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의선 회장의 '파격 행보'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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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부장

강경 노조에 공장 폐쇄·본사 이전
앙숙 포스코와도 손잡고 대미 투자
전기차 수요 하락 등 걸림돌도 있어
정의선 "퍼펙트스톰 이겨내자" 주문

수년 전 현대차그룹 한 임원이 자식 결혼을 앞두고 인사 대상이 돼 물러나야 할 상황이 됐다. 당시 그룹 경영을 총괄하던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소식을 듣고 인사를 결혼식 이후로 미뤘다.

이런 정 회장이지만 노조의 파업 사태나 시위에 대해선 강경한 모습이다. 올 초 실적부진 속에 계속된 현대제철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와 부분파업 진행에 결국 공장폐쇄를 결정했다. 로봇과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위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조의 정규직 요구 시위에 대해서도 경남 창원 본사의 ‘타 지역 이전’ 카드로 대응했다. 1년간 계속된 집회와 시위로 회사 영업에까지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제철은 포스코홀딩스와 손잡고 8조 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될 경우 향후 국내 생산 물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포스코와는 오랜 기간 앙숙 사이였지만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과거 정 회장의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이 일관제철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포스코와 갈등을 빚었고, 일관제철소 완성 후에는 서로 거래까지 끊었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현대차 최고경영자(CEO)에 외국인 호세 무뇨스 사장을 선임한 데 이어, 싱크탱크 수장에는 한국계 미국인 성김 전 주한미국대사를 앉혔다. 무뇨스 사장의 경우 주요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면서 회사 내에선 “이제야 글로벌 기업이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8년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수석부회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오른 뒤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정 회장의 파격적인 행보들이다.

정 회장은 미래 현대차그룹의 밑그림도 이미 그려놓았다. 미국의 로봇 스타트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와 자율주행 기업 42닷 인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아닌 모빌리티 회사로의 변화다. 정 회장은 이미 2019년 현대차 서울 양재본사에서 가진 타운홀미팅에서 그룹의 향후 사업 비중을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로 꾸려갈 것이라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2020년 그룹 수장에 오른 정 회장은 취임 2년 만에 그룹을 글로벌 ‘톱3’ 완성차 업체로 끌어올렸다. 일본 토요타그룹과 독일 폭스바겐그룹 다음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2023년과 지난해 2년 연속 역대 최대 영업이익 달성도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꾸준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글로벌 자동차 톱3에 머물지 않고 모빌리티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전기차 분야 수요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을 시작으로 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을 차례로 가동키로 했다.

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전기차 364만 대를 생산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톱3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회장은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미래 모빌리티 구상을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자율주행,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등으로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서 미래 시장에 대비하는 수준은 전기차 업체로 우주선을 띄우는 테슬라 못지 않다.

과제도 적지않다. 현대차는 수년 동안 전쟁, 판매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온 러시아 공장과 중국의 충칭 공장을 2023년 매각했다. 앞서 2021년에도 베이징 1공장을 팔았고, 창저우 공장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미국시장에선 성장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입지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시장의 경우 언제 재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한 전기차 분야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등으로 시장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은 올 초 글로벌 자동차 시장 침체와 미국의 투자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신년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퍼펙트 스톰’(다발적 악재에 따른 경제적 위기)으로 간주하고 “면밀한 준비를 통해 위기를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와 성과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10대그룹 오너들 가운데 미래 시장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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