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느림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태도 필요
김기주 동명대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교수
느린 학습자(경계선급 지적 기능인·BIF)는 미국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협회(AAIDD) 12판에 따르면, 지적장애의 진단 기준을 기술적으로 충족하지 않으나, 지적장애 진단을 가진 사람들의 많은 특성과 지원 요구를 공유하는 한 개인 집단을 역사적으로 지칭해 온 용어이다. 이들은 한 때 지적장애 중 최상위 범주로 포함되었다가(AAIDD, 1959년) 이후 삭제되었으며,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인 DSM-Ⅳ(1994년)에 경계선 지능에 대해 재언급하였으나 DSM-Ⅴ(2013년)에서는 해당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지원망을 통해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다수가 장애 범주에 미포함되는 수준까지 발달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경우, 최근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연구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등 지원에 대한 논의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공교육에서의 지원(일반교육), 학생 수준에 따른 특수교육대상으로의 지원(특수교육), 그리고 복지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상담센터, 치료센터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한 지원(학교 밖 지원)이 잘 이루어진다면, 이들의 학업 및 사회적응 등의 어려움이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제도 마련과 치료교육 지원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고민해 볼 다른 지점들도 있는데, 좀 더 근본적인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우리 사회가 ‘느림, 다름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태도를 함께 고민하고 성숙해 가야 한다.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부모님 중 더러는 ‘우리 아이는 장애는 아니예요’라며, 장애군에 포함되고 싶어 하지는 않으나, 지원은 요구한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이름표는 붙이지 않고 싶어요’라는 말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일부 부모의 잘못된 인식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느림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만 여겼던 태도를 버리고, 이제는 ‘느려도 괜찮아’, ‘느릴 수도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들마다 발달의 속도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또래와 혹은 또래 평균과 비교하고, 느린 경우 매우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장애아동은 자라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까지 있다. 느린 학습자의 부모가 우리 아이는 장애는 아니라며 불편해하는 이유 중 ‘장애가 있는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도 한몫하는 것이다. 장애아동은 자라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적절하고 충분한 지원이 제공된다면, 느린 학습자는 물론 장애가 있는 아동도, 지금보다 더 잘 자랄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다만 속도가 다를 뿐이다. 느린 학습자, 장애아동들도 각자의 속도로 모두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셋째, 느린 학습자의 인지 능력 발달에 대한 오해가 있다. 그래서 낮은 인지 능력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인다. 자녀의 언어, 학습, 사회성 발달의 어려움이 ‘경계선 지적 기능’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 경우, 낮은 인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몸부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관심과 지원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와는 다른 결의 우울과 불안 등으로 학교 부적응 문제가 초래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느린 학습자 및 장애아동에 대한 인식 정도를 고려하면 쉽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부모의 올바른 인식과 양육 태도는 중요하다. 자녀의 발달 수준과 기능에 맞는 적절한 지원과 자녀의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갖고 격려할 수 있게 돕는 부모 교육과 양육 코칭이 반드시 함께 지원되어야 한다.
느린 학습자를 돕는 진짜 시작은, 아이의 현재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태도이다. 제도 마련과 치료교육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느림’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자기 속도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느림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