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e스포츠의 신
국내 e스포츠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시작됐다. 미국 회사 블리자드가 만든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대결하는 전략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전국 곳곳의 PC방에 젊은 층이 몰렸고, PC방을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를 뽑는 대회가 열렸다. 프로게이머, 프로게임 리그도 이 무렵 탄생했다.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대단했다. 2004년 7월 17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결승전에는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스타크래프트 인기는 시들해졌다. 승부조작 사건을 계기로 여러 기업이 후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등장은 e스포츠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LoL 월드 챔피언십’은 축구의 ‘FIFA 월드컵’과 비슷한 위상을 가져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롤드컵’으로도 불린다.
페이커(이상혁)가 이끄는 T1이 지난 9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 2025 롤드컵에서 우승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T1은 2013년 첫 우승을 했고, 2015~2016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23년부터 올해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3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T1의 모든 우승 순간엔 페이커가 있었다. 빠른 두뇌 회전과 손놀림이 필요해 25세면 은퇴하는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29세인 그는 10년 넘게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1995~1998년 NBA 3연패를 달성한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신’으로 불리고, 무수한 트로피를 들어 올린 메시는 ‘축구의 신’으로 통한다. 페이커는 전 세계가 인정한 ‘e스포츠의 신’이다. 중국 시나닷컴은 봉준호(영화감독), 손흥민(축구), BTS(가수), 김연아(피겨)와 함께 페이커를 한국의 5대 국보로 칭한다.
페이커의 3연패는 한국 게임 산업과 e스포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T1의 롤드컵 3연패를 축하하면서 e스포츠를 비롯한 문화산업 발전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산을 e스포츠 산업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최대 게임 축제 ‘지스타 2025’가 13일 부산에서 개막해 16일까지 열린다. 44개국 1273개 게임사가 참여한 가운데 부산은 e스포츠 열기로 달아오른다. 페이커의 3연패와 지스타의 열기를 동력으로 삼아 부산이 e스포츠 중심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