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단체서 ‘유인책’, 20~30대 한국인들 ‘징역형’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지법, 남성 3명 ‘징역 3년’ 각 선고
로맨스 스캠 범죄단체 범행 가담 혐의
11명 속여 5억 넘게 송금하게 만들어
재판부 “책임 면할 강요된 행위 아냐”

지난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로맨스 스캠’ 범죄단체에 가입한 후 ‘유인책’ 역할을 한 20~30대 한국인 남성 3명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17단독 목명균 판사는 범죄단체활동과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30대 남성 A 씨, 20대 남성 B 씨, 30대 남성 씨에게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지역 로맨스 스캠 범죄단체에 가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지에서 유인책 역할을 맡은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피해자 11명을 속여 총 145회에 걸쳐 약 5억 6794만 원을 송금하게 만든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A 씨, B 씨, C 씨는 지난해 11월 범죄단체 모집책과 상담원에게 ‘해외에 가서 일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들은 같은 달 캄보디아 현지 조직원 숙소로 이동했고, 기존 조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교육받기 시작했다.

A 씨 등 3명은 텔레그램 메신저 등에서 여성을 사칭해 피해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환심을 산 것으로 조사됐다. 유인책 역할을 맡아 여성을 소개해 주는 ‘걸프렌드’라는 업체 실장이라 속였고, 온라인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면 조건 만남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후 인증 비용 명목으로 돈을 대포계좌로 송금하게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김진아 외교부2차관,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비롯한 정부 합동대응팀 구성원들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에서 팡 나렌 온라인스캠대응위 사무차장(오른쪽 첫 번째 파란 셔츠)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아 외교부2차관,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비롯한 정부 합동대응팀 구성원들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에서 팡 나렌 온라인스캠대응위 사무차장(오른쪽 첫 번째 파란 셔츠)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 과정에서 A 씨와 C 씨는 “범죄단체에 가입할 당시 범행 내용에 대한 고지가 없었다”며 “범죄단체 가입과 활동은 강요된 행위라 무죄”라고 주장했다. B 씨도 “기망을 당해 범죄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며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범행이 형법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강요된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캄보디아에 도착해 단지 내부 건물 규모, 사무실 조직원 숫자와 업무 내용 등을 파악해 조직적인 로맨스 스캠 사기가 이뤄지는 걸 인식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찰 조사에서 근무 시간 이후 운동을 했고, 원구단지 마트에서 소주를 사서 팀원들과 마시기도 했다고 진술했다”며 “근무 시간 외에는 휴대전화를 뺏기지 않았는데 경찰에 신고하거나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용, 개인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어 외부와 소통에 단절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상적인 직장에 취업하려 했다면 회사 업무, 취업 절차, 급여 등을 확인해 봐야 하나 그랬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17일(현지시간) 한국인들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이민청.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한국인들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이민청. 연합뉴스

A 씨 등이 가입한 범죄단체는 지난해 11월 중국인 ‘총책’이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책’, 피해자들을 속이는 ‘유인책’, 조직원이나 대포통장을 공급하는 ‘모집책’, 돈을 찾아 전달하는 ‘인출책·전달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조직원들은 서로 본명을 알지 못하게 했고, 철저히 가명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매일 낮 12시 30분부터 다음 날 0시 30분까지 근무시간을 지켜야만 했다. 해당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인터넷에 개인 계정으로 접속할 수 없었다.

조직원이 탈퇴하려면 2만 달러 벌금과 범행에 필요한 비용을 내게 했고, 3개월 이전에 탈퇴한 조직원 벌금과 각종 비용을 일행이 부담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무실 건물 입구에선 경비 초소에 있는 경비원이 출입을 제한했고, 외출을 하려면 중국인 관리자와 경비원에게 사진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급여는 매월 15일 유인책에게 2000달러, 전화 상담원에게 8000달러를 지급했으며 범행 금액에 따라 인센티브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