 부산일보DB 급증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도시들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경남의 한 조선소 현장 모습. 부산일보DB

대표적인 ‘조선 도시’ 경남 거제시와 울산시가 폭증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감은 넘쳐나는데 일손이 부족한 조선업계는 급한 대로 외국인을 늘려 인력난을 해소 중이지만, 정작 지역 사회는 내국인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울상이다.

생존권까지 위협받게 된 주민들은 집단행동에 돌입했고, 지자체도 정부를 향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26일 거제시에 따르면 변광용 시장은 최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조선산업과 지역 경제 동반 성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건의했다.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 축소와 내국인 노동자 확대다.

변 시장은 이날 조선업 호황이 지역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기형적 인력 구조를 꼽았다.

실제 거제시 인구는 2016년 25만 7000여 명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세가 이어지며 23만 명 선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반대로 외국인 수는 2021년 5400여 명에서 10월 말 기준 1만 5000여 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상태다.

이는 조선업 불황 당시 정부가 주도한 고강도 구조조정의 후유증이다.

부산일보 DB 부산일보 DB

2000년대를 전후해 초호황을 누리던 조선업계는 2015년을 기점으로 해양플랜트 악재에다 상선 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긴 빙하기를 맞았다.

거제시에 사업장을 둔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역시 경영난에 허덕였다. 이에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일감이 바닥난 상황에 감원 칼바람까지 불면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 거제시를 등졌다. 8만 명이 넘던 조선업 직접 종사자 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다행히 2022년을 전후해 업황은 살아났지만 떠나간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황을 거치며 저임금이 고착한 데다, 경기 부침이 심한 조선업 특성상 호황이 지나면 언제든 다시 칼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물 들어오는데 노 저을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이대로는 수주한 선박 납기를 맞추기 힘들 것이란 우려와 함께 조선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외국인 노동자 확대였다. 덕분에 업계는 급한 불을 껐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자리 대부분을 외국인이 차지하면서 정작 지역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급여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한다. 심지어 ‘담배가 최고의 사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소비에는 인색해 지역 경제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 시장은 “외국인 노동자 증가가 지역 경제에는 되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인은 단계적으로 줄이고 내국인 숙련공 중심의 안정적인 인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외국인 쿼터 배정 시 지자체와 사전 협의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했다.

2025 거제시 외국인 노동자 화합의 날 행사 모습. 거제시 제공 2025 거제시 외국인 노동자 화합의 날 행사 모습. 거제시 제공

이어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 지원사업인 ‘이음 프로젝트’ 필요성과 사업 추진 당위성을 강조하며 “지역대학·특성화고와 연계한 교육 훈련 과정을 개설해 지역 인재가 양대 조선소에 취업할 수 있는 ‘채용연계형 인재양성 모델’ 도입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내국인 유입을 독려할 ‘조선산업기본법’ 제정 필요성도 짚었다. 이 법률에는 △공정한 하도급 구조 제도화 △표준임금단가 도입 △조선산업발전기금 조성 등 산업 경쟁력 강화와 노동자 처우개선 등 연관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변 시장은 “양대 조선소가 내국인 숙련인력 중심으로 재도약하고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해법”이라며 “앞으로도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와 지역 상생발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은 ‘조선 세계 1위’ HD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사업장이 있는 울산시 동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구에는 현재 외국인 노동자 8300여 명이 조선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난 외국인 탓에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지역 경제마저 붕괴할 조짐을 보이자 동구청과 주민들이 외국인 확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4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동구 살리기 주민대회 조직위원회’와 김종훈 동구청장(가운데)이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시의 광역형 비자 확대 정책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부산일보DB 24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동구 살리기 주민대회 조직위원회’와 김종훈 동구청장(가운데)이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시의 광역형 비자 확대 정책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부산일보DB

‘동구 살리기 주민대회 조직위원회’는 지난 24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없는 외국인 대량 유입 정책은 주민 삶의 질과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조선업종 외국인 고용 확대를 반대하는 주민 6518명 서명부를 울산시와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내국인 인구를 기준으로 하는 정부 교부금 산정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현행 시스템대로라면 외국인 정주 인구가 늘어날수록 소비력도 없는 이들의 관리 비용을 사실상 내국인 주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김종훈 동구청장은 “외국인 유입에 따른 기초 인프라 유지 등 행정 비용은 늘어나는 데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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