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건강하게 익어갈 우리들의 여름
김경희 문화부 독자여론팀 차장
절밥, 그러니까 사찰음식의 매력에 2030세대가 푹 빠졌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인 지난 7~8일 서울 aT센터에서 ‘제4회 사찰음식 대축제’가 열렸는데, 이틀 동안 무려 2만 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였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개최된 행사라는 점도 의미 있지만, 20∼30대가 참석자의 57%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층의 관심이 뜨거웠다니 놀라웠다.
이날 축제에서 선보인 표고버섯탕탕이찌개, 삼색두부찜, 시래기고추장구이, 늙은호박배추물김치, 육근탕, 석이버섯더덕초무침 같은 개성 있는 사찰음식이 요즘 젊은 친구들의 입맛에 맞았을까?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이나 햄버거 같이 빠르게 만들어진 인공의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간소하고 담백하며 슴슴하고 소박한 자연식이 그들에게 은근히 스며든 것일까?
그러고보니 지난해부터 건강 트렌드는 이른바 ‘저속노화’가 대세다. 렌틸콩과 귀리, 현미로 만든 잡곡밥을 저속노화 식사법으로 소개해 화제를 몰고 온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 교수는 노화를 촉진하는 음식을 줄일 것을 강조한다. 식단에서 설탕 같은 단순당과 흰 쌀밥, 빵 등으로 대표되는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성 단백질 등을 과감히 빼라고 조언한다. 튀김류, 버터, 마가린, 치즈 등도 줄여야 하고, 대신 푸른 잎 채소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 베리류 등을 더 섭취할 것을 권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세대 불문 각자 만든 저속노화 식단의 사진과 식재료 목록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중년·노년층에게도 건강식단이라는 것이 더이상 종합편성채널 속 먹거리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음식이 아니다. 밋밋하기 그지 없는 건강식이 어느새 자랑 삼고 싶은 ‘힙한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찰음식에 대한 2030세대의 호응은 “천천히 늙어갈래요”를 표방하는 이들의 건강한 발로로 읽힌다.
잘 나이들기 위한 건강한 습관은 ‘러닝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온천천을 따라, 광안리해수욕장을 끼고, 사직보조경기장을 도는 열혈 러닝 크루들은 달리기에 한껏 적당한 초여름 날씨에 힘입어 각자의 건강을 채우고 있다. 낯설긴 해도 어느새 패션 아이템 반열에 든 러닝화와 운동복 시장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고,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100세+α시대’에 간소하고 느린 것을 좇는 슬로우 라이프는 “건강하게 나이 들겠다”는 의지와 섞여, 이제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됐다.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하고 심심한 것을 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최소한의 할 수 있는 선에서 작게라도 한두 가지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내 경우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슬로우 조깅을 하고, 가능하면 하루 한 끼는 가벼운 샐러드로 대체하는 식으로 적응 중이다.
이제 곧 한여름이다. 벌써부터 일기예보 속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찍는다고 하니 슬슬 예민해진다. 푹푹 찌는 듯 후끈대는 올 여름 무더위를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지 두려움마저 꿈틀댄다. 그럼에도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가시기 전에,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만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 지인들과 나누는 그 순간, 잔잔한 행복이 입가를 타고 흐를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생물학적 나이는 모두 달라도, 이 여름을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그리고 천천히 통과할 수 있길 바라본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