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지치기 유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량부 전 동의대 총장

올해 여름도 매우 무더웠다. 부산은 111년 만에 가장 이른 열대야를 맞았고, 서울은 117년 만에 가장 뜨거운 밤을 맞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동남아 국가들보다 더 더운 나라가 돼 온열 질환이 기성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무가 많은 육지의 숲세권은 한낮의 평균 기온이 섭씨 3~7도 낮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또 한 그루의 나무는 2.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 1.8t을 내뿜어 공기도 정화해 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된 대대적인 녹화사업으로, 이제 우리의 산야는 선진국의 우거진 숲이 부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의 숲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고 부산은 서울보다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 중에 우리처럼 도시주택 모두를 콘크리트로 짓는 나라는 드물다. 대다수 국민이 살고 있는 콘크리트 아파트는, 한여름 햇볕에 노출되면 달궈진 바위 덩어리처럼 뜨거워진다.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이 있다. 더운 여름, 지붕에 올라 호스로 물을 뿌리면, 홈통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웬만한 목욕탕 물처럼 뜨거웠다.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단지에는, 그래서 여름에 나무가 많아야 한다. 나무는 그 잎으로 그늘을 제공하고, 수분으로 기온을 내리게 하고, 산소로 공기를 정화하고, 그 푸르름으로 우리의 심신을 달래주며, 그 속에 둥지를 튼 새소리로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가로수는 상가 간판을 가린다거나, 전선을 보호해야 하거나, 쓰러질 우려가 있다며 잘려 나가고. 아파트의 조경수도 마찬가지로 저층 주민의 민원이라며 잘려 나가고, 낙엽이나 꽃이 떨어지면 청소하기 번거롭다며 잘려 나가고, 대나무는 죽순일 때 미리 꺾여 버린다. 웬만한 나무는 가혹한 가지치기로 고유한 수형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고, 가지 끝에 달린 부실한 잎사귀들은 그 사이로 보이는 휑한 하늘로 더 처량하게 보인다.

떨어진 꽃잎을 보기도 하고, 낙엽을 밟기도 하는 것이 도시에서 보기 힘든 자연의 혜택인데, 애꿎은 나무만 잘려 나간다. 오래전 모 아파트에서 임원을 할 때였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날마다 쓸지 말고 가끔 쓸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주민들 모두 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좋아했다.

20년을 넘기며 잘 자라 무성해진 우리 아파트의 나무들이 몇 년 전 무분별한 가지치기로 싹둑 잘려 나간 이후 매년 잘려져 나가고 있다. 큰 소나무는 가지치기로 나무의 외곽 끝에만 겨우 잎이 몇 가닥 달려, 죽거나 고사 한 나무도 있고, 메타세콰이어는 긴 막대기처럼 위와 옆이 몽땅 잘려 나가 괴물이 되어, 그 우거진 그늘에 둥지 틀던 새 소리에 대한 추억도 사라져 버렸다. 수형이 아름답던 단풍나무는 심한 가지치기로 잘린 가지가 앙상한 잎새 사이로 솟아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한 성장과 아름다운 수형을 위해 가지치기는 필요하다. 안쪽으로 향하거나 교차한 가지, 간격이 좁은 곁가지, 도장지 등은 제거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가지치기는 보기에도 흉하고 나무에게도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외국에서는 가지치기의 량을 2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나무는 나무답게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단지의 숲은 그 속이 어두울 정도지만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갖다 대기만 하면 싹둑 잘리는 날 일꾼의 기계 톱 놀이에, 수십 년 자란 나무가지가 잘려 나가, 그 어둡고 서늘하던 음지가,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양지로 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런던은 그 많은 도시공원의 숲에 대해서 잎의 총량이 많아지도록, 수목의 UTP(Urban Tree Canopy, 수관층 면적 및 부피의 총량) 지표를 현재 21.9%에서 30%로 높여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도 무성한 나무가 잘 자라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더운 여름에는 기온을 낮출 수 있도록 이런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면 좋겠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