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양 허브 도시 성공 전략은 이랬다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총장
글로벌 해양산업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단순 화물 운송과 항만 운영 중심에서 벗어나, 친환경·디지털화·고부가가치 서비스 중심의 ‘해양비즈니스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복합적 해양 비즈니스 기능을 갖춘 글로벌 해양허브 도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 곳곳의 해양도시들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자신만의 전략으로 해양산업 생태계를 키우고 있으며, 그 중 몇몇 도시는 확고한 성공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 600만의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해운국가로 자리 잡았다. 그 비결은 단연코 정부의 전략적 정책과 통합형 생태계 구축에 있다. 싱가포르는 1996년 해운항만청(MPA)를 설립해 해운, 항만, 해양기술, 인재 양성, 국제 협력 등을 총괄하는 중앙 거버넌스를 확립했다. 이를 통해 선박 등록, 세제 혜택, 인재 인증, 해사중재까지 모든 해양비즈니스 기능을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Maritime Singapore’라는 브랜드 아래 해운회사, 해운금융, 해사법률, 보험, IT기술, R&D 기관 등이 밀집된 통합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세제감면제도(Maritime Sector Incentive, MSI)는 글로벌 해운기업과 금융기관 유치에 핵심 역할을 했으며, 싱가포르 해사중재센터(SMA)는 아시아 해사분쟁의 핵심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전략적 정책과 통합형 생태계
로테르담, 유연한 민관 거버넌스의 혁신
오슬로, 해양 스타트업 테스트베드 매력
두바이, 자유무역지대 모델로 거점 구축
유럽 최대의 항만도시인 로테르담은 디지털 기술과 친환경 전환을 중심으로 해양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세계 최초로 항만의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구축한 로테르담은 실제 항만의 운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최적의 물류 흐름과 에너지 소비를 관리한다. 이를 기반으로 PortBase라는 전자물류 플랫폼을 도입해 선박 입항, 통관, 물류 연계 등을 자동화했고, 이는 유럽의 대표적인 ‘스마트 항만’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테르담은 수소 항만으로의 전환도 선도하고 있다. 이 모든 전략은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항만을 운영하는 로테르담항만공사(Port of Rotterdam Authority)의 유연하고 혁신적인 거버넌스 덕분에 가능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 해양기술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 중 하나다. 오슬로를 중심으로 한 노르웨이 해양산업 클러스터는 자율운항, 전기추진, 무탄소 선박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실증 프로젝트와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 최초의 자율운항 전기화물선인 ‘Yara Birkeland’이다. 이 프로젝트는 노르웨이 정부의 친환경 선박 육성 정책과 국영기업인 Yara, 기술기업 Kongsberg가 협력한 결과로, 기술 실증과 동시에 상업적 운항까지 이뤄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오슬로는 또한 해양산업 스타트업에 대한 적극적인 금융 지원,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해양기술 혁신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동의 두바이는 전통적인 해양국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양비즈니스 허브를 구축했다. 바로 자유무역지대 모델이다. 두바이는 자벨알리 자유무역지대(JAFZA)를 중심으로 외국계 해운·물류기업에 세금 면제, 외국인 100% 소유 허용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그 결과 수많은 글로벌 해운기업들이 두바이에 아시아-아프리카 거점 지사를 두고 있다. 두바이항을 운영하는 DP World는 이제 전 세계 70여 개 항만을 관리하는 글로벌 해운물류 그룹으로 성장했으며, 이 자체가 두바이를 글로벌 해운네트워크의 전략적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해운뿐 아니라 해사 중재, 항만 솔루션 개발, 디지털 물류 서비스 등으로 기능을 확장하며 차세대 해양도시로 도약 중이다.
이러한 도시들의 공통된 성공 요인은 분명하다. 첫째, 중앙 또는 지역정부 주도의 일관된 거버넌스 체계, 둘째, 해운·금융·법률·기술·R&D가 어우러진 산업 클러스터 구축, 셋째, 디지털·친환경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투자, 넷째, 국제기구 및 해외 기업과의 전략적 연계 강화, 다섯째, 무엇보다 중요한 해양비즈니스 인재육성이다.
부산은 세계 6위 컨테이너 물동량을 자랑하는 대표 항만도시이지만, 아직 해양비즈니스 허브로의 완결형 생태계는 부족하다. 글로벌 해운기업 본사 유치, 해운금융·보험 서비스 고도화, 해사법률·중재 기능 강화, 친환경 항만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 기능 확대가 절실하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를 비롯해 관련 공기업, 산업계, 학계 등이 함께 해양도시 부산의 미래를 설계하고 투자해야 할 때다. 부산시에서 추진하는 부산형 라이즈(RISE)사업과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잘 활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산형 해양비즈니스 허브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