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솟는 환율에 속수무책… 지역 경제 직격탄 우려된다
원자재 수입·가공 부산 중기 피해 심각
수출입 물류비 지원 등 대책 서둘러야
원/달러 환율 1,470원대 중반의 고환율이 이어지는 25일 서울 명동의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이날 장 초반 소폭 하락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부산 지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은 지난달 초 1400원대에 진입한 뒤 한 달 반 만에 1470원대로 치솟았다. 머지않아 1500원대에 육박할 기세다. 부산 경제가 고환율 위기에 유독 취약한 이유는 ‘가공 무역’ 중심의 산업 구조 때문이다. 부산본부세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부산 지역 수입 물량 중 원자재 및 중간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올해 10월까지 부산 지역 누적 수입액 123억 6500만 달러 가운데 원자재 수입액은 46억 9900만 달러로 전체의 약 38%에 달했다. 달러 초강세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우려가 크다.
수입 원자재 세부 품목별로는 철강재가 19억 300만 달러로 가장 비중이 컸으며 화공품(7억 9400만 달러), 비철금속(4억 2500만 달러) 등의 순이었다. 이들 품목은 부산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 기계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기초 소재들이다. 특히 철광석, 유연탄 같은 핵심 원료를 100%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고환율, 미국발 관세 폭탄,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신발과 의류·섬유업계도 고환율로 인해 아우성이다. 물류비와 원부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해 원화 약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 산업 생태계의 주축인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 환율 수준이 지역 기업들이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트럼프발 악재’로 지난 2월 환율이 1450원 수준으로 치솟았을 당시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334.6원이었다.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을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대다수 중소기업이 이미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지역 중소기업들은 환리스크를 관리할 전담 부서나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선물환이나 옵션 같은 금융 상품을 통한 ‘환헤지’(위험 회피) 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공산이 크다.
경상수지 흑자 행진과 국내 증시 활황세에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기존의 환율 공식이 깨지고 있다.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기업의 해외 투자 등으로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구조적 변화가 주요인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고환율이 고착화된다면 장기적으로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환율 급등으로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납품 지연, 손해 만회를 위한 원가 절감, 투자 축소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할 수도 있다. 정부가 고환율로 피해를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과 수출입 물류비 지원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