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글로벌허브 도시와 문화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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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특별법 통과 염원 경제적 관점에 방점
문화적 수준 뒷받침될 때 지역도 활력
더 시야 넓혀 제3의 도시문화 창조해야

혼종성·역동성 등 부산 미적 특성 살려
세계인과 편견 없이 쌍방향 소통 추진
다중문화 공동체 만드는 논의 이어지길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제는 소란과 정쟁을 멈추고,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을 차분히 추진할 때다. 오늘은 지난해 1월 21대 국회에서 최초 발의되고 올 5월에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재발의된 ‘부산 글로벌허브 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의 앞날과 그 접근법을 걱정해보고 싶다. 특별법은 국회의 비협조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계속하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민주당의 ‘부울경 메가시티 조성계획’안이나 대통령 선거 과정에 불쑥 불거진 ‘북극항로 개척 추진’안에 밀려 법안 자체가 아예 ‘휴지 조각’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지금까지의 여야 대치 국면을 고려해볼 때 크게 기대를 걸 바는 아니지만, 혹여나 특별법안의 큰 틀 안에서 메가시티와 북극항로가 대승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상생 국면이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법은 우선 물류, 금융, 첨단산업 3개 분야에서 각종 특례 제도를 적용하고 특구와 투자 진흥지구를 지정함으로써 부산에 글로벌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거점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교육 환경, 생활 환경, 글로벌 문화관광 환경 등 도시의 정주 환경을 싱가포르, 두바이, 뉴욕, 로테르담, 도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저출생, 고령화, 청년 인구의 유출로 야기된 부산의 구조적 위기도 어느 정도 개선되고, 남부권 거점도시의 발전에 따른 지역 균형발전도 같이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특별법 통과에 공을 들이고 있는 ‘글로벌허브 도시 범 여성 추진위원회’의 부산포럼에 초대되어 ‘글로벌허브 도시 부산과 문화 간 소통능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왔다. 많은 분이 도시와 문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지만, 포럼이 열린 부산진구 양정의 부산 시민운동 지원센터를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여기서도 경제적 관점이 압도적으로 대세구나!”라는 느낌이었다. 상공회의소와 부산시 관광협회, 한국 국제물류협회와 어느 정당 주최로 지난 4월 부산광역시 의회 대회의실에서 ‘글로벌허브 부산 특별법’ 대토론회가 있었다.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발제나 토론이나 부산의 국제금융, 국제물류, 디지털 첨단산업의 육성을 위한 특례 얘기만 가득했다. 관광산업 육성을 제외하곤 특별법에서 담고 있는 교육과 생활환경 선진화 이야기마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경제적 관점과 접근법에 압도적으로 밀려 문화적 관점, 문화적 담론은 특별법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게 필자의 시각이다.

문화는 그 도시의 얼굴이며, 품격이다. 문화가 바다라면, 경제는 그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경제적 관점과 논의만으로 우리가 바라는 수준 있는 부산, 글로벌허브 도시로서의 부산을 이룰 수 있을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도시 발전이 경제만으로 담보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어디를 가나 항상 머릿속을 맴돈다. 글로벌허브 도시 부산은 21세기의 시대 과제에 맞추어 이질적인 문화 간의 소통능력이 고도화되고, 자기중심성과 우월성이 자취를 감추며, 세계인과 편견 없이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다중문화 공동체로서의 부산이었으면 한다. 부산일보 논설실장을 역임한 임성원 박사(예술학)는 저서 〈미학, 부산을 거닐다〉에서 부산의 미적 특성으로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 등을 꼽는다.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는 몰라도 부산은 방향만 잘 잡고 시민 합의와 정책 지원이 이를 잘 뒷받침하면 국제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다른 것을 하나로 섞을 줄 아는 힘, 그리고 새로움을 향한 강한 열정과 저항 정신으로 새로운 다중문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생산 관계와 생산력의 모순이 세계의 토대이며, 법이나 종교 혹은 계급 문화 등은 그 토대가 만들어낸 상부 구조다”라고 했다. 필자는 거시경제와 사회문화의 상호 관계에 관한 한, 거꾸로라고 본다. 도시 문화가 토대이며, 물류, 첨단산업, 금융 등은 그 공동체 문화 위의 상부 구조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어 ‘부산 글로벌허브 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앞으로 어떠한 운명을 맞을진 알 수 없다. 그러나 얼마 전 이 특별법 통과에 시민 100여만 명이 순식간에 서명한 이상, 그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때 기존의 이야기와 함께 문화 이야기도 무성했으면 좋겠다. 자리만 폈다 하면 물류, 금융, 첨단산업 얘기뿐이다. 이젠 더 시야를 넓혀 도시의 열림, 다양성 추구, 시민 국제의식의 선진화 방안, 비판적 저항적 다중문화 사회의 구현, 제3의 도시문화창조를 통한 경제 활성화 이런 이야기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졌으면 한다. 문화적 안목과 수준이 부산 경제를 더욱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받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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