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선물과 뇌물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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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스승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 깊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의미로 제정된 이 법정기념일은 최근 사회문제화한 교권 추락 현상과 겹치며 빛이 많이 바랬다.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2016년 하반기 본격 시행에 들어간 때와도 시기가 겹치는 것 같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김영란법은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법 시행 당시 타 학교로 간 교사가 아니라면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으므로 학생이나 학부모의 금품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을 내 놓았다.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수고한다고 캔커피 하나도 쉽게 건네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는 푸념이 나온 건 그 즈음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건네는 선물을 모조리 뇌물로 규정하면 곤란하다는 여론이 나오자 사회 각계에서는 선물과 뇌물을 가르는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가 2007년 제시한 기준은 아직까지도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서도 타당한 견해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꼽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선물과 뇌물의 가장 큰 판별 기준으로 받고 잠을 잘 잘 수 있느냐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언론에 보도가 돼도 문제가 없느냐 여부였다. 마지막 기준은 다른 직위에 있어도 받을 수 있었느냐였다. 금품을 받을 때 이 세 기준을 되새겨 본다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선물과 뇌물을 가릴 수 있으리라 본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타르 정부로부터 한화로 무려 5600억 원 상당의 초호화 비행기를 선물받은 행위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선물이냐 뇌물이냐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를 대한상공회의소 기준에 적용하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구형 에어포스원을 대체하기 위해 무료 항공기를 안 받는다면 오히려 ‘루저’(패배자)라 할 정도이니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연신 보도가 됐는데도 논란을 넘어선 수사 등의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두 번째 기준도 통과할 듯 싶다. 하지만 마지막 기준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카타르가 과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초호화 비행기를 건넸을까. 상식적으로는 아닐 듯하지만 최근 미국의 행보가 상식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어 판단이 무척 어렵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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