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게의 도시… 행정으로 폐업 위기 상점 구하다 [도시 부활, 세계에서 길 찾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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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포르투 ‘트라디상’ 제도

임대료 급등에 가게 잇단 폐업
‘전통 상점’ 구하기 발 벗고 나서
115곳 지정 보조금·세제 혜택
디지털 전환까지 전방위 지원
오래된 상점이 도시 경쟁력으로

포르투갈 포르투시는 역사·문화·사회적 가치를 지닌 상점과 단체를 공식 지정하고 지원한다. 1909년 개점해 100년이 넘은 상점이라는 인증 마크가 붙어있는 카페 도오루의 외부 모습. 포르투갈 포르투시는 역사·문화·사회적 가치를 지닌 상점과 단체를 공식 지정하고 지원한다. 1909년 개점해 100년이 넘은 상점이라는 인증 마크가 붙어있는 카페 도오루의 외부 모습.

도시의 역사를 지키는 일은 곧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전통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확산하자, 포르투갈 북부 도시 포르투(Porto)는 ‘전통’을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포르투시는 2019년 ‘포르투 데 트라디상’(Porto de Tradicao) 제도를 도입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상점들을 보호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행정이 직접 지켜내기 시작했다. ‘포르투 데 트라디상’은 역사·문화·사회적 가치를 지닌 상점과 단체를 공식 지정하고 지원하는 제도다. 전통 상권의 지속가능성을 행정이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임대료 상승에 흔들리는 전통

2016년 포르투갈에서 시행된 ‘신 도시임대법’(New Urban Lease Regime)은 임대차 계약 기간 단축과 임대료 인상, 계약 해지 절차 완화 등을 핵심으로 한 법이다. 그 결과 도심 중심가의 임대료가 급등하며, 오랜 세월 지역 상권을 지탱해 온 전통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전통 상점이 사라진 자리를 외국계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메우자, 도시의 고유한 개성과 역사적 흔적이 빠르게 사라졌다. 포르투시는 이 현상을 단순한 상권 변화가 아닌 ‘도시의 정체성 붕괴’로 인식했다. 포르투시는 ‘포르투 데 트라디상’ 제도를 설계해 전통 지키기에 나섰다.

포르투시는 지역 내 상점 중 역사적·문화적·사회적 가치를 가진 곳을 심사해 ‘전통 상점’으로 지정한다. 2025년 기준 115곳이 등록돼 있다. 음식점(29곳), 공예품 판매점(18곳), 인테리어·생활용품(15곳) 등 다양한 분야의 상점이 전통 상점으로 지정됐다. 지정된 상점은 시가 운영하는 ‘지원기금’을 통해 최대 3만 유로(약 5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지원 항목에는 건물 리모델링, 설비 구입, 브랜딩, 온라인 홍보 교육 등이 포함된다. 이 밖에도 임대차 계약 보호 방법 교육, 재산세 면제, 공공공간 점유료 면제 등의 행정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각 상점은 4년마다 한 번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고, 지원금을 두 차례 이상 받아 간 상점도 생겼다.

지원 초기에는 외벽 보수, 간판 복원 등 물리적 보존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홈페이지 구축, SNS 홍보, 온라인 판매 시스템 도입 등 ‘디지털 전환’으로 방향이 옮겨졌다. 전통의 보존을 넘어, 상점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책들이 마련되는 셈이다.

1902년 개점한 리브라리아 모레이라 다 코스타 서점의 내부 모습. 1902년 개점한 리브라리아 모레이라 다 코스타 서점의 내부 모습.

■전통 상점들, 도시를 살리다

1902년 문을 연 서점 ‘리브라리아 모레이라 다 코스타’는 5대째 이어지는 포르투의 대표 전통 상점이다. 반원형 발코니 구조의 내부에는 120년 전 설치된 목재 서가와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있다. 17세기 판본부터 라틴어·프랑스어 고전서까지 다양한 희귀 서적이 보관돼 있어,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역사를 담은 문화 공간으로 평가된다. 5대에 걸친 가족 경영과 고전·희귀본 컬렉션 덕분에 ‘책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1909년 문을 연 ‘카페 도오루’는 현지에서 ‘카페 피올류’로 불린다. ‘피올류’는 ‘이’(louse)를 뜻하는데, 살라자르 독재 시절 학생과 예술가들이 모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논하던 이곳을 경찰이 비꼬아 부른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금은 역사정 상징성을 인정받아 포르투의 대표적인 역사 명소로 자리 잡았다.

1920년대 문을 연 이발소 ‘바르베아리아 티노코’와 브러시 공예점 ‘에스코바리아 드 벨로몬테’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적 사례다. 티노코는 1929년 개업 이후 전통 면도 도구와 수작업 방식을 지켜오며 포르투의 장인 문화를 상징한다. 벨로몬테는 1927년부터 4세대에 걸쳐 수제 브러시를 제작해 온 공예점으로, 시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과 온라인 홍보를 진행했다. 특히 온라인 판매 매출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고, 구매 고객 대부분은 해외 관광객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포르투시의 ‘포르투 데 트라디상’ 제도에 있다. 이 제도는 임대료 상승으로 전통 상점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응해 역사를 지역의 경쟁력으로 전환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포르투시는 새로운 것을 짓기보다 오래된 것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포르투시는 오래된 상점을 관광지로 재단하는 대신, 온라인 유통망과 디지털 홍보 채널을 지원해 전통이 스스로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이처럼 포르투시는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대신, 지역의 전통을 지켜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관광도시 포르투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졌다. 지난해 포르투시의 관광산업은 눈에 띄는 성장을 기록했다. 숙박시설 수입이 4억 9200만 유로(약 8297억 5800만 원)에 달하며 전년 대비 12.8% 증가했다. 해외 관광객의 카드 결제액은 약 5억 8800만 유로(약 9952억 3100만 원)로 추산된다. 포르투 공항 이용객도 1500만 명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시가 걷은 숙박 관광세만으로도 약 2090만 유로(353억 79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포르투(포르투갈)/글·사진=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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