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의 날, ‘사회복지사’라는 이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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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청년위원장

필자의 외조모 고 진봉연 여사님은 6·25 전쟁 직후 부산 동구에서 ‘호림천사원’을 운영하셨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던 시절, 부모를 잃은 아동에게 시설은 삶의 울타리였다. 그 영향으로 어머니는 ‘고아원 출신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훗날 닮은 얼굴이 헛소문을 지웠지만, 우리 가족 삶 속에 사회복지의 뿌리가 깊다는 사실만은 남았다.

2년 전 자원봉사자 대상 강연을 마치자 한 봉사자가 “원장님 잘 계세요?”라고 물었다. 짧은 인사였지만 당시의 기억, 사람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시설을 이어 2·3세 경영으로 갔다면, 필자도 ‘복지 금수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이들이 자라자 더 받지 않고 시설을 정리했다. 필자는 정서적으로는 족벌의 후예일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맨땅에 헤딩’해온 사회복지사이다.

이 경험은 ‘가족 경영’을 다르게 보게 했다. 우리 사회복지는 전쟁 직후 해외 원조와 민간 구호, 교회·구호단체, 가족·친척의 돌봄에서 출발했다. 그 흐름 속에 가족 중심 운영은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성실히 운영되는 가족 법인이 많고, 회계·인사 규정을 스스로 더 엄격히 지키려 애쓴다. 그럼에도 일부 세습·비위가 전체를 낙인찍으며 ‘가족 경영=문제’로 단순화한다. 현장을 묵묵히 지켜 온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프레임이다.

필자는 2007년 자격증 발급자가 30만 명도 안 되던 때 현장에 들어왔다. 10년 뒤 100만 명을 넘었고 지금은 160만 명에 육박한다. 한때 연간 5만 명도 안 되던 발급이 이제는 해마다 10만 명 가까이 쏟아진다. ‘이러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 되겠네’라는 냉소가 나올 정도다. ‘사회복지사입니다’라는 말이 ‘운전면허 있습니다’처럼 흔해졌고, 현장에서는 이 호칭을 꺼내기 민망해졌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은 여전히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명함에도 직함보다 사회복지사를 먼저 새긴다. 문제는 전공·비전공의 구분이 아니다. 어떤 경로든 교육·시험·실습으로 전문성을 담보해야 한다. 학점은행제나 평생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구조와 일부 교육기관의 상업화다. 국가장학금과 저렴함을 내세우고 ‘곧 시험이 도입된다’는 불안을 팔아 자격증 장사를 하는 관행은 멈춰야 한다.

지난 9월 7일 사회복지의 날, 보건복지부 타운홀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들은 낮은 임금, 과중한 업무, 폐쇄적 문화, 허술한 자격제도를 지적하며 “내가 이 길을 걸어도 괜찮을까”라고 자문했다. 이는 개인의 푸념이 아니라 체계의 균열에 대한 경고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생활임금과 휴식권, 합리적 근로시간으로 처우를 바로잡고, 민주적 운영과 공정 인사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실습기관 관리와 사회복지사 2급 시험 도입으로 자격의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본질은 가족경영 여부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수준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이다.

사회복지사는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라 복지국가로 이끄는 전문 인력이다. 이 이름이 다시 무게와 존중을 회복할 때, 예비·청년 사회복지사에게 희망과 목표가 선다. 청년의 날은 지났지만, 전문성 회복과 안전한 일터라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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