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OTT의 스포츠 독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텔레비전(TV)이 귀하던 시절 인기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였다. 축구 국가대항전이나 프로권투 세계 타이틀전이 있으면 어른 아이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으레 그 집으로 갔다. 한국팀이 이겨 기분이 좋아진 주인집에서 수박이라도 한 통 썰어내면 그야말로 동네 잔치였다.

요즘은 TV가 없는 집이 없다. 누구나 ‘내 손 안의 TV’라는 스마트폰도 들고 다닌다. 그래서 함께 응원하는 것 아니면 스포츠 중계 보기 위해 사람이 모일 일은 거의 없다. 기술 발전으로 이렇게 TV 시청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오히려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게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다. 쿠팡 플레이나 티빙, 애플TV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이 인기 스포츠 중계를 싹쓸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쿠팡 플레이는 축구 프리미어리그·FIFA클럽월드컵·분데스리가·라리가·K리그, NBA(미국 프로농구), F1(포뮬러 자동차 경주대회), NFL(미식축구리그)을 독점 중계한다. 스포티비 나우는 축구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세리에A와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티빙은 한국 프로야구, 프로농구, UFC(세계종합격투기), US오픈 골프대회를 독점한다. 애플TV는 손흥민이 나오는 미국 프로축구(MLS)를 중계한다.

그러다 보니 OTT에 가입하지 않으면 중계를 접하기 어렵다.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OTT 가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스포티비 나우는 월 구독료가 베이직 요금제 9900원, 프리미엄 요금제 1만 9900원이다. 쿠팡 플레이는 9900~1만 6600원, 티빙은 5500~1만 7000원, 애플TV는 1만 9000~2만 2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주요 OTT의 월 구독료는 최대 70%까지 올랐다. 하지만 OTT 사업자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돼 요금 인상 때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고, 단순 고지만 하면 된다. OTT가 일방적으로 요금을 조정하고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OTT의 무분별한 요금 인상과 독점 중계로 저소득층·고령층 등이 스포츠 소외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비싼 요금과 복잡한 플랫폼 구조로 인해 어르신들이나 가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계층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잦은 중계권 변동으로 방송 채널이 이리저리 바뀌는 것도 스포츠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